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두율 교수는 '경계인'이 아니다
        2007년 04월 13일 04:5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 ⓒ 후마니타스 제공
     

    4월 10일자 <경향신문>은 「진실을 직시하는 참지식인은 없었다」라는 머릿기사에서 송두율 교수의 소식을 전한다.

    “이제 아무도 기억하려고 하지 않지만, 2003년 가을부터 1년 가까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일이 있다.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의 입국으로 촉발된 국가보안법 논란이다. …금방 폐지될 것 같았던 국보법은 털 끝 하나 안 다치고 살아 있고, ‘송두율 사건’ 때 냉전헤게모니에 굴복했던 ‘지식인의 비겁’은 여전히 묻혀 있다.

    …그는 “이 사건의 진실은 내 개인적인 문제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국보법이라는 시대착오적 폭력이 한 인간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사회 대부분 사람의 의식세계를 마비시켜 버렸다는 데 있다”고 정리했다. 경계인이 그제나 저제나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제도와 조직, 상식과 규범의 형태로 개인을 구속하는 ‘국가보안법 체제’의 강고함이었던 것이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에서 같은 날짜로 발간한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는 더 자세하게 송두율을 말한다. 송두율은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인권과 시민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위협한 국가보안법 체제가 문제의 핵심이었지요. 누구도 이 평범한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지식인이 뜻밖에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분단과 통일을 말하고, 진보적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지식인 중에도 진실을 보지 못하고, 내 사건의 본질을 의심의 시각으로 외면하고 회피한 사람이 많았어요.

    …진실을 보기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지식인으로 행세할 수 있는지, 나는 지금도 그들을 응시하고 있어요. 점점 참된 지식인을 만나 보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까워요.” – 송두율

    “당시 송 교수가 직면해야 했던 상황과 심리적 압박, 갈등은 어떠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우리가 먼저 그 과거에 손을 내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자 하는 용의를 내보일 때, 민주화운동 세력이든 비판적 지식사회든 인간적 우애가 뒷받침된 정신적 공동체를 회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박상훈, 김용운

    여기까지가 <경향신문> 기사와 후마니타스 책이 말하는 국가보안법 대 송두율의 진실이다. 나는, <경향신문>과 후마니타스가 애써 말하지 않거나 가벼이 넘어간 것, 송두율이 1973년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것과 그 후 30년 동안 입당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나는 대한민국 실정법 이전에 송두율과 송두율의 싸움에 대해 묻는다.

    송두율은 남한 공안 당국의 조사나 준법서약서가 싫어서 37년 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 그는 ‘입국 절차’의 하나로서 조선노동당 입당을 수용했다. 물론 송두율이 조선노동당을 지지했을 수도 있고, 그가 조선노동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남한이 그를 단죄한 것은 웃기는 짓이다.

    하지만 국가보안법과의 싸움에서 송두율이 보여준 항변에 따르자면, 그의 입당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남에는 ‘원칙적 공인’으로 알려진 송두율이 북에는 ‘실용적 개인’일 뿐이었음을 말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그에게 쏟아지는 욕설이 구역질나지만, 국가보안법 피해의 그늘 뒤에 숨는 것도 유쾌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적어도, 그가 꿈꾼다는 “앎과 행함이 따로 있지 않은 행동하는 지성”이 이미 훼절된 바 있음은 기록해두어야 한다.

    어쩌면 송두율은 보통의 대한민국 아저씨일 수도 있다. 자신의 행위 특히 입당과 같이 지극히 공적인 정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정치적으로 낙후한 보통의 아저씨 말이다.

    민주-반민주 구도가 끝났다는 글을 쓰면서도 노무현을 돕는 데는 앞장서는 보통의 개혁파 교수들, 진보정당의 개량주의를 비판하는 연구를 위해 재벌의 돈을 받는 자칭 ‘원칙주의’ 교수들처럼 현실에는 나약한 한 사람의 학자였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남한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이기 이전에 한반도 전체를 덮고 있는 폭압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사람일 뿐이다.

    <경향신문>이나 후마니타스가 송두율을 다룰 때 쓰는 ‘안타까움’이나 ‘우애’라는 방법은 옳지 않다. 그동안 <경향신문>과 후마니타스와 송두율은 국가보안법을 공적인 영역에서 공적으로 비판해왔다. 이제 피해자가 되어 ‘안타까움’과 ‘우애’라는 개인주의적 방법론으로 도피하는 것은 형식논리적으로 일관되지 못한 것으로 비추어질 뿐더러, 여전히 공적인 공격 대상이어야 하는 국가보안법에게 ‘소수의 유보’라는 최선의 도피처를 제공해주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안타까움’은 피해받은 송두율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공인이었던 한 개인에게 공적으로 ‘가혹’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과의 싸움에서 가장 취약한 방법이 바로 ‘개인’이다. 통일운동은 방북한 ‘통일전사’ 개인을, 학술운동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당한 ‘지식인’ 개인을 부각시키는 손쉬운 방법을 택해왔다. 이 때 방북도 학문연구도 하지 않는 99.999…%의 한국민은 국가보안법을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놀음으로 착각하게 된다. 국가보안법의 실질적 기능인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탄압은 묻혀버리게 된다.

    국가보안법 구속자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진보정당 운동가들, 송두율 교수 같이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개인화’의 방법을 찾지 못하여 ‘잡범’으로 섞여 들어가게 된다.

    송두율은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했으되, 온전하지 않게도 한쪽에만 칼날을 돌렸다. “군사독재에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내 삶”은 지켰으되, 씨알도 안 먹히는 반대편의 완고한 부조리에는 굴복했다. 따라서 그는 ‘경계인’이 아니다. 그는 남한의 감옥에 갇히기 전에 이미 스스로가 만든 묵언의 감옥에 갇혀 있지 않았을까? 이제 내면의 감옥으로 침잠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