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흡수와 관리'를 버무린 통일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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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10일 11: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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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15일 태극기 앞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사진=연합뉴스)
     

    어제(9일) 박근혜전대표가 한나라당 씨가 3단계 평화통일론을 내걸었다. 2.13 합의 이후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감안할 때, 그가 평화와 통일을 버무린 입장을 내놓을 것은 익히 예견되었던 사실이다. 비록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을지라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기대에 비해 너무나도 소극적이었으며 불충분하다. 중도세력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혹은 통일의 원대한 포부를 밝힘으로써 지도자상을 부각시키는 것보다는 여전히 불충분한 보수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 것일까? 혹은 ‘한반도 운하’와 같은 건설주의를 표방한 이명박과의 차별화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 것일까?

    이쯤해서 진지하게 박근혜씨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대통령이 된다면, 김영삼 정권의 실책을 극복하면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의 차별성을 긋는 의미 있는 한반도 정책을 펼 자신이 있는가? 한미동맹과 북한 문제라는 엇갈린 문제들을 원만하게 조정하며 한국의 주도 속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할 자신이 있는가?

    박근혜씨에겐 솔직함이 필요하다. 만약 ‘주어진 현실을 인정한다면’ 대통령에 취임하는 순간 판단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의 주변에 통일 혹은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적은 현실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의 성과 역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노무현 정권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비판은 한나라당에서도 나왔었다).

    그러기에 그는 오히려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진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했어야 한다.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여기며 그것을 기초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과연 무엇이 가능한지 그리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정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얻을 것과 포기할 것에 대해서 ‘보수’의 가치에 입각해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씨는 그런 진지한 문제 설정을 회피하는 것 같다. 그가 내놓은 3단계 평화통일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한 핵에 대한 보수의 입장을 충분히 수긍한다 하더라도, 그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의 독자적 역할을 제시하진 않는다. 또한 남북협력의 틀을 통해 긍정적인 여건을 조성하려는 시도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떻게 ‘평화정착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통일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인용은 박근혜씨의 연설문에서)는 것인지 모호할 따름이다.

    그는 모든 단계의 선행 조건으로 북한의 핵 폐기를 상정한다. 북한의 핵 폐기 과정까지의 남한 혹은 남북관계의 역할은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원칙으로 하는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하는 것 같다.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그의 입장은 결국 북한이 핵 폐기를 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과거부터 그의 이러한 입장이 위기관리에 취약하다는 반대파의 논리를 강화시켰음을 기억한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까지도 문제 삼는다. 북한의 120만 대병력과 서울을 타격할 수 있는 장사정포, 그리고 미사일은 분명 남한에 위협일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자본집약적인 남한 전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대북위협을 함께 말하는 것이 최소한의 균형이다. 군사적 적대구조의 청산은 군비축소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으며, 노동집약적인 북한의 군대와 자본집약적인 남한의 군대에 적용되는 군비축소의 규칙은 다를 것이다.

    적어도 남한이 북한을 위협하는 전력증강과 동맹편승 안보전략을 어떻게 전환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조금은 고민을 했어야 한다.

    박근혜씨가 경제통일과 정치통일을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급속한 통일의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통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남북한 양 국가적 실체가 어떠한 협력제도를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선 대안을 내놓아야 했다. 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종 기구들은 그 전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6.15 공동선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남북 사이에 맺은 중요 합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며, 자신이 제시한 구상이 과거의 합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통일방안’이라고 하면 나왔음직한 국가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에 대해 언급 자체가 없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이다. 과거 남북 합의와 성과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반도 안보에서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삼는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발전이라는 전략과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자세히 밝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노무현 정권과 ‘보수적 관점에서’ 무엇이 다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야 할 것이다. 아마 그 차이를 ‘미국에 대한 언어의 차이’를 제외하곤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형성에서 통일로 나아가는 길은 한미동맹이라는 협소한 경로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또 하나의 전략이다. 그것을 한미동맹이라는 구래의 낡은 틀로 한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평화체제의 형성과 통일로의 걸음을 가로막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씨의 언명은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 ‘북한 관리’와 무엇이 다른 지 모호하다.

    어쩌면 3단계 평화통일론이 북한 경제의 흡수를 노리면서도 그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대비한 북한 관리, 이 둘을 버무린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서 박근혜씨가 좀 더 분명하고, 진지한 답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 다수의 국민에게 진짜 변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보다는, 보수적이던 진보적이던 확실한 내용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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