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수주의 정권 창출을 향해"
    2007년 04월 06일 09: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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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한미 FTA타결에 대한 상세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3의 개국, 집념의 리더십, 뚝심’. 한미FTA 타결 소식을 전하는 ‘조중동’의 헤드라인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선진경제의 큰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했고, 전여옥 최고위원은 한국측 협상 대표들을 피겨요정 김연아, 수영선수 박태환에 비유하며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맞은편에선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막기 위해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노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거리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 "한미FTA 타결로 노무현 대통령과 일부 보수언론, 한나라당의 대연정 삼각동맹이 강력히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 가운데 가장 먼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던 ‘민생정치모임’ 천정배 의원은 "현 정부가 스스로 국민과 후손의 주권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노가 친노가 되고 ‘진보개혁’이 반노의 태세를 굳히는 어수선한 와중에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껑충 뛰었다.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성향이 돌아오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6일 "(FTA협상 타결 이후 노 대통령의) 지지층 중에는 과거에 지지했던 사람들이 빠지고 새로 들어간 부분이 있다"면서 "보수진영에서 돌아선 것이 아니라 원래 노 대통령을 찍었던 중도성향의 계층, 예를 들면 수도권 40대 분들이 많이 지지를 한 것이어서 10%가 들어간 게 아니라 그 이상이 회복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동안 노 대통령이 좌파다, 분배주의자다, 경제성장에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비난을 받으면서 노 대통령을 잘 몰랐던 분들이 ‘그렇지 않았구나. 내가 노 대통령을 제대로 봤구나’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임기 말로 오면서 지지도가 올라가는 것은 노 대통령의 변하지 않는 실체가 국민들에게 전해지고 각인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을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전 수석은 좌파와 진보를 나누는 특유의 분류법에 입각해 노 대통령을 ‘유연한 진보’로 규정했다. 그는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좌파와 달리 진보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데, 그런 면에서 노 대통령은 성장도 하고 분배도 같이 하는 동반성장이다. 노 대통령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글로벌 신자유주의 대변자"

반면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은 국내외 거대 글로벌자본, 보수사회정치세력, 신자유주의 국가관료, 그 이데올로그들로 구성된 힘 ‘신자유주의 동맹’의 정치적 대표자로서 글로벌 신자유주의라는 근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반동적인 지배이념을 대변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수장으로 최소한의 ‘국가의 중립성’마저 외면하고 ‘시장독재, 자본독재’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는 최전방에 서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그런 이념의 실현과는 무관한 제3자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결단하는 선지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당당히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교수는 "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꼬투리 잡던 수구사회정치세력들과 언론들이 지지, 환호하는 것은 결코 ‘의아한 것’이 아니"라면서 "이를 새삼스럽게 부각시키는 다수 언론들의 부산한 행태는 그들과 노무현 정권이 여전히 상이한 이념의 정치세력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그 인식이나 의도 여부를 떠나 이미 사산된 노무현 정권의 ‘개혁성’을 복권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언론의 호들갑을 비판하기도 했다.

"노무현, 한국적 신보수주의의 역사적 기원"

이 교수의 논리가 노무현 정부의 ‘현재’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론’은 노무현 정부의 위치를 한국 민주주의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동태적으로 읽고 있다.

최 교수는 지난 2월 28일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진보개혁의 위기를 말한다’ 출간에 맞춰 경향신문에 기고한 서평에서 현 정부에서의 지배적 민주주의관에 대해 "민주주의는 정치의 영역에 한정된 원리일 뿐 경제는 시장과 성장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집약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정치개혁 하고 부패 안하고 원칙 지키며 권력 행사는 덜 하지만, 기업의 투자의욕을 위해 법인세 인하하고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야 한다는 태도를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또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면서 "신자유주의 개혁파라 부를 만한 새로운 보수주의의 역사적 기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를 "한국 보수주의의 두 번째 기원"이라고 했다.

최 교수의 이 같은 이론에 따를 때 개헌, 한미FTA,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동떨어진 듯 보이는 3대 의제는 효율화, 비용의 최소화, 시장영역의 최대화와 정치영역의 최소화라는 ‘신보수주의적 노선’의 맥락에서 함께 묶여진다.

   
  ▲ 사진=청와대
 

‘구여권 vs 한나라당’의 구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노 대통령 

‘신보수주의적 노선’의 중심은 노 대통령이다. 열린우리당을 위시한 구여권,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있는 한나라당은 공히 신보수주의적 개혁의 대상이 되는 구체제의 잔여물로 보인다. 이것이 앞서 조기숙 전 수석의 표현대로 노 대통령이 ‘유연’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노 대통령은 구여권과 한나라당 가운데 어느 곳으로 갈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중심에 서서 양측의 이슈를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필요에 따라 싸우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노선을 관철시키는 ‘실용적’ 전략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 1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대선에 관계없이 할 일은 하고 내일이 선거라도 부당하게 공격당하면 반드시 해명할 것이다. 여야 관계없다"고 한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읽을 때 의미가 한층 분명해진다.

‘대선에 관계없이 할 일’ 가운데 핵심적인 것 세 가지는 개헌과 한미FTA, 남북정상회담으로 추측된다. 이런 이슈들을 쥐고 흔들면서 노 대통령은 대선국면까지 정국 운영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의 목표는 신보수주의 정권의 창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이번 대선에서 노 대통령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권 재창출이나 집권 연장을 공히 소망했다. 그를 이루기 위해 특정인, 특정 세력을 키우거나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 점에서 다소 모호하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세력과 인물이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고건 전 총리는 ‘실패한 인사’라는 말 한 마디로 날려버렸고, 정운찬 전 총장, 이명박 전 시장을 겨냥해선 "경제학을 공부하거나 기업을 해봤다고 해서 경제를 잘 아는 건 아니다"라며 일격을 가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에게는 "원칙을 파괴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정치인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구여권의 대권주자인 김근태, 천정배, 정동영 세 사람은 한미FTA 문제로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다. 정세균, 김혁규, 유시민, 한명숙 의원 등은 친노적 성향이 강하지만 아직 대중적 존재감이 떨어진다. 다만 이들 친노 성향의 대권주자군과 관련해선, 노 대통령이 1월 25일 기자회견에서 "도리를 찾아 가다보면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 선두는 바뀔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자신이 중심이 되어 정치의 틀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고, 이것이 성공할 경우 대권경쟁의 환경 자체가 달라진다"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친노 성향의 후보가 급부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의 일차적인 목표는 신보수주의적 정권의 창출이며, 이것이 담보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수정치 재편 통해 강력한 신보수정권 추진할 것"

노 대통령의 보수정치 재편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 차기 집권을 예약해놓은 듯 보이는 한나라당을 흔들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그동안 한나라당 에너지의 근간은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이었는데, (한미FTA는) 노무현의 실정무능 파이프를 먹고 살아온 한나라당에겐 노무현이라는 한 쪽 유전이 폐광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또 하나의 유전인 냉전 상황은 이미 말라가고 있으니 한나라당의 위기를 전망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낙승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이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심 의원은 "노무현이 승리한다면 한미FTA 찬성세력이 보수정치 재편을 통해 강력한 신보수 정권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는 제2의 유신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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