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남미와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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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6일 10: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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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와 베네수엘라는 다르다. 역사적 맥락과 정치, 경제 체제가 다르고 특히 사회, 문화적 주도권 (헤게모니)의 지형이 다르다.

    베네수엘라만이 아니라 남미에서 ‘신자유주의의 실험실’이라고 불리는 칠레와도 다르고, 나프타로 자신의 정체성과 함께 사회의 평화(?)가 많이 망가진 멕시코와 비교해도 다르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우리의 좌파 세력은 남미 나라들에 비해 훨씬 취약하다.

    한국의 좌파는 남미 좌파보다 훨씬 취약하다

    거의 모든 남미 나라들은 ‘거리의 정치’가 강하다. 시위를 대규모로 자주 한다. 그런데 남미의 정부들은 이들 시위를 평화적으로 보장하고 최루가스 또는 물대포 등으로 막더라도 우리처럼 집시법을 들고 나와 경찰에 의한 원천 봉쇄를 시도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런 정부는 곧 정통성을 잃고 시민의 지지를 잃기 때문이다.

    최근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네우껜(Neuquen)이란 주에서 교사들의 봉급인상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교사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전체 아르헨티나가 다 들고 일어났다. 아르헨티나의 전국 노조인 CTA와 CGT는 4월 9일 전국 파업을 발동시켰다. 전국적으로 300군데 이상에서 시위가 있었다. 일반 노조 이외에 사회단체, 학생, 인권단체와 언론노조도 참여하였다.

    공식노조와 독립 노조가 함께 파업을 일으키는 것은 아르헨티나에서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 지하철, 기차, 버스 노조도 전면 참여하였고 정부당국에서는 즉각 교사들의 봉급인상을 승인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네우껜에서는 교사들이 5일째 도로를 점거하고 주지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였다.

    성장의 ‘기억’과 선진국의 ‘환상’ 그리고 기득권층의 미소

    이 같은 대규모 시위가 가능한 것은 과거 군부 독재시대와 같은 인권탄압과 폭력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성장에 대한 ‘기억’만 선택하고 미래의 ‘선진국’에 대한 환상만 고취시킨다. 현재는 실종되고 없다. 계속해서 이렇게 현재가 유보되면 기득권층만 이익을 본다.

    우리의 경우, 얼마 전 건설 노동자인 하중근 씨가 경찰에 의해 시위도중 사망했지만 일반 대중은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

    칠레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중도 좌파(?) 바첼렛 연립 정부가 지속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좌우로 흔들리는 애매한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그 이유는 1973년 피노체트 쿠테타 이후 자그마치 34년간이나 ‘독재’ 체제가 조금씩 변형되면서도 그 본질이 바뀌지 않은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남미에서 거의 유일하게 신자유주의적으로 경제가 성장한 나라라는 사실이 ‘많은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를 지체시키고 있다고 본다.

    최근 ‘산티아고 교통 개혁’(Transantiago)이란 프로젝트를 칠레 정부가 2월 10일부터 시행하였는데 이에 반발하여 3월 29일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의 대규모 거리 시위가 있었다. 빠트리시오 시드에 의하면, 좌파적(?) 정권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와 싸우는 칠레의 고교생들

    이 계획은 완전 실패가 되었다. 그리고 출범한 지 불과 일 년만에 바첼렛 정부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위기를 통해 보수세력인 중도 우파(?)가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보고 있는 맥락과 비슷하지 않은가!

    멕시코 시사주간지 ‘쁘로세소’에 의하면, 위 프로젝트는 수도인 산티아고 버스 노선의 축소 조정, 전자 카드 사용 및 지하철, 기차와의 연계 통합을 통해 소위 도시 교통의 ‘선진화’를 그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고 이 모든 통합을 하나의 민간 기업이 총괄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통시간이 많이 늘어나고 노선도 제대로 조정되지 못한데다 자가용 출근으로 교통이 혼잡하게 되는 등 불편이 가중되어 시위에 나서게 된 것이다. 더구나 많은 시민들이 직장에 지각하여 혹시 짤릴까 봐 스트레스가 늘고 수면시간을 줄이다 보니 ‘섹스’도 줄여야 되는 등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바첼렛은 이 계획을 신뢰하지 못했지만 관계 장관은 이 프로젝트를 미루면 관련 기업들에게 보상해주어야 할 재정부담이 크다고 밀고 나가자고 했다고 한다.

    대규모 시위 양상이 마치 80년대의 피노체트 ‘독재’ 정권 시대를 연상케 했다고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계획의 초기에 전자 카드 이용 설비의 준비가 제대로 잘 되어있지 않자 고등학생들에게 3일간 무료로 이용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작년 6월에 이들 칠레 고등학생 약 100만 명은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차별 등 신자유주의적 발상의 교육법과 제도에 맞서 대규모 거리 시위를 한 바 있었다. 이 당시 정부는 머리가 무척 아팠었다고 한다.

    올해 4월초에도 다시 이들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은 대규모 거리시위를 했다. 이렇게 칠레는 다른 남미 나라들과 달리 ‘거리의 정치’를 나이 어린 학생들이 주도 하고 있다. 참고로 칠레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이다.

    이제 우리와 남미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약간 장황하지만 간단히 비교해보자.

    조선 왕조와 식민지 남미의 비교

    조선 건국이 1392년부터였고 콜롬버스의 남미 발견(?)이 1492년이었다. 대략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철저한 중앙집권의 전제적 통치와 작은 마을에까지 정교하게 발달된 관료제도의 엄한 지배 아래 살았다.

    남미는 스페인에 의해 대략 1520년대부터 정복당하기 시작하는데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식민지의 모습이 아니다. 아주 엉성한 지배를 했다. 각 지방은 대지주 토호세력(Caciques)의 권력이 식민정부의 중앙권력에 뒤지지 않았고 행정권력은 금과 은 등 귀금속을 캐어 스페인으로 실어 나르는 데 주력했다. 전체 국토를 제대로 통제할 수도 없었다.

    우리처럼 지배계급의 문화적 주도권이 강하지도 않았다. 지배계급과 일반 민중은 서로 다른 문화적 성격을 지니고 살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동질적인 문화의 틀 안에서 살아오고 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리고 약 500년 동안 주민들의 저항이 끊임없이 있었다. 시민사회의 세련된 성명 발표가 아닌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 같이 공권력에 대해 위축되지 않는 ‘잘못된’(?) 문화적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경찰에 대항하여 ‘밀림의 나무를 자르는’ 긴 칼(Macheta)과 몽둥이를 들고 시위하는 모습은 지금도 가끔 남미에서 볼 수 있다.

    공권력에 위축되지 않는 문화적 전통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서 차베스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한 사회체제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는 지도자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럴만한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과 상황이 이를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1989년 2월 27일에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시민의 대규모 폭력 시위사태 즉, ‘카라카소’가 있었다. 이 당시 집권당인 민주행동당(AD)의 까를로스 안드레스 뻬레스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1989년 2월 16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조치’를 발표한다. 이 조치를 발표한 뒤 곧 ‘카라카소’가 터진 것이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와 같은 시민의 저항을 무시하고 2월 28일 워싱턴에서 IMF와 구조조정 협약서를 체결하였다. 우리는 1997년에 조용히 지켜보았다.

    남미의 저항과 남한의 침묵

    왜 이렇게 대응이 다를까? 카라카스 시민들이 유식해서 신자유주의 조치를 이해하고 거기에 반대해서 그랬을까? 무식한 걸로 따지면 중남미 사람들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 조치에 의해 대중 버스값이 오르자 곧 거리로 뛰쳐 나왔다.

    뻬레스의 조치는 마치 휘발유처럼 짙게 드리운 사회적 불만에 라이터를 킨 격이다. 다시 말해 시민들의 저항을 단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라고만 보는 것은 엘리트적 시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카라카소’가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1958년 이후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중도적(?)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두 정당 사이의 보수 대타협 체제인 ‘푼토 휘호’ 체제(Punto fijo)가 무너져내린 점이다. 안타깝지만 한국에서는 이제 2008년부터 보수 대타협 체제를 FTA를 기반으로 하여 펼쳐나갈 기세이다.

    기존의 정치 지형이 무너진 국면에서 1990년대에 급진적 혁명을 주도한 차베스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마르가리타 로뻬스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한 집권당인 AD의 일부 세력은 베네수엘라 공산당에서 나왔다고 한다.

    보수독점 정당체제, 대중투쟁으로 해체시켜

    존 월톤과 대빗 세돈은 ‘카라카소’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윤리적 경제에 대한 배신’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정치인을 대표로 하는 기득권층에 대한 배신감이 폭발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서 ‘윤리적 경제’란 중남미의 독특한 가부장적 포퓰리즘 문화와 베네수엘라 집권당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서 정치 담론과 수사에서 항상 가난한 대중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여 이들이 ‘국가가 자기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양극화가 심해지자 여기에 반발하여 일어난 사건이란 해석은 적어도 베네수엘라의 경우, 우리 식의 해석이 많이 가미된 시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베네수엘라에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그 뒤인 1994년에 집권한 라파엘 깔데론 대통령 때부터였고 페레스 대통령은 집권한 지 한 달도 안되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밝혔고 이에 대중들이 곧바로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우리 대중들은 언제 거리로 나와 저항을 할까? 경제적 어려움보다 도덕적 명분이 깨졌을 때인 것 같다. 4.19와 87년 항쟁은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독재 정권’을 쓰러뜨리기 위한 것 이었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상황에서 우리 가톨릭 교회의 침묵이 안타깝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도덕적 문제에 더욱 저항하는 한국민중?

    우리와 남미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차이는 남미식 포퓰리즘 정치에 있다. 남미식 포퓰리즘 정치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에대한 ‘동정과 배려’에 있다.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면 남미 정치세력의 좌, 우 구분은 포퓰리즘의 진정성 여부에 있다고 본다. 단순한 수사에 그치면 우파일 것이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이지만, 지배계급은 대중에 대한 문화적 주도권을 세우기 위해서 ‘교육’과 ‘대중매체’를 이용한다. 그리고 또 다른 기반이 ‘종교’에 있음은 물론이다.

    남미 가톨릭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 해방신학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제도권 교회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선’(Caridad)을 매일 강론한다.

    해방신학자들의 경우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신학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회가 현실에서 ‘사회 정의’를 역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 바티칸 당국은 약 20년만에 해방신학에 대해 억압적 조치를 취했다. 1985년에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에 대한 탄압이 있고 난 뒤 오랜만에 스페인 출신으로 엘살바도르의 예수회 신부인 혼 소브리노 신부에 대해 저술과 강의를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해방신학의 핵심 사상은 ‘역사의 예수’ 즉,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셨다는 점과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소브리노 신부는 “개인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현실이 더 잘 보이고 하느님의 드러남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확신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남미의 해방신학과 그람시주의를 가장 두려워해

    해방신학이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는 중남미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아래로 낮춰 가난한 이들과 공감하고’ 배신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출간된 책에서 차베스는 “고향인 사바네따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잘 알다시피 파시즘의 정서는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을 거부하는 데 있다. 중남미에서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군부 독재가 잔혹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대중이 파시즘적 문화 즉 차별과 억압의 문화에 쉽게 순응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일상적 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거칠게 이야기한다면 ‘공포’보다 ‘자발적 전향’이 더 무서운 것 같다.

    중남미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도와준다. 예를 들어, 거지에게 동전을 잘 준다. 그리고 남미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여유있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필자가 자동차로 현지인과 여행하면서 길거리에서 거지를 지나쳤을때, 차를 후진해서라도 동전을 건네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유교문화에서는 가문의 영광과 이를 위한 출세를 대를 이어가며 거의 종교적인 열정으로 집착한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으로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미국식 꿈’과 구조적으로 비슷하다고 본다. 그리고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우리의 잠재 의식 안에 누워 있다. 즉, 남의 가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결국, 요즘의 ‘FTA가 만들고 있는 위기’에 대한 대응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더 가난해져도 더 악착같이 일을 하여 노동생산성을 세계 최고로 높여주면서 과로사하거나 아니면 차마 입에 담기 싫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덧붙인다면 미국이 남미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흐름이 ‘해방신학’과 ‘그람시주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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