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누구를 위한 ‘로스쿨’인가?
        2007년 04월 12일 10: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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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배출구조 개혁을 위한 국민 대토론회’가 최근에 열렸다. 흡사 ‘로스쿨 부흥 대성회’ 같은 분위기였다. ‘올바른 로스쿨법 제정을 위한 시민·인권·노동·법학계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연대 기구가 주최했다. 

    비대위는 법조기득권세력의 해체를 위해 사법개혁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 로스쿨이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 논리를 근거로 비대위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로스쿨법안을 4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처리하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은영 의원, 이주호 의원과 같은 국회의원들이 패널로 참여하는 등 참석자들의 면면은 화려했으나 정작 이들의 토론 내용에는 토론회의 제목과는 달리 ‘국민’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로스쿨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로스쿨 설립의 두 가지 배경과 거듭되는 논란 

    ‘로스쿨’ 지지자들이 로스쿨 설립의 이유로 드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양질의 법조인을 배출, 다른 하나는 다수 법조인의 배출을 위한 우회로의 필요성이다.

    YS 정권 당시였던 1994년부터 ‘사법개혁’의 한 축으로 논의되어 오던 것이 바로 법조인 양성과정의 ‘개혁’이었다. 이 때 제안된 법조인 양성과정의 개혁방안이 바로 ‘로스쿨’이었다. 미국식 로스쿨 제도의 한국적 변형, 즉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실무교육의 범위와 질을 높이고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 충원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애초 ‘로스쿨’은 “개방되어가는 법률시장에 대처하며 국제적 사법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과 다양성을 목표”로 설치가 제안되었음을 확인한다면 그 취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YS정권에서 실현되지 않은 이 제도는 DJ정부에서도 양념처럼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다루어졌고, 이후 참여정부에 들어서까지 논란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하나 ‘로스쿨’의 도입이 논의되게 된 배경은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법조인 충원의 문제 때문이었다. 변협이라는 이익단체가 사법고시 합격자의 수를 자의적으로 통제함에 따라 소수 법조인이 사법구조 전반을 쥐고 흔드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이 왜곡된 구조 안에서 법률가의 조력을 필요로 하는 민중들은 적시에 필요한 법률구조를 받지 못함으로써 피해가 가중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반면, 독점을 보장받은 법조인들은 자신들의 권한이 마치 천부적인 권력인 것처럼 인식하면서 민중 위에 군림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법치주의는 실종되며, 전관예우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니 하는 온갖 불합리한 폐단이 발생하게 된다.

    로스쿨 제도 자체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

    독점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사법구조의 왜곡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다수의 법조인 배출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범위까지 변호사의 숫자를 늘리고, 이들로 하여금 전문분야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며, 동시에 다년간 변호사업무를 수행했던 사람들 중에서 판사와 검사를 선발하게 되면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 중 상당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법조인력의 대량충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은 변협을 비롯한 법조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이들이 법조인의 숫자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바람에 법조계로 진출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겪어야 했고, 그들은 소위 ‘고시낭인’으로 전락해야 했다.

    이들 기득권세력의 반발을 제어하면서 다수 법조인의 충원을 도모하다보니 ‘로스쿨’이라는 우회적 전술이 제기된 것이었다. ‘로스쿨’ 지지자들의 논리 중 하나가 기득권세력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다수 변호사를 배출할 수 있는 방법이 ‘로스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보자면, 토론회를 주최한 비대위가 연간 3,000명 이상의 변호사를 배출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견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데, 토론회 전반에 걸쳐 한 가지 중요한 논의가 빠져 있었다. ‘로스쿨’ 제도가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일환으로서 기획된 것이며, ‘로스쿨’이 결코 민중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돈 없으면 못 들어가는 ‘로스쿨’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지난해 11월 23일에 ‘로스쿨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은 현재 원화가치를 기준으로 최소 한 해 2,000만 원 이상의 등록금이 필요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선 로스쿨 지지자들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이처럼 과도한 비용이 소요되는 로스쿨에서 수학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또한 이처럼 엄청난 비용을 들여 변호사자격을 획득한 사람이 과연 돈 없어 서러운 민중들의 눈물을 얼마나 닦아줄 수 있을까?

    ‘로스쿨’은 그 논의의 취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사법구조의 왜곡을 혁파하고 민중을 위한 법률서비스를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다. 자본의 국제적 유통과 관련하여 이에 대한 법률적 서비스 체제를 구축하고 통상 등 자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에 다수 법조인을 배치하기 위한 방편에서 기획된 것이 ‘로스쿨’이다.

    법률서비스 수요의 적절한 충족을 위해서가 아닌 특정 분야의 법률서비스 수요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사전조치가 바로 로스쿨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법분야에서조차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법치주의의 이념적 근간이 되었던 평등의 원칙은 공중분해 된다.

    노조와 시민단체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 민중단체와 노동자조직이 결합되어 있는 이 비대위는 토론회 전체를 통틀어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미 FTA 협정을 통해 법률시장의 완전개방이 다가온 이즈음, 로스쿨의 설치가 더욱 필요하다는 기괴한 논리를 제시하기까지 한다.

    비대위와 관련 있는 조직으로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국민연대’가 있다. 이 국민연대의 소속단체에는 민주노총, 교수노조, 공무원노조, 전교조, 법원노조 등 노동조직과 새사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등 인권단체는 물론, 전국민중연대와 같은 민중운동단체의 연대체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단체들은 한미 FTA 반대투쟁에 결합한 것과 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적극적 반대의사를 표명해왔던 단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나서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된 ‘로스쿨’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서는 이유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이들이 제시하는 ‘올바른 로스쿨법 제정’이라는 것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로스쿨 법안과는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로스쿨 설치를 지역권역별로 분산하거나 재학생에 대한 국가지원확대를 통해 서민층의 자녀가 입학할 수 있도록 하고, 로스쿨에서 배출된 변호사들을 일정기간 지역에서 변호업무를 하도록 강제하는 등의 안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국회 계류 중인 로스쿨 법안과 이들이 제시하는 ‘올바른 로스쿨법’의 가장 극명한 차이는 변호사 숫자에 있다. 많은 수의 변호사를 배출하자는 것이 이 단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로스쿨’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구조 왜곡에 대한 문제지적은 이들 단체 어디에서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과연 왜 이들은 이토록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하는 것일까?

    로스쿨 설치는 사법개혁이 아니다

    잡다한 논의들은 생략하고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로스쿨’은 결코 사법개혁의 일환이 될 수 없다. 원천적으로 사법‘개혁’이라는 이 중층적인 언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여기서 이야기하는 ‘개혁’이 결코 민중들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기득권 구조의 해체를 전제하지 않은 채, 자본의 이해에 충실하고자 하는 취지로 사법‘개혁’은 추진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로스쿨’은 이를 준비한 측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개혁’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개혁’적인 것이 아니다. 왜 ‘로스쿨’에서 가능한 일들이 현재의 교육과정과 시험제도의 개선을 통해서는 불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해 로스쿨 지지자들은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발간한 ‘로스쿨 지지자들의 편지’라는 책자는 그 두께에 어울리지 않게 역시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사법구조의 자본종속적 재편이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그램을 거부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간단하다.

    사법시험을 변호사 자격시험으로 바꾸면 된다

    첫째, 로스쿨에서 할 수 있다는 각종 교육을 현재 법학교육과정에서 수행하면 된다. 둘째, 현재의 사법시험제도를 변호사 자격시험제도로 바꾸고 일정한 수준에 달한 사람들에게 모두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면 된다.

    이런 간단한 방법을 놓아두고 법조기득권세력의 반발을 우회하기 위해 준비되는 ‘로스쿨’ 제도는 그렇지 않아도 왜곡되어있는 현재의 사법구조를 더욱 처치 곤란한 상태로 몰고 갈 것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사법개혁’이 아니다. 민중이 사법의 주체가 되는 것이 필요하고 민중에 의한 사법구조의 구성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주장하면서 로스쿨을 찬성하고 있는 각 단체들은 이 대목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히 살펴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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