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컴퓨터를 배운 당신이 가르쳐준 것들
    By
        2007년 04월 04일 03:44 오후

    Print Friendly

    자꾸만 동지의 해맑은 미소가 떠오르네요. 한편으로는 동지의 그 모습이 저희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의식이 있다는 소식에 여전히 맑은 정신으로 한미 FTA 협상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걱정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아프네요. 지금 이 순간에도 동지의 몸은 상처와 싸우고 있지만 동지의 맑은 정신은 우리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002년 쯤인가요. 제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교육과 생애사’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삶에서 어떤 경험과 배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공부하는 시간이었지요. 저는 허세욱 동지의 삶을 ‘어느 택시 노동자의 학습생애’라는 이름으로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 지난 3월 9일, 신림역에서 한미FTA저지를 위한 1인 시위에 나섰던 허세욱 당원의 모습. ⓒ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눠왔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막걸리 배달일로 노동하는 삶을 시작했지요. 봉천동 달동네 단칸 셋방에서 살면서 그래도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 달동네에 철거가 들이닥쳤습니다. 왜 이렇게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짓밟히고 쫓겨나야만 하는지 참으로 서러웠습니다.

    가난한 이웃 사람들과 함께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막걸리 술기운에 힘겨움을 서로 털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봉천동 달동네에 불어닥친 철거는 집만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웃음까지도 철거해 버릴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동지는 좌절하지 않았지요. 끝까지 이웃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비록 집은 철거 당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웃음은 지켜내었습니다.

    철거 투쟁을 하면서 알게 된 봉천 놀이마당에서 풍물을 배웠지요. 풍물은 그냥 악기가 아니라, 사람들과 흥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동네에서 명절이나 행사 때면 풍물패 단원이 되어서 장구며 북을 쳤지요. 자신은 실력이 모자란다며 맨 뒷자리에만 서서도 가장 흥겹게 함께 했지요.

    허세욱 동지는 늘 묵묵하게 함께 해왔습니다

    택시 기사 일을 시작한지도 꽤 되었군요. 하루 종일 많은 손님들을 만나죠. 만나는 손님 한분 한분에게 환한 미소로 인사하였습니다. 동지의 택시 안에는 언제나 참여연대 소식지며, 각종 유인물이 있었습니다. 오시는 손님 한분 한분께 이런 저런 말씀 나누면서 꼭 한번 읽어 보라고 유인물을 건네주셨죠.

    나이 드신 분이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을라치면 꼭 집에까지 짐을 들어다 주시던 당신은 친절하고 다정한 택시기사입니다. 한독운수 노조에 가입한 후, 노조라면 노동자와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에 많이 고민하셨습니다. 기어이 한독운수 노조는 민주화되었지요.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매우 기뻐하셨던 동지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모범당원상도 받으셨지요. 당신이 받아야할 상이 아니라며 마지막까지 사양했지요.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 용산 미군기지 월례집회, 평택 미군기지 투쟁 현장에도 늘 함께 했습니다.

    언제나 앞에 나서지 않고 뒷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관악주민연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관악 사회복지 회원이 되어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동지는 언제나 배우려고 하였습니다. 집회장에서 받은 유인물 한 장은 꼭 간직해 두고 두고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올라치면 꼭 나중에 누구에게든 물어봐서 이해를 하려 노력하였지요.

    신문을 보고 중요한 내용이 있으면 잘라서 보관하면서 읽고, 너무 많이 봐서 헤질까봐 문방구에서 코팅까지 해서 읽고 또 읽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지요. 컴퓨터를 배우면 더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저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고 했지요.

    그 어려운 한미 FTA가 왜 문제인지 하나 하나 스스로 이해하고 깨우쳐 나가는 동지의 모습은 젊은 당원들을 소리 없이 추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번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한미 FTA 협상 중단 노숙 단식 농성 때였지요. 하루 종일 농성장을 지켰던 동지의 모습이 기억나네요. 얼마 전에는 손수 한미 FTA가 무엇이 문제인지 적어서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계시더군요. 이렇듯 동지는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건강하게 일어나십시오

    그런 동지께서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망국적인 한미 FTA 폐기하라.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 엠블런스에 실리는 마지막 순간 까지 계속해서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화기가 폐에 흡입되어 내상이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동지께서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말했던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동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지만, 동지의 정신은 여느 때처럼 맑을 것입니다. 동지께서 우리들과 함께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동지께서 다시 건강하게 일어나실 때는 한미 FTA를 기어이 저지해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미소가 예쁜 사람 허. 세. 욱. 부디 쾌유하기길 기원합니다. 늘 함께 하겠습니다.

    [알림]
    허세욱님의 쾌유를 비는 다음 까페가 만들어졌습니다. 방문하셔서 꼭 가입하시고, 힘이 되는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까페는 다음에서 ‘힘내세요, 허세욱님’으로 검색하셔도 되고,  http://cafe.daum.net/taxidriver53 로 바로 오셔도 됩니다.
    아울러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 마련을 위해 모금계좌도 만들었습니다. 십시일반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금계좌는 국민은행 794002-04-026736 (예금주 이봉화: 민주노동당 관악구 위원회 위원장/016-9344-1992) 입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