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쇼비니즘의 우울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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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3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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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달 전에 문화연대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비롯한 지금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일들에 대해서 발제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토론회에서 발제한 것은 거의 1년 반만의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무슨 피 끓는 열혈청년이라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분기탱천해서 뭔가 하는 사람인가?

부끄럽지만, 난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정열적인 사람도 아니다. 순전히 문화연대라는 조직의 젊은 활동가들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의 빚 때문에 아주 모른 척 하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현실적으로는 지금까지 스포츠와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이 경우에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까지 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일들은 종종 생겨난다. 새만금과 관련되어 ‘안보미(安保米)’ 논쟁을 할 때 농림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했다. 댐과 관련된 일이 벌어질 때에는 결국 수자원공사에서 연구비를 받아야 하는 토목공학 및 유관 전문가들이 사소한 기술적 검토도 해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황우석 사태 때에는 결국 BRIC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이 벌어질 때까지 분자생물학이나 생명공학을 하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어려웠다.

말 할 사람들 나서지 않아 할 수 없이 나선 자리 

그리고 지금 스포츠 사회학을 하면서 평소에 생활체육을 주장하며 엘리트 스포츠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우는 조금 더 심하다. 1차 선정 때에는 그래도 환경단체와 지역의 풀뿌리단체가 1차 저지선을 형성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어렵다. 하계올림픽과 달리 동계올림픽은 북유럽에서도 공개적으로 친환경 올림픽을 선언해야 할 정도로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가 생겨나기 때문에 10여년 전부터 유치국가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제법 크다.

   
▲ 지난 2월 13일 강원 평창군 횡계지역 주민 1500여명이 횡계사거리에서 연 2014동계올림픽실사단 환영행사에서 대회 유치 기원 현수막을 내걸고 만국기를 흔들고 있다.
 

나는 환경단체들이 지금 동계올림픽에 대해서 아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지금 환경단체의 ‘가세’가 옛날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에 대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체감적으로 느끼기에는 아무 다른 시민단체들도 그렇지만 정서적 노무현 지지자들이 2/3 정도 이상이었던 것이 참여정부 출범 초기의 일이었다. 지금도 1/3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적절히 내지 못했고, 참여정부와 도매금으로 넘어갔지만, 그렇다고 정작 노무현이 쟁취한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라는 특이한 한미 FTA 정국에서 환경단체가 뭔가 이익을 챙겼을 리는 만무하다. 시민단체 일반의 위기에 환경단체 자체의 위기가 겹쳐서 결국 동계올림픽 유치 같은 큰 일이 진행되는 데에도 입도 뻥끗 못하는 지금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나의 추정이다.

강원도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나 있을까? 아주 협소하다는 것이 지켜보는 내가 내린 판단이다. 그 안에서는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간 이래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고 알고 있다. 다만 그 목소리가 내부 분위기에 밀려서 차마 목청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외부에서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목소리는 민주노동당 인사들의 약간의 입장 표명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나마도 당 내부에서 ‘자제’의 목소리에 눌려 있고, 시의회 측에서도 자제를 요청했다는게… 내가 외부에서 들을 수 있는 작은 흐름의 전부이다.

2.

대구는 물론, 인천, 부산과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추진하는 곳과 여수와 같이 콘벤션 산업과 같은 것을 추진하는 것들은 대체적으로 같은 흐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박람회나 국제회의와 같은 콘벤션일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스포츠의 형태일 것인가만 다르지, 한국 사회에서 지자체가 이런 국제대회와 국제행사로 나아가려는 힘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승만 대통령 때 한일 축구교류전 두 게임을 하면서 홈앤어웨이 방식을 안 쓴 것은 이승만이 자신이 살아있을 때 일본사람이 한국 땅을 밟는 것은 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에서만 두 게임을 했던 진귀한 일이 벌어졌다, 1승 1무였다. 이 때 이승만이 일본한테 지면 현해탄에 빠지라고 했다. 이게 우리나라 ‘바다 수영’의 시초가 아닐까? 결국 조오련이 일본보다 먼저 그 현해탄을 헤엄쳐서 건넜다.

물에  빠져죽겠다며 지역 주민을 동원하고 중앙정부를 압박하다

88올림픽 유치할 때 올림픽 유치위원장인 유학성이 정주영도 포함되어 있던 유치단에게 (실패하면)"지중해 푸른 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정희준 동아대교수, 프레시안 기고문 참고)

그리고 지금 실사단을 맞아 총력 결의를 다지는 여수의 유치위원장이 실패하면 모두 바다에 빠져죽겠다고 했다.

"너 빠져 죽어라"에서 "제가 빠져죽겠다"는 이 바다 괴담은 점점 더 강도가 줄어드는게 아니라 사무라이 할복 분위기로 점점 더 강력해지는 셈이다.

정확한 사회과학 용어는 아니지만 ‘에너지’라고 볼 때, 이런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지금 충만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구조화’되어 있는 듯하다.

내부적으로 본다면 IMF 이후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지방경제 사이의 양극화의 강화, 그리고 전체적으로 서울과 경기도 즉 수도권에 대한 집중이라는 또 다른 흐름에서 국제 행사에 대한 유치의 근본 동인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줄줄이 서 있는 지방정부를 전부 지원할 수 있는 중앙정부에 대해서 "이래도 안 도와줄래?"라며 대의를 강조하는 것이 현재의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물에 빠져죽겠다는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지자체의 도민들을 동원하고, 밖으로는 중앙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3.

상황이 발생한 것은 발생한 것인데, 뭔가 광기에 가까운 현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규정하거나 이해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평창, 무주를 거쳐 경주의 방폐장까지 사실상 동계올림픽과 태권도공원을 매개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대구와 인천과 평창은 다시 IOC를 중심으로 또 연결되어 있다.

이런 흐름은 민족주의인가? 그렇게만 이해하기에는 훨씬 복잡하고, 지방의 붕괴와 노무현 시대에 더욱 강화된 지방정부 사이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가 개입되어 있고, 또 지역 사이의 지역감정을 강화시킬 경제적 현실이 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도대체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

민족주의인가 쇼비니즘인가

지방정부 버전의 동원경제? 지방토호들의 비토호 혹은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배구조 강화? 혹은 그저 단순한 "우리 민족의 영광"이라는 민족주의의 재발현?

이런 고민을 하다가 나는 나폴레옹을 너무 사랑했던 병사 쇼뱅이 떠올랐다. 쇼비니즘은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주의라는 용어 정도로 이해되지만, 그 표현은 더 다양하다. 보통은 강력한 환원주의 혹은 근본주의 같은 것들도 쇼비니즘으로 표현된다. 일례로 회교 근본주의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회교 쇼비니즘이라고 한다.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지방정부의 최근 국제대회 유치를 위한 눈물나는 역투는 ‘스포츠 쇼비니즘’이라고 불러도 크게 무방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건 민족주의 -물론 노무현의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와 시장주의 그리고 때때로 미국 찬양까지 이상하게 결합해서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가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양상과는 많이 다르고, 그냥 파시즘에 더욱 가깝다.

물론 ‘강화된 민족주의’도 파시즘으로 통하는 하나는 통로인 것은 맞지만, 모든 민족주의가 파시즘으로 통하는가,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기원한던 사람들이 중앙은행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걸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런 문제와 비슷하고, 일본정부와 호까이도우 사람들의 복잡 미묘한 상황도 단순한 한 두개 개념으로 환원시켜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4.

하여간 지금 지역에서 이런 대형 이벤트 유치 물결 앞에서 지난 5년 동안 약간 자리를 찾아가던 지역의 풀뿌리단체들이 제 목소리를 내거나 서 있기도 버겁고, 결국 ‘외지 것들’에 불과한 환경단체에서 뭔가 큰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이 지구당이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서 있기에는 흐름이 너무 강하다.

용어가 뭐가 되었든 하여간 황우석 사태의 열기에 버금가는 분위기들이 형성되어 있다. 쇼비니즘은 사실 과학적 용어규정은 아니다. 내 식으로 표현한다면 "과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랑도 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될 것 같다.

한 가지는 지적할 수 있다. 스포츠 쇼비니즘은 스포츠에 대한 사랑인가? 물론 그건 아니다. 골프장 유치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골프를 사랑했던가, 아니면 스키장 건설에 목내는 지금 평창의 주민들이 스키를 사랑하는가? 그들은 다만 ‘돈’을 사랑한 것일 뿐인데, 이 돈이 ‘국가’의 돈인가, ‘지역’의 돈인가, 아니면 ‘동네’의 돈인가, 그런 차이점 밖에는 없어 보인다.

경제적 접근을 가장한 수많은 담론들은 대한민국에서는 결국 자본가이든, 토호이든, 아니면 지배자이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수단의 하나에 다름 아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지금 우리나라의 이 열광은 민족주의도 아니고,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그저 신화화된 광란에 불과하다.

부산의 사례가 이걸 잘 보여준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을 치르고 남은 시설물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져서, 결국 경륜공단이라는 공기업을 만들고 다시 600억원을 지원했다. 그래서 경륜공단에 대한 경영합리화를 요구했는데, 그들이 공격적인 경영으로 올해 매출액 1,885억원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아시안 게임 한 번 치르고, 그 뒤끝으로 매년 수천억 원을 경륜으로 부산 시민이 잃어주어야 이 시스템이 돌아가는데, 부산경제가 살아날리가 있겠는가? 숙원사업이던 자동차 공장도 유치하고, 아시안게임도 치르고, 원했던 것은 다 얻은 부산경제의 현 주소가 스포츠 쇼비니즘이 몰고 갈 지역경제의 10년 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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