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이 새로운 정치인이라고?"
        2007년 04월 12일 1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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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면허 운전을 하고 있다"고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비판한 적이 있다. 대권도전에 나서겠다는 건지 않겠다는 건지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사실상 대권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한 노회찬식 비틀기다.

    대권주자로 거론된 이후 정 전 총장의 스탠스는 ‘전략적 모호성’ 정도로 이름붙일만 하다. "정치에는 뜻이 없다" "나는 대통령 그릇이 못된다"고 하면서도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중의적 어법은 ‘전략적 모호성’의 특징이다.

    정 전 총장은 ‘전략적 모호성’을 관리하는 감각 만큼은 발군으로 보인다.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서도 적절한 타이밍에 "나는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decisive(결단력 있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추어올리는 ‘센스’를 갖췄다.

       
      ▲ 사진=SBS
     

    정 전 총장은 모호성을 유지한 채 대선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방향으로 한 클릭 한 클릭 이동해왔다. 그는 언제부턴가, 무슨 이유에선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에 대한 깊은 고민에 들어갔고, 11일 "지금까지는 내면적으로 생각하고 정치인들을 만나지 않았는데 이제 폐쇄성을 떠나서 외적으로 의견을 묻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을 이른바 중도통합신당에 합류시키려는 민주당 및 통합신당모임 일부 의원과의 12일 오찬 회동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무산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는 오찬 약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처음 듣는다"고 부인했다. 정치권엔 그가 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신당의 구체적 아이디어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그의 모습을 통해 짐작컨데, 믿기 힘든 말이다.

    정 전 총장은 ‘전략정 모호성’ 말고도 ‘지역정치’에서 기성 정치인 뺨치는 노회한 구석을 보여주고 있다.

    충남 공주가 고향인 그는 지난 2월 재경 공주향우회에서 "저는 분명 공주가 고향인 충청도 사람이다. 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왔다"고 했다. 얼마 전 광주를 찾아서는 "DJ의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미래"라고 했다. 충청과 전라를 오르내린 발언의 궤적은 구여권의 ‘서부권 벨트’ 전략과 일치한다.

    이런 자질들, 그러니까, ‘전략적 모호성’을 관리하는 능력이나 ‘지역정치’적 감각 따위는 대체로 낡은 정치의 표본적 자질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구여권은 정 전 총장을 ‘새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뭐가 새롭다는 걸까.

    정 전 총장의 ‘새로움’을 하나의 개념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는 열린우리당의 전략가인 민병두 의원이다. 그도 조기숙 전 청와대 수석처럼 평등을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으로 나누는 분류법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민 의원은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미래세력’의 소임이라고 한다. 그가 보기에 구여권의 이념적 지향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서울대총장 시절 지역균형선발제도를 도입한 정 전 총장은 ‘기회의 평등’을 실천한 모범적 사례가 되는 것이다.

    구여권이 부여하는 의미가 이럴진대, 정 전 총장이 ‘3불정책’ 폐지를 들고 나왔을 때 구여권 인사들이 얼마나 황당했을지는 불문가지다.

    오죽하면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이 "(정 전 총장의 3불정책 폐지 주장은) 자기가 놀아야 할 터를 망각한 멍청한 발언"이라며 "차라리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나서라"고 독설을 퍼부었을까. 이 의원은 열린우리당 대전시당위원장으로 정 전 총장의 영입에 공을 들이던 인사다.

    물론 정 전 총장의 ‘3불정책’ 폐지 주장에서 자신의 ‘상품가치’를 스스로 깎으면서까지 ‘소신’을 저버리지 않는 정직하고 곧은 태도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을 현시한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은 없다.

    정 전 총장은 아마 좋은 선생이었을 것이다. 또 역량 있는 경제학자였을 것이다. 이론이 있는 대로 서울대를 비교적 잘 관리한 유능한 총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인은 아니다. 비록 시중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정치는 간단한 것도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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