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탈하고 싶은 당신 이방음식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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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07일 1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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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은 엄청 많은데 머리는 멍하니 잘 안돌아가고 그러니 일이 손에 잡힐 리도 없었다. 괜시리 짜증만 나고 애꿎은 담배만 빨아대기를 반복하다 밤늦게 까지 일하던 사무실 동료들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양꼬치나 먹으러 가자" 그렇게 한명 한명 모두 5명의 ‘동지’들이 ‘음식연대’를 하게 됐다.

    사실 우울하거나 짜증날 때 기분 전환을 위해 쉽게 상상되지 않는 낯선 ‘맛’을 찾는 일은 내 오랜 습관이다.(한번 해보시라. 확실히 기분이 좋아진다.)

    버스를 타고 가리봉동 시장 앞을 내려 시장통을 들어가니 이름도 뜻도 모를 延吉羊肉店, 王中王肉館, 今丹飯店, 延邊狗肉館 등 간판들과 훅~ 낯선 향료의 향기가 우리를 맞는다. 오래만에 가본 가리봉동 시장. 이전 허름했던 간판들이 많이 산뜻해지고 다양해진 걸 보니 이곳 가리봉동도 개발의 바람이 몰아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슬며시 파고든다. 이미 주변은 테크노 파크다, 디지털 공단이다 하며 초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걸 보니 이것이 괜한 염려는 아닌 듯싶다.

    양꼬치, 개꼬치 등의 메뉴로 유혹하는 많은 집 중 어느 집을 들어갈까 두리번거리다가 미처 치우지 못한 개업화환들로 한 구석에 가득한 집을 찾아 들어갔다. 맛을 찾는 예민한 본능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가리봉동에 어울리지 않은 깨끗한 집에 들어가니 어눌한 한국말의 종업원이 우리를 맞이한다.

    시험공부하듯 메뉴판을 보다 1인분(10꼬치)에 7,000원하는 양꼬치 3인분, 물만두 하나(5,000원), 볶음밥 (4,000원)을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양고기’에 대한 추억들로 이야기가 채워진다. 일행 중 일부는 슬며시 양고기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떠올렸다. 해외여행 중에 맛보았던 이상한 향과 노린내 나는 양고기 맛에 살짝 두려움을 나타냈다. 다른 동료는 다른 곳에서 맛보았던 값비싼 양고기 캐밥에 대해 떠올렸는지 연신 걱정을 해댄다.

       
      ▲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는 숫불 위의 양고기 꼬치구이.
     

    사실 양고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육고기 중에 하나이다. 육고기 소비량으로 보자면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순이 아닐까 싶다. 이슬람, 인도, 중국 음식 문화권에서 양고기가 대량소비 되고 있으니 서양 문화권을 제외하고 볼 때, 어찌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양고기를 즐겨 먹는다고 할만하다. 세계의 시각으로 보면 양고기를 못 먹는 우리의 입맛이 낯선 것일지 모른다.

    이런 저런 양고기와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우리 밑반찬 같은 ‘땅콩볶음’과 ‘양배추 절임’, 그 다음으로 두부를 납작하게 눌러 만든 깐두부 채에, 파, 채소에 마늘 소스와 고수로 향을 낸 샐러드가 나왔다. 샐러드로 입맛을 돌게 하고 나니, 고춧가루와 깨소금에다 즈란이라는 향료를 섞어 만든 양고기를 찍어 먹는 소스가 사람마다 앞에 차려진다.

    즈란이란 향료는 작은 볏잎 씨앗처럼 생긴 향료인데, 보통 매운 인도 커리를 먹고 나서 입안의 매운 기를 빼고 깔끔하게 하기 위해 먹는다. 마치 우리 식당에 박하사탕처럼… 뭐, 일부 사람은 화장품 맛이 난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드디어 상위에 숯불이 올려 지고 쇠꼬챙이에 꽂혀진 양꼬치가 올라온다. 가장 먼저 감동했던 것은 쟁반에 수북히 올라온 30여개나 되는 양꼬치들이다. 양고기는 얇은 쇠꼬치에 다섯 혹은 여섯 조각 반듯하게 꽂혀있었다.

    보통 양꼬치에 사용되는 고기는 육질이 연한 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생후 1년 미만의 어린 양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값이 비싼 탓에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양털을 생산하고 식용으로 도축된 머턴이라는 고기를 사용한다.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간을 숙성시켜 육질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사실 고기가 가장 맛있을 때는 신선할 때보다 부패되기 바로 직전이다.) 그리고 로즈마리나 월계수 잎, 배즙, 타임과 같은 양념에 잘 재운 후에 고추기름으로 마무리를 한 후 내온다.

    하여튼 양꼬치가 익어가는 동안, 음식과 사회에 대해 도란도란 서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중에는 음식이 어쩌면 사회를 통합하고 통치하는데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까 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예를 들자면 돼지고기를 부정한 것으로 보는 이슬람 문화권의 세력은 정확하게 돼지고기가 사육되기 어려운 지형적, 기후적 조건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돼지사육과 고기를 즐겨먹는 문화라면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는 이슬람 문화를 근원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반대로 통치하는 입장에서는 그 반발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징기스칸의 몽고제국은 동유럽이 그 지리적 한계였는데, 이는 몽고 음식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와 비슷하다. 몽고의 음식문화는 끓는 물에 고기를 삶아 먹는 ‘스끼’ 문화이고 당연히 국물을 먹는 사발(Bowl) 문화이다. 반면에 서양은 국물이 없는 접시(Plate)문화이니 음식 문화간의 심각한 충돌이 영토의 한계와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헝가리에는 ‘굴라쉬’라는 소고기 스튜가 있는데 맛이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거의 흡사하다. 유럽에서는 좀 처럼 맛보기 힘든 국물음식 ‘굴라쉬’는 이런 영향의 탓이 아닐까?(참고로 옛날 헝가리는 몽고제국의 일부였다. 하여튼 이 이론은…’아님..말고다’)

    양고기 맛에 반하다

    양고기가 황갈색으로 구워지고, 약간은 두려운 마음에 약간은 설레이는 마음에 향긋한 양꼬치를 입에 넣고 씹는 순간, 모두가 한결같이 "어 괜찮아", "맛있어"를 연발하며, 그 낯설고 신비한 양념 맛에 탄성을 질렀다. 숯불에 적당히 익혀져 겉은 숯불 향과 향료의 미묘한 어우러짐이 감칠맛을 돌게 하고 속은 부드러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아 내렸다.

    그렇게 꼬치를 소스에 돌돌 찍어 먹다보니 많아 보였던 30여개의 꼬치가 금방 동이나, 20개의 꼬치를 추가 주문하고야 말았다. 2000원 하는 코우뻬이술(잔술)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하며 양꼬치를 먹는 시간은 그 전까지 가득했던 짜증도, 우울도 어디론가 몽땅 날려버렸다.

    가리봉동의 양꼬치 요리는 노린내를 싫어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잡기 위해 노린내를 잡기 위한 양념이 많이 발달한 듯싶다. 그래서인지 여행하면서 맛보았던 양고기와는 달리 아무런 거부감 없이 양고기의 맛과 향신료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따뜻한 숯불에 양꼬치를 돌돌 돌려가며 구워먹는 재미, 하나하나 고기를 빼어 먹는 재미까지 있다. 아무래도 나 가리봉동 양꼬치에 확실히 꽂힌 것 같다.

    맛있게 먹고 나오는 길, 중국식품점에 들어가 코우뻬이술(잔술)을 샀는데, 계산을 하고 나서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30ml짜리 잔술 세개에 1,000원.

    다양한 이방인들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또 다른 행복과 느낌을 가지는 일이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이방인들의 음식을 맛보라. 그렇게 함께 맛보고 섞여서 살아가는 것은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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