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아서 미안, 반가운 만화가
By
    2007년 04월 14일 09:19 오전

Print Friendly

“드디어 <시사SF>가 책으로 만들어 진다. 계약서까지 쓰고도 2년 동안 출판사가 2번 바뀌었고 출판 담당자가 5명이 바뀌면서, 정체상태였던 <시사SF>가 책으로 나온다. 오늘 전화가 왔다. 다시 시작했다고. 하지만 책이 인쇄돼서 서점에 깔리기 전까진 모른다. 이미 이전에도 책표지와 머리말과 저자약력까지 모두 완성된, 인쇄만 들어가면 되는 상태에서 담당자가 바뀌면 "올스톱!~~ 처음부터!~~"를 반복했으니까! 무슨 액이 끼었는지 다른 사람들 책은 잘들 인쇄되어서 나오는데 <시사SF>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http://blog.naver.com/jnjoon?Redirect=Log&logNo=140033478811)에 실린 화가의 이 애타는 한탄을 넘어 마침내 책 『시사SF』가 나왔다. ‘조남준의 소셜 판타지social fantasy’라는 부제에 ‘<한겨레21> 8년 연재작 중 114편의 수작 모음집’이라는 카피가 달린, 일종의 선집 형태. 저자는 물론 독자로서도 마땅히 기뻐할 일이다.

   
 
 

자 그렇다면 책이 나온 증거(?)를 찾아볼까요. <끝>이라는 작품. 화가의 블로그에 올려진 그림, 곧 오리지널에는 마지막 컷에 지문 “대학에 합격했다. 그러나…”가 있지만 단행본에서는 그 지문이-그리고 중간의 말풍선 하나도-삭제됐다. 짐작컨대, <끝>은 대학입학과 관련된 시기 혹은 상황에 맞춰 그려졌으며, “400여 작품 중에 시의성이 짙은 것들을 뺀”(화가의 머리말 ‘10분의 일’ 중에서) 작품들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화가가 손을 대고 수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손질은 <끝>이 입시와 경쟁이라는 어쩌면 진부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내용과 형식을 넘어 작품을 더 보편적인 발언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 과정을 눈여겨본다면 단행본이라는 2차적 결과물을 위한 작가 나름의 공들인 노력-물론 출판사의 몫도 분명히 있으리라-이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볼 게 있다. 가령 <한겨레>는 자신들의 출판사를 통해 조남준의 8년 연재만화를 전집으로 낼 수는 없었을까? 작가들의 어줍잖은 잡문들을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연신 찍어대는, 그래서 창작이라는 본업의 생산물보다 잡문집이 더 많은 기이한 경우가 비일비재한 출판 상황에서 오로지 본연의 창작에만 전념한 만화가의 작품을 그나마 선집으로밖에, 그것도 온갖 악전고투를 거치고 나서야 겨우, 펴내는 출판의 현실이 참으로 민망하지 않은가. 출판의 불황? 아마도 출판 마인드의 불황이겠지! 이것 또한 우리들의 슬픈 ‘소셜 판타지’!

다음, <균형 1, 2, 3>. 이 연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단행본에는 3편까지 수록됐지만, 블로그에는 2편까지만 올라와 있다. 어쨌든 노동과 자본의 대립 그리고 그 대립의 본성을 간명하고도 절묘하게 담아냈다. 그 어떤 첨삭도 필요 없을 정도라 여겨진다.

이른바 보편성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너무 편협하다고 느끼거나 너무 평면적이라고 느낀다면 아마도 당신의 이데올로기가 그런 것은 아닐까? 사실 나는 만화가 조남준을 알지 못했다. 만화가 실린 잡지를 애써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잡지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조남준의 만화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책으로 조남준의 만화를 차분히 들여다보니, 늦게 알아서 미안하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반갑다. ‘휴면 판타지’라는 게 이런 게 아니겠는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