• 눈물로 단련된 노동자들의 잔치같은 집회
        2007년 04월 17일 11: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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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 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공장 마당에 한바탕 느닷없는 잔치가 벌어졌다.

    떡집에서 밥을 맞춰오고 반찬이라고는 이집 저집에서 날라 온 김치와 김, 짱아치가 전부이고  간혹 짓궂은 봄바람이 펼쳐놓은 돗자리 밥상을 휩쓸어 먼지도 날리지만 조합원들 얼굴에는 한그릇 소복히 퍼담은 흰 쌀밥처럼 밝은 웃음이 넘쳐난다.

    “박영호 사장이 우리들 투쟁하느라고 봄나들이 못 갈까봐 나들이 시켜주네. 더 맛있어.”

    4월 17일 인천의 콜트악기 공장의 점심시간 풍경이다. 건물 안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조합원들은 마당에서 식사를 하는 정리해고된 조합원들께 미안하고 안쓰러워 머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17일 콜트-콜텍 고용안정 쟁취 결의대회

       
    ▲ 17일 오후 3시 인천 콜트악기 공장에서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콜트악기 정리해고 박살 콜텍 휴폐업 철회 고용안정 쟁취 결의대회’가 열렸다.
     

    17일 오후 3시 ‘콜트악기 정리해고 박살 콜텍 휴폐업 철회 고용안정 쟁취 결의대회’가 인천의 콜트악기 공장에서 열렸다. 이 결의대회에는 콜트악기와 콜텍 조합원 및 인천지부와 대전충북지부 확대간부 등 300여명이 참가했다.
       
    콜트악기 정리해고에 맞서 적극적인 연대투쟁을 벌인 직후 사측의 불법적 휴업과 폐업공고에 맞서 투쟁하는 콜텍 조합원들이 이날 결의대회에 참가하러 충북에서 인천으로 올라왔다. 콜트악기 지회는 사측에 콜텍 조합원들의 중식제공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콜트악기지회 간부들과 정리해고된 20여명의 조합원들은 “연대하러 온 손님이고 한식구인데 점심을 굶길수 없다”며 “우리가 밥을 마당에서 해먹고 대신 회사 식당에서 콜텍 조합원들이 식사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을 모았고 때 아닌 잔치판이 벌어진 것이다.

    “지나가던 걸인이 배가 고파 먹을 것 좀 달라고 하면 먹던 밥도 나눠 주는게 우리의 인심인데 박영호 사장은 여태까지 한가족이라고 떠들 땐 언제고 밥 한그릇 못먹게 하는게 사람 도리냐”며 아주머니 조합원들은 밥먹던 숟가락을 허공에 찔러대며 박영호 사장의 치졸함에 분노했다.

    “지나다건 거지에게도 밥을 나눠먹는데…”

       
     

    오후 3시 결의대회에 참가하러 온 조합원들로 공장마당이 가득 메워지고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여느때 보다도 우렁찼다.

    정리해고 통보 직후 말만하면 눈물을 흘리고 고개숙이던 조합원들이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 이제는 고개를 당당히 들고 얼굴에는 단호한 결의가 묻어나왔다.

    아침 일찍 출근투쟁 피켓팅 항의농성 등 피곤할만도 하지만 투쟁을 할수록 더 단련되고 단단해졌다.

    이젠 더이상 그동안 집행부가 시키는대로 있는 듯 없는 듯 뒤에서 박수만 치던 조합원들이 아니다. 평소에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회사 전무에게 당차게 항의도 하고 전무실 바닥에 깔판을 깔고 앉아 “내가 왜 정리해고냐”고 버텨보기도 한다.

    혼자서는 도져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 당당하게 소리지르고 따질수 있는 건 물론 동지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윤 전무 그 사람 내 붙어보니 아무것도 아니야” 늙은 아저씨 조합원의 말이다. 그 아저씨 조합원에게 윤전무는 20년 넘게 일하면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존재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천식과 골병으로 세계1위를 만들었더니…”

    금속노조 인천지부 염창훈 지부장은 “우리는 박영호 사장에게 정리해고를 철회해 달라고 사정하러 온 것이 아니다. 천식과 골병으로 고통받으며 콜트악기를 세계 1위 브랜드로 만들었고 저임금에 허덕일 때 박영호는 중국으로 인도로 공장을 확장해 나갔으며 천억대 부자로 만들어준 장본인으로서 당당한 권리를 찾겠다는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또한 “금속노동자들은 지금까지 그 어떤 투쟁도 비켜서거나 물러서지 않았으며 그 결과 순천의 하이스코 동지들이 자본을 굴복시키고 현장복귀를 쟁취해 냈다”며 콜트악기 콜텍 구조조정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해 전국의 동지들께 반가운 승전보를 전하자“고 호소했다.

    콜트악기 사측은 정리해고 조합원들이 인천공장의 책임자인 윤 전무에게 항의면담을 하고 현장순회를 하며 투쟁에 함께 할 것을 호소했다는 것을 빌미로 주거침입 업무방해죄 감금죄에 해당한다며 민형사상 고소고발 및 손배가압류를 하겠다는 협박 공문을 보내왔다.

    온갖 욕설을 들으며 새마을 잔업을 하다

    콜트악기 방종운 지회장은 그 회사측 공문을 조합원들 앞에서 찢어버리면서 “이 따위 협박에 겁먹을 우리가 아니다. 박영호 사장이 노동자 무서운 줄 모르고 크게 착각하고 있다. 이번 정리해고 통보는 무서운 벌집 쑤셔 놓은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게 해줄 것이다” 라고 결의를 밝혔다.

     “우리가 어떻게 일 해왔는지 아십니까. 현장에서 온갖 욕설과 여성비하 발언 성희롱 발언은 기본이고 8시 30분이 작업시작안데 8시까지 출근해 준비작업을 하지 않으면 관리자들에게 호통을 들어야 했고 하루 생산량이 미달하면 수당도 없는 잔업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일명 새마을 잔업입니다.”

    “그런 노동현장을 박영호 사장은 ‘꿈의 공장’이라고 했던 것이고 우리 노동자들은 지옥의 공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노예같이 일하다가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2006년 4월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이제 1년, 한 돌도 안된 노조에 박영호 사장은 너무도 큰 선물을 안겨줬습니다. 바로 휴업과 폐업입니다.” 콜텍의 이인근 지회장의 말이다.

       
     
     

    그의 울분은 가시지 않았다. “지난 4월 9일 출근을 해보니 회사 정문이 쇠사슬로 칭칭 엮어 잠겨있었고 휴업 공고가 붙여있었습니다. 사전에 한마디 통보도 없었고 이런 일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 휴업수당 70%를 주고있는데 치사한 박영호 사장은 그 돈도 아까워 1.2.3월에 생산량이 안나왔다고 50%를 삭감하고 10-20만원을 준답니다. 그돈 받고 언제까지 투쟁하며 버틸수 있나 해보라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자존심으로 꼭 이겨내고 말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선하기만 한 이인근 지회장의 얼굴과 목줄에 핏대가 섰다.

    "노동자 등에 비수를 꽂은 회사"

    결의대회를 마친 콜트 조합원들과 콜텍 조합원들은 마치 떨어져있는 연인을 보내듯 서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지역의 간부들은 각 역전에 선전물을 돌리는 실천투쟁에 들어갔다. 콜트악기 지회는 투쟁하느라 없는 살림에 대전까지 가는 버스에 술과 안주를 실어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콜트, 콜텍 연대투쟁을 갈라 놓으려 박영호 사장은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좋은 콜텍에 대해 휴업조치를 내리고 폐업을 하겠다고 협박하지만 오히려 더욱 단단히 뭉치는 계기를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 콜트와 콜텍 조합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전 콜텍공장 앞에도 천막 3동을 치고 조합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고 인천의 콜트악기도 천막농성 79일차를 맞고 있다.

    30여년간 등골빠지게 일해온 노동자들 가슴에 피멍 들게 하고 폐기물 버리듯 쫓아내 노동자 등에 비수를 꽂은 그 칼날이 배신당한 노동자들의 날선 복수심으로 박영호 사장 가슴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돈 몇푼 더 벌려고 벌집 잘 못 쑤시어 한꺼번에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노동자들에게 포위당한 신세가 된 것을 깨우칠 날이 멀지 않았음을 투쟁이 깊어갈수록 또렷해지는 조합원들의 눈빛에서 예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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