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책이라도 읽고 우겨라
    2007년 04월 06일 04: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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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홈페이지
 

어제(5일) 청와대 웹사이트의 전면에 글이 올라왔다. 글의 내용은 현재 한미 FTA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ISD (투자자-국가 분쟁 절차)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에 대한 비판에 대해 반박하는 것인데, 주목할만한 것은 그 제목과 부제이다. “ISD 반대는 세계화하지 말자는 것 :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제도… 독소 조항 주장은 왜곡 선동”이라는 실로 울긋불긋한 문장이다.

나는 지난 1년 간 정부와 관변 지식인들이 지겹게 주장해온 이런 주장이야말로 지독한 왜곡 선동이라고 보며, 그 허구성이 모두 드러난 지금 이를 계속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 행위라고 생각한다.

글의 주된 논지는 낯익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제도는 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합리적인 제도이다. 둘째, 분쟁이 벌어져서 정부 정책이 무력화된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라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이 “왜곡 선동”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단단히 쐐기를 박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이 제도는 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심한 논란과 저항을 불러일으킨 제도이다. 둘째, 이 제도로 인한 투자자 분쟁으로 인하여 정부 정책이 무력화되는 사례는 대단히 많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정부와 관변 지식인들은 이 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을 “무지와 오해”로 가득찬 자들이라고 매도해왔다. “무지와 오해”로 가득찬 자들은 바로 그들이다. 인터넷에서 단 한 번만 검색해보아도 이 제도가 “공공성을 저해하면서까지 투기꾼의 부당한 이익을 보호”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하는, 전 세계의 시민단체, 학자, 변호사, 각종 국제 기구에서 나온 수 만 개의 글들을 접할 수 있다.

한 예만 들자. UN 산하의 UNCTAD에서 2004년에 나온 한 문건에서 투자기술기업개발국의 칼 소방 (Karl P. Sauvant) 국장은 이 제도의 잠재적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새로 FTA나 BIT를 체결하는 나라들은 이 ISD 제도에 대해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어째서 1999년 시애틀에 모여든 전 세계의 반세계화 운동가들은 이 제도를 환경과 공공성을 파괴하는 최악의 적으로 단죄하였던 것인가. 어째서 오스트레일리아 의회 보고서는 이 제도야말로 “미국 투자자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 주권을 넘는 부당한 권력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고 진단하였고, 2004년 체결한 미국과의 FTA에서 ISD를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렸던가.

   
▲ 홍기빈 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ISD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나온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바로 이번 FTA 협상의 상대국인 미국에서도 이번 한미 FTA에서 ISD가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미국 주정부 의회 전국 회의(National Conference of State Legislature) 산하의 노동 경제 발전 위원회(Labor and Economic Development Committee)는 지난 3월 20일 미국 통상대표부(USTR)에 보낸 공식 서한에서 이 제도가 외국 투자자들의 권력을 부당하게 강화시켜 미국 주정부의 입법 권력을 약화시킬 것이므로, 반드시 한미 FTA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Inside US Trade, 3월 20일자, “U.S., Korea Faces Five Investment Issues in This Week’s Negotiations”)

멀리 갈 것도 없다. 다음은 지난 2월 1일 <프레시안>에서 입수하여 보도했던, 작년 8월의 ‘ISD 점검 관계자 회의’에서 나온 정부 각 부처의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 B : (…) 외국인 투자 지분이 단 1%인 경우에도 소제기가 가능한 것이 문제며, 청구액이 1조 원이 넘는 사건이 많아 수백만 달러의 변호사 비용이 소요되는 소송이 다반사일 것이다. (…) 국제중재에 대한 실력이 뛰어난 호주도 투자자-국가 간 분쟁조항(ISD)을 삭제했는데, 국제중재 실력이 일천한 우리가 ISD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으로서 우리 국내 법제를 미국이 신뢰해 줄 것을 요청해 ISD 배제를 주장해야 한다. (…) 미국이 우리 사법 시스템을 불신한다는 이유로 ISD 배제 문제를 제기조차 안 해선 안 된다.

건교부 관계자 A : 국제중재 절차에서 수용 관련 분쟁을 배제한 2차 협상안이 관철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나라는 직접수용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서, 간접수용은 ‘조림 제도’, ‘도시계획 제도’, ‘부담금 제도’등에서 각각 규율하고 있다. 간접수용에 대한 보상은 국내절차에 따라야 한다. ISD 도입시 국내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 간 보상액에 차이가 생길 것이다. (…) 금리 정책을 통해 부동산 정책을 수용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부동산 관련 규제가 매우 많은 상황이다.

재경부 관계자 A : [한미 FTA와 무관하게 우리도 간접수용을 우리 법체계 안에 도입해야 한다는 통상교섭본부 측 입장에 대해] 간접수용을 국내법에서 인정하면 재정부담 문제가 매우 크다.

법무부 관계자 B : 미국에서도 ‘tantamount to expropriation(수용에 상당하는)’에 대한 중재판정부 재판관들의 개념 정의 시도가 있었으나, 미 법원에서도 백여 년 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중재판정부에서 해결하겠냐며 포기한 사례가 있다. 이럴진대, 우리나라에서 당장 간접수용에 대한 명백한 개념 정의를 하겠다는 것을 어불성설이다.

재경부 관계자 B : ISD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로서 그 결과 global standard(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실체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법무부 관계자 A : (…) 한미 FTA의 ISD는 단순 승패소 문제를 넘는 파급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Ethyl사건(미국회사 에틸이 화학물질 MMT의 수입을 금지한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2억5000만 달러의 소를 제기하자, 캐나다 정부가13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MMT를 유해물질로 규정한 데 대해 공개 사과하는 조건으로 합의해 소를 취하한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한 건이라도 발생하면 우리 국민 정서상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이며 이는 정부 규제 조치의 위축을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므로 단지 일개 case(소송)의 문제가 아니다.

건교부 관계자 A : 간접수용이 ‘규제적 수용(그린벨트지정 등 처음부터 개인 재산권에 대한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정부 조치로, 우리 헌법에는 규제적 수용에 대한 보상 근거가 없다)’까지 포함한다면 엄청난 소송 사태로 이어질 것이다. 간접수용의 해석이 다이내믹하게 전개된다면 소송 규모가 얼마나 크게 될지 모른다. (…) 직접수용도 ICSID(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로 가면 보상액이 커진다.

재경부관계자 B : (…) [미국은 관련법을 수정해] ‘단순한 (재산) 가치의 저하는 간접수용이 아니다’라고 규정했으나, TPA(신속촉진권한) 채택시 전미제조업협회(NAM, 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s)의 반대로비로 상원에서 근소한 표 차로 도입되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 B : 국내절차 소진, 패소자 부담, 설립 전 단계 NT(내국민대우) 배제 등 보완책을 제시하기 전에 ISD 전체를 완전히 삭제하자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

건교부 관계자 A : 미-호주 FTA처럼 ISD 삭제를 주장해야 한다. 태스크포스 회의시 관계 부처에서 ISD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스크포스 입장으로 이를 대외경제장관회의에 보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부처의 반대 의견도 병기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보이는 여러 정부 관계자들의 ISD의 문제점에 대한 파악과 비판은 대단히 날카롭고 깊이가 있다. 이러한 정부 여러 부서의 반대와 문제의식이 거의 완전히 묵살되어 버린 것은 대통령 이외에는 아무도 통상교섭본부를 통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기형적인 정부 구조 그리고 이를 십분 활용한 노무현과 김현종의 일방적인 “통상 독재”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묻고자 한다. 이 문제 많은 ISD 제도의 본질과 성격을 “왜곡”하여 “이 제도를 반대하는 자들은 세계화를 하지 말자는 자들이다”라고 무지막지한 이념적 “선동”을 일삼는 주장은 어느 쪽인가? 바로 청와대 민정 수석실에서 작성하여 어제 웹 사이트에 올린 바로 그런 문서가 아닌가. 국민들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고 토론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정부가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FTA를 무작정 정당화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이 “왜곡 선동”을 지난 1년 간 줄기차게 해온 이들이니, 우리가 아무리 목소리를 올려도 당분간 그만 둘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왜곡 선동을 하려면 제발 기본은 좀 지키라. 선전 선동(propaganda and agitation)의 기본은 대상이 되는 대중들의 의식 수준을 먼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ISD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이들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 나라의 담론에서 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부터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큰 서점에만 나가 보아도 송기호 변호사가 쓴 『한미FTA의 마지노선(개마고원)』과 같은 책에서 이 제도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볼 수 있으며, 졸저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 : 한미 FTA의 지구정치경제학(녹색평론)』도 참조해 볼 수 있다.

이 제도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해 알고 있는 수준은 청와대 글과 같은 것으로 현혹이 가능한 정도는 훨씬 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이런 책이라도 먼저 읽어보고 나서 “왜곡 선동”이라도 해야,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기는커녕 조소와 짜증만 사는 사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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