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좌충우돌 기질이자 전략"
        2007년 04월 09일 10: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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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지 않은 사람이 노 대통령의 ‘좌충우돌’을 보며 혼란스러워 한다. 이런 인식상의 혼란은 한미FTA가 타결되면서 정점에 달했다. 특히 자신을 ‘진보개혁’으로 놓는 이들 가운데 이런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노 정부의 행태를 ‘배신’으로 규정한다. 혹은 ‘변절’이라고도 한다. 노 대통령은 지지자를 배신한 것인가. 아니면 노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가 착시에 불과했던가.

    "노 대통령 대선 공약대로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대권주자인 노회찬 의원은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인식상의 혼란에 대해 교과서적인 처방을 내렸다.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내건 공약을 살펴볼 것. 노 의원은 "지난 대선 후보 공약을 보면 노 대통령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그대로 계승한 신자유주의자다"고 했다.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은 구정치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온건개혁보수의 범주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면서 "다만 기성의 정치문화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식이 이 사람을 개혁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패권다툼 부각시키며 신자유주의 대연정 은폐"

       
     ▲ 사진=노회찬 의원실
     

    노 의원은 한미FTA를 ‘제2의 대연정’으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제2의 대연정’ 규정은 두 가지 점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신자유주의적 대연정은 이미 있어 왔고, 신자유주의 내부의 패권 다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노 의원은 "대연정은 이미 존재했다. 우리 정치의 95%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과 구열린우리당의 독과점 체제가 신자유주의 대연정이었다"면서 "이 대연정이 표면화되지 않는 이유는 반대세력과의 주전선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전선이 부각돼야 저들의 동맹관계도 부각될텐데, 저들은 민주노동당과의 대치선을 묵살하는 한편 자기들의 패권다툼을 키우면서 공동의 기반을 가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저들은 향후 정국에서도 자신들끼리의 패권다툼을 전면화시킬 것이다. 신자유주의 대연정은 지속되되 앞으로도 은폐될 것이다. 이런 은폐를 벗겨내는 데 있어 민주노동당의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여기에는 부분적으로 우리의 패착도 있었다. 차별화에 실패한 게 그런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소부르조아적 정치의식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모든 신자유주의자가 노 대통령처럼 ‘좌충우돌’ 하는 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자이지만 독특한 신자유주의자다.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이 갖는 정치적 개성의 핵심을 ‘소부르조아적 정치의식’으로 규정했다.

    이 같은 의식의 특징은 그때 그때 이해관계에 따라 극단적으로 태도를 달리 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노 대통령이 "’열배 남는 장사도 있다’고 하면서 아파트 원가공개 공약을 폐기한 것은 그 공약이 자신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득표에 대한 실리적 타산에서 동의했다가 깊이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서 폐기한 것"이라는 얘기다.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은 세속적 판단을 많이 한다. 산업자본가적 사고보다 상업자본가적 사고가 농후하다. 지난 대선에서 미국의 산업자본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금융자본은 노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이와 비슷하다"고도 했다.

    "역사상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 될 지도 몰라"

    노 의원에 따르면, 노 대통령에게 ‘좌충우돌’은 기질이자 전략이다.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은 기획된 좌충우돌 전략을 쓰고 있다. 자기 지지자들을 버리고 ‘좌충’한다. 마찬가지로 보수세력의 대대적인 반발이 예상됨에도 정상회담을 추진하며 ‘우돌’한다. 이런 것을 통해 이해타산을 뛰어넘는 지도자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이니셔티브로 해서 정국을 밀고가겠다는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를 통해 좌우 양쪽을 다 조금씩 꼼짝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한미FTA 전선은 남북정상회담으로 균열이 갈 것이 뻔하고 역도 마찬가지"라며 "노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노 대통령을 "어떤 정형화된 정치인의 상으로는 잘 안 잡히는 변종"이라고 표현했다.

    "노 대통령의 목표는 차기 정권에서도 영향력 유지하는 것"

    노 대통령이 ‘좌충우돌’을 통해 대선 국면에서 얻고자 하는 게 뭘까.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은) 차기 정권에서도 자신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힘을 임기 전에 마련하려는 욕구가 강력하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자기가 배제된 채 구여권의 진용이 짜여지고 대선이 치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영향력을 발휘해 보겠다는 것이고, 그 영향력이 대선 이후의 국면에도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노 대통령이 구여권의 대선 게임에 지속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노 의원은 "노 대통령은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벌써 두 명을 날렸다. 앞으로도 날리고 키우고 하면서 끝까지 관여할 것이다. 이번 한미FTA 추진은 그런 일을 할 상당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진보세력 바깥에 선거연합 할만한 신실한 동맹군 아직 없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맞설 진보진영에 대해서도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먼저 이번 대선에서 진보대연합의 범위에 대해 물었다.

    진보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노 의원은 "진보정치 세력을 넘어서는 선거연합은 신실한 동맹군이 있어야 가능한데 (현재로선) 신실한 동맹군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신실한 동맹세력이 있을 경우 선거연합이 검토될 수 있으나 지금 그것이 검토될 만큼 검증된 신실한 동맹이 있느냐 하면 아직까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일반적으로 진보진영으로 동의되는 세력 내부의 연합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진영 내부의 선거 연합이 향후 진보정치의 새판짜기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 민주노동당에 한국의 진보세력이 다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상대가 더 있다면 (재편은) 판단을 해야 할 문제인데, 아직은 판단하기 이른 면이 있다"면서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되면 판단이 분명해지지 않겠나 생각된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는 9일 오후 5시부터 노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약 50분간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한미FTA 타결 이후 언론의 관심사 중 하나는 노 대통령의 이념적 정체성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였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 ‘유연한 진보’라고 했는데, 노 대통령의 이념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나.

    "노 대통령에게 개발주의와 성장론은 확고한 철학"

    = 우리는 노 대통령을 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파적 관점 때문이 아니라 사화과학적 상식에서 볼 때 그렇다. 한 사람의 이념적 정향을 보여주는 여러 지표가 있다. 여기에 따를 때 학자들도 일반적으로 동의하는대로 노 대통령은 우파다. 유럽의 기준으로 따지면 중도우파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오른편에 치우쳐 있다. 경제관과 철학이 특히 그렇다.

    다만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좌파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무시되었다. 때문에 기성 보수정치권 내에서만 보면 노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왼편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의 일반적 구분법에 따를 때 노 대통령을 좌파나 진보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략적인 의도를 갖고 좌파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나는 초기부터 (노 대통령이 우파라는 사실을) 의심할 바 없다고 봤다. 지난 대선 후보 공약을 보면 노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자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다만 개인의 이미지가 친서민적이고 비주류적인 것이었을 뿐이다.

    이번 한미FTA 같은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물론 우파라고 다 한미FTA를 찬성하는 건 아니다. 노 대통령에게 개발주의와 성장론에 대한 맹신은 확고한 철학으로 잡혀 있다. 개발주의와 성장론에 대해 회의하는 우파도 있는데 노 대통령에겐 그런 회의도 없다는 것이 한미FTA로 확인됐다. 노 대통령은 비합리적인 것들에 대한 개혁 성향을 한편으로 가지면서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많이 갖고 있는 리버럴이다.

    "노 대통령은 산업자본가적 사고보다 상업자본가적 사고 농후"

    – 보수정치세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노 대통령, 한나라당, 구여권.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 분야별로 좀 다르다. 노 대통령은 탈권위주의와 같은 정치문화와 관련해서는 이들 가운데서 가장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역사관이나 철학은 굉장히 엉성하다. 이를테면 미국에 대한 판단이 굉장히 극단으로 간다. 정서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지면서 반북적 성향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을 특징짓는 건 소부르주아 정치의식이다. 개인의 이해타산에 따라 태도를 취한다. 그러다보니 이해관계에 따라 반응이 극단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는 한나라당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경제문제에서 노 대통령의 소부르조아적 민감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원가공개 문제를 들 수 있다. ‘열배 남는 장사도 있다’고 하면서 아파트 원가공개 공약을 폐기한 것은 그 공약이 자신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득표에 대한 실리적 타산에서 동의했다가 깊이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서 폐기한 것이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도 했는데, 정통 보수주의자들도 이런 얘기 함부로 안 한다. 시장 내에 정치권력과 자본의 충돌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세속적 판단을 많이 한다. 산업자본가적 사고보다 상업자본가적 사고가 농후하다. 지난 대선에서 미국의 산업자본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금융자본은 노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이와 비슷하다.

    "새시대의 맏형이 되기를 바랐는데 구시대의 막내로 자기규정"

    – 노 대통령을 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좌충우돌 모순덩어리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우파적 신노선을 자기식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복잡한 문제다. 이런 문제는 우리 정치의 변화, 즉 87년 체제의 성립과 와해로 이어지는 정치변동과 맞물려 보지 않으면 비과학적 판단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판단은 어디에 근거하나. 기본적으로는 정세를 민주대 독재로 보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최근의 반한나라당 전선으로 이어진다. 이 낡은 구도에 입각해 디제이와 노 대통령을 지지해야 하고, 노 대통령이 저렇게 망쳐도 반한나라당 전선으로 가야하고, 그냥 가기 염치없으니까 비노라는 딱지 붙여서라도 가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정치 패러다임이 달라져서 이제 독재-민주 대립의 시대는 갔다. 지역주의에 기생한 3김시대는 갔다. 다만 새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과도기가 참여정부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과도기가 새시대의 맏형이 되길 바랬다. 그러나 노 대통령 본인이 집권 초기 스스로를 구시대의 막내라고 규정했다.

    현 정부 초기에 유시민 의원이 내게 ‘민주노동당이 참여정부를 지지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길래 ‘새시대의 맏형 역할을 해라. 과거와 단절하고. 그러면 모른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얘기 끝났다. 그걸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참여정부는 구시대의 막내다’고 하더라.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이런 것이다. 평가자가 어느 위치에서 정치 변동의 스케일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 낡고 효력을 상실한 독재-민주 구도에서 보면 부족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나. 노 대통령은 민주세력의 적통을 잇는 새로운 사람이고, DJ와는 달리 탈지역주의, 탈권위주의 했으니까 공과가 다 있다는 식이다.

    지금 구여권의 386이 대체로 이런 의식을 갖고 있다. 이게 우리에게 굉장히 골치 아픈 부분이다. 국민들 속에선 여전히 이들이 진보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통탄해 마지 않는 부분이다. 제가 볼 때 노 대통령은 구정치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온건개혁보수의 범주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다만 기성의 정치문화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식이 이 사람을 개혁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 사진=노회찬 의원실
     

    "노 대통령은 정형적인 정치인의 상으로는 잘 안 잡히는 변종"

    – 한미FTA를 두고 실질적인 대연정이 이뤄졌다고들 한다. 이 대연정의 궁극적 방향은 뭔가.

    = 대연정이라는 표현을 전널리즘에서 1회용으로 쓰는 것은 그 이상 (적절한 것)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대연정이 정세진단의 결론이라면 거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1회용 연정이라면 모르겠다. 이 연정은 시효가 긴 것도 아니고 이 사안에 한해 결과적으로 입장이 같은 것일 뿐이다. 이제 대연정이 시작됐다고는 전혀 볼 수 없다.

    대연정은 이미 존재했다. 우리 정치의 95%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과 구열린우리당의 독과점 체제가 신자유주의 대연정이었다. 둘이 죽이네 살리네 하고 싸우면서 참여정부 이래 통과시킨 법률을 보라. 신자유주의와 관련해 큰 이견없이 처리했다. 싸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물밑의 빙산은 신자유주의 대연정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중 일부가 한미FTA에 반대한다고 해서 대연정이 깨지는 건 아니다. 이 대연정이 표면화되지 않는 이유는 반대세력과의 주선선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전선이 부각돼야 저들의 동맹관계도 부각될텐데, 저들은 민주노동당과의 대치선을 묵살하는 한편 자기들의 패권다툼을 키우면서 공동의 기반을 가리고 있다.

    저들은 향후 정국에서도 자신들끼리의 패권다툼을 전면화시킬 것이다. 신자유주의 대연정은 지속되되 앞으로도 은폐될 것이다. 이런 은폐를 벗겨내는 데 있어 민주노동당의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여기에는 부분적으로 우리의 패착도 있었다.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 그런 것이다.

    노 대통령은 기획된 ‘좌충우돌’ 전략을 쓰고 있다. 한미FTA는 노 대통령의 철학과 노선상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심도있게 검토된 진지한 노선은 아니다. 대선 공약도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미국 인사들의 FTA 요구를 거부했다.

    노 대통령이 한미FTA를 택한 건 개헌을 택한 것과 같은 발상에 기초해 있다. 굉장히 얕은 정치적 판단이다. 정국을 돌파해가는 기제로서 택한 것이다. 한미FTA로 ‘좌충’하고 정상회담으로 ‘우돌’하는 기획된 ‘좌충우돌’이다.

    노 대통령의 화법을 보면 그의 심리상태를 잘 알 수 있다. 한미FTA 타결 막바지 국면이던 지난 2일 노 대통령의 담화를 보면 ‘한미FTA로 내 개인에 득보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한미FTA 같은 문제를 놓고 개인의 득실을 따지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 아닌가. 그런데 이 사람은 늘 ‘나는 개끗하다’ ‘내 개인 때문에 하는 것 아니다’는 식의 화법을 즐겨 쓰고 방편으로 많이 삼는다.

    자기 지지자들을 버리고 ‘좌충’한다, 마찬가지로 보수세력의 대대적인 반발이 예상됨에도 정상회담을 추진하며 ‘우돌’한다, 이런 것을 통해 이해타산을 뛰어넘는 지도자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이니셔티브로 해서 정국을 밀고가겠다는 계산이다.

    이를 통해 좌우 양쪽을 다 조금씩 꼼짝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한미FTA 전선은 남북정상회담으로 균열이 갈 것이 뻔하고 역도 마찬가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어떤 정형화된 정치인의 상으로는 잘 안 잡히는 변종이다.

    "노 대통령 구여권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 끝까지 관여할 것"

    – 기획된 ‘좌충우돌’을 통해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고자 하는 게 뭘까.

    = 정치인은 권력의지가 있다. 역대 대통령이 걸어간 길을 보자. 막강한 지역적 뒷받침을 받던 YS는 완전히 실권했다. 자칫 정치적으로 책임추궁을 당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에겐 그런 상황을 피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일 것이다. 이 때문에 차기 정권에서도 자신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힘을 임기 전에 마련하려는 욕구가 강력하다.

    이는 차기 정권을 얻느냐 못얻느냐를 넘어서는 문제다. 노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자기가 배제된 채 구여권의 진용이 짜여지고 대선이 치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영향력을 발휘해 보겠다는 것이고, 그 영향력이 대선 이후의 국면에도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노무현식 개혁은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부분적으로 실현됐을지는 몰라도 엄청난 저항에 부닥쳤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은 여전히 상품가치가 있으며, 개혁의 추진동력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 그 얘기는 노 대통령이 구여권의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영향력 행사할 것이라는 건데.

    =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벌써 두 명을 날렸다. 앞으로도 날리고 키우고 하면서 끝까지 관여할 것이다. 이번 한미FTA 추진은 그런 일을 할 상당한 동력이 되고 있다.

    – 한미FTA는 이번 대선에서 얼마만한 변수가 될까.

    = 냉정하게 예측하기 쉽지 않다.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최대한 체결을 막고, 그게 안 되면 국회에서의 비준동의를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선에서 반대여론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건 이견이 없는 목표다.

    그러나 실제 어떻게 될 거냐. 결정적인 건 국민여론에 달렸다. 국민여론이 어디로 움직일 건가는 아직 미지수다. 여러 가능성이 있다. 지난 한 주처럼 일방적인 홍보로 (국민 상당수가) 급속히 포섭되어 (한미FTA를) 분열된 개인의 생존권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또 이 사안의 실제 결과가 정확하고 풍부하게 알려져서 국민들의 분노가 조직되는 경우가 가능하다. 우리의 목표는 후자다.

    "반한미FTA 전선이 대선에서 세력재편의 구획 기준 되기 어려울 것"

    – 진보진영 내부에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외연을 반FTA 전선의 수준까지 최대한 넓혀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반신자유주의 전선, 혹은 반FTA 전선의 우측 외곽선은 어디에서 그어질 것이라고 보나.

    = 나는 반신자유주의, 반한미FTA 두 전선이 동일하지 않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두 전선은 다 필요하다. 반신자유주의 전선이 중요하다고 해서 반한미FTA 전선을 협소화시킬 이유는 없다. 두 전선은 우리 의도와 무관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병존할 수밖에 없다.

    반한미FTA 전선에는 과거를 불문하고 협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찬성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나중에 본 협정문이 밝혀지고 국민 여론이 들끓을 때 반대진영에 합류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에게도 문을 여는 것이 운동의 법칙에 맞다고 본다.

    그런 운동적 필요성과 원칙에 입각해 볼 때 반한미FTA 전선이 대선에서 세력재편의 구획 기준이 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반한미FTA를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반신자유주의와 반한미FTA는 서로 모순되는 것도 아니다.

    반신자유주의는 종국에는 후보 단일화의 문제이고 선거연합의 문제이다. 반한미FTA를 선거연합의 문제로 등치시키는 건 우리의 희망여부와 무관하게 그렇게 안되는 것이다. (구여권 내 반FTA론자의 경우) 이미 본인들 의사가 그렇지 않나. 한미FTA를 진짜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열린우리당에서 나와야 한다. 나오더라도 제3지대로 갈 것이 아니라 다른 제안을 했어야 한다.

    – 한미FTA 협상 타결 이후 중도의 위기론이 나온다. ‘중도의 위기’를 보는 두 가지 각도가 있다. 죽은 중도를 살려야 한다는 것, 아니면 더 이상 중도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것.

    = 중도라는 것 자체가 왜곡된 정치지형의 사생아다. 물론 원래 중도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 특히 최근 얘기되는 중도는 야누스적인 면을 갖고 있다. 이념적 보수이면서 정치적으로 개혁 혹은 진보의 빚깔을 띠고 싶어하는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중도다.

    정치의 뿌리와 근간은 철저하게 보수에 두되, 그리고 일상적인 정치활동은 보수의 방식으로 하되, 선거 때가 되면 중도를 들고 나온다. 중도는 여름에 파리가 많아지듯 선거 때 많아진다. 선거용 위장막이다. 왜 그런가. 완강한 보수와 수구로서는 득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도는 보수와 진보의 사이에 있다기보다는 무정파 비슷한 것이다. 정치적 칼라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주의적이다. 이 중도의 실체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이번 대선과정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길은 두 갈래다. 보수냐 진보냐. 가운데 길은 없다"

    – 만의 하나 한미FTA협정이 체결된다면 우리사회의 정치지형에 어떤 변화가 올까.

    = 낡은 지역주의 체제, 보수 독과점 체제에서 보수와 진보가 분별 정립하는 체제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는 상태에서 한미FTA가 왔다. 한미FTA가 보수-진보 양대 체제를 구축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한미FTA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현된다면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고 계층간 갈등 더 크게 유발할 것이고 중간지대를 협소화시킬 것이다. 보수-진보의 철학과 이념으로 대별되는 양대축으로의 분화를 촉진시킬 수밖에 없다.

    – 이번 대선에서의 선거연합이 향후 진보정치 세력의 새판짜기에도 영향을 줄까.

    = 어려운 문제다. 예비후보 입장에 있는 내가 개인 생각이 어떻든간에 강하게 발언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싶기도 하다. 일단 원론적으로 말하면 진보정치세력에게 선거연합은 불가능한 금기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 정치세력이라면 폭넓은 연합도 필요할 때, 즉 연합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전략적 판단이 설 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원론적인 입장이고. 진보정치 세력을 넘어서는 선거연합은 신실한 동맹군이 있어야 가능한데 (현재로선) 신실한 동맹군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미FTA를 반대한다고 신실한 동맹군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부정적이다. 신실한 동맹세력이 있을 경우 선거연합이 검토될 수 있으나 지금 그것이 검토될 만큼 검증된 신실한 동맹이 있느냐 하면 아직까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치 세력 내에서의 연합은 어떤가. 그 가능성은 일상적으로 열려있다고 봐야 한다. 나는 누구보다 민주노동당의 중심성을 강조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손해도 많이 본 사람인데, 그래도 내 지론은 뭐냐하면, 흔히 동의되는 진보정치세력에 대해서 우리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당이 있다. 정당이고 대선에서 후보도 낼 것이다. 사회당이 후보를 내 봐야 우리와 비교가 안되고 (그러니) 묵살하고 가자는 견해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운동을 하는 사람의 태도는 아니지 않은가. 같이 하려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 같이 하려고 했는데 끝내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같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럼 같이하기로 한 다음엔 어떻게 할 거냐.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이 함께 하기로 해놓고 후보는 민주노동당 후보다, 이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이런 상식선에서 진보정치세력과의 연합과 연대에 대해서는 최대한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 그렇게 해서 진보정치 세력 내의 연합이 이뤄진다면 그것이 향후 진보정치 세력의 재편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하나.

    = 정세와 상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추구했던 게 진보정치연합이었다. 국민승리21을 만들었지만, 국민승리21이 선대본을 만들 때는 당초 국민승리21에 들어오지 않은 좌파들까지도 함께 들어오도록 해서 선대본을 꾸렸다. 그 이유는 선거가 끝나고 당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질서재편을 기도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 자체가 일종의 정치연합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에 한국의 진보세력이 다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상대가 더 있다면 (재편은) 판단을 해야 할 문제인데, 아직은 판단하기 이른 면이 있다. 지금 없다고 해서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덜 성숙됐는데 있다고 전제하기도 그렇다.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되면 판단이 분명해지지 않겠나 생각된다.

    – 스스로를 진보로 규정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의 ‘변절’을 보며 혼란스러워 한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 진보세력도 노무현 대통령이 저렇게 감으로써 피해를 본 세력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수업료를 굉장히 많이 냈다. 수업료를 많이 냈으면 교훈을 제대로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비극은 되풀이 된다. 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입각해서 보면 노 대통령은 거기서 어긋나지 않게 여기까지 왔다. 지금 노 대통령의 통치행태 내지 방향은 2002년에 이미 예고된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당시에 그런 것을 무시하거나 혹은 봤으면서도 못본체했다. 노 대통령이 현실가능한 최상의 개혁정치요 진보정치라고 믿었다. 심지어 노동진영 일부도 그랬다. 그 결과가 뭔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여러 정치세력을 판별할 때 개인과 이미지로 봐서는 똑같은 참담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냉정하게 철학과 정책 노선을 검증하는 게 왜 중요한가 깨달아야 한다. 한미FTA가 타결되는 국면까지 왔다면 우리는 보다 냉정해져야 한다.

    앞으로 길은 두 갈래다. 보수냐 진보냐. 가운데 길은 없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민중 편에 설 거냐, 소수 강자의 앞잡이가 될 거냐. 아직 다른 미련을 갖고 있는 분이 있다면 빨리 버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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