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가입특례 제안 논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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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0일 08: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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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방금 비정규직 미화원 노조 사무실에 다녀왔다. 그들과 함께 투쟁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비정규직의 문제가 무엇인지, 진보정당의 필요성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정치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다 똑같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민주노동당을 노동자 서민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절실히 민주노동당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더욱 적극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운영과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그들과 함께 해온 투쟁이 당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여겨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했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신념으로 늘 들고 다니는 민주노동당 가입원서 몇 장을 내밀었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다시 사무실을 방문하니 그들은 너무나 미안해하며 한 장만 남겨두고 나머지 입당원서를 돌려주었다. 한 달에 만원씩 빠져나간다는 것이 비정규직인 자신들의 처지에서는 버거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미안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사실 그들에게 입당원서를 내밀기 가장 곤혹스러웠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다름 아닌 돈이 걸려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들이 아무리 민주노동당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그런 민주노동당에 자그마한 보탬이나마 될 수 있기를 원한다고는 해도, 가뜩이나 어려운 비정규직의 처지에서 갑자기 한 달에 만원씩 빠져나간다는 것이 버거운 일임은 분명하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꼭 입당을 하시라고 입당원서를 드린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번 더 민주노동당을 소개하는 의미에서 드린 것이었으니 부담 갖지 마시라고 얼버무렸다.

    사무실을 나오는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비 때문에 입당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당원이 되기를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입당원서를 내밀기가 이렇게 미안한 일이 되어야 하는 현실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얼마 전 심상정 의원이 비정규직 당원 가입 특례 제안을 했다.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그것이 이번 대선의 조직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그래야 제대로 된 노동자 서민의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럴 때에만 비로소 대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무척 훌륭한 조직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굳이 대선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또한 꼭 조직 전략으로써 구상하지 않더라도,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의 기본이며 또한 당의 정체성을 비로소 분명히 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 사이트입니다”라고 나와 있다. 그것이 당의 기본이자 정체성이다. 민주노동당은 당 이름에서부터 명시하듯 노동 계급의 정당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이 땅에서 신음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을 자신들의 정당으로써 받아들이게끔 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가 당 홈페이지를 통하여 입당을 하려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이디와 생년월일, 그리고 주소까지 입력하고 입당을 거의 마무리 지을 때쯤, 그는 당비계좌 입력 항목에서 “전업주부, 학생, 무직의 경우 5,000원 이상. 그 외의 경우에는 10,000원 이상”이라는 문구를 보게 된다. 누군가를 통해 입당원서를 건네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입당원서에는 “당비는 월 1만원 이상을 권장합니다. 단 학생과 실업자, 해고자는 월 5천원 이상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전업주부, 학생, 무직, 실업자, 해고자는 월 5천원 이상이라고 하지만, 어디를 보아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말은 발견할 수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당비를 납부할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것에서 만큼이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없이 똑같은 노동 계급으로써 평등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당 최고위원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당비를 현행 1만원에서 5천원으로 낮추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뿐만 아니라 심상정 의원이 제안한 것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에 한해 당원 가입 후 1개월이 지나면 선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검토해볼만 하다.

    이것은 개방형 경선제로 진보진영의 단결을 이끌자는 주장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진성당원으로 확보하는 방식을 통하여 노동 계급 내에서 당의 외연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물론 나는 현행 진성당원 제도가 충분히 훌륭한 제도이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지켜가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값진 결과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입당 후 3개월이 지나야 선거권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당규를 입당 후 1개월이 지나도 선거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수정하는 것은, 결국 선거만을 위한 정당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입당 후 1개월이 지나면 선거권을 부여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어디까지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한하여’라는 측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당이 되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비정규직 노동자에 한해서만큼은 과감히 특례를 적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당원의 문턱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진성당원으로 만들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

    물론 당규를 수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심상정 의원의 비정규직 당원 가입 특례 제안이 개방형 경선제와 도매금으로 치부되어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이대로 묻혀버리는 것은, 당을 위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박노자 선생님도 <레디앙>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심상정 의원의 제안을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보고 “당의 중심에 비정규직이 없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은 진정 노동 계급의 정당인가?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만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오해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또한 진정한 노동 계급의 단결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대중의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민주노동당에 미래는 없다. 이제 머리를 맞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필자는 그 출발점이 심상정 의원의 비정규직 당원 가입 특례 제안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논의라고 생각한다.

    마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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