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군주제' 미국 '의회제'에 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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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04일 03: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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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28일 시청앞 촛불집회 현장에서 "쌀만 남기고 다 퍼주기로 이미 짜 놓고, 쌀만은 지켜내지 않았냐고 국민을 호도할거냐?" 라며 강하게 협상주체들을 꾸짖는 권영길 의원. ⓒ 민주노동당 이치열 기자
 

1. 협상 타결 그 이후, 자화자찬에 도취된 정부

4월 2일, 한국 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던 한미FTA 협상이 드디어 타결되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협상 관계자들은 협상 결과에 매우 만족해하며 자화자찬에 도취된 듯 한 모습을 보일 정도이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시장, 의료 시장이 개방되지 않아서 오히려 아쉬웠다는 입장을 밝힐 정도이다. 또한 한덕수 총리는 다음 달 중순까지 협상문을 전면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검증할 테면 검증해보라, 우리는 자신 있다’라는 태도이다.

협상의 결과는 정부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각종 용역보고서들과 협상문 전문이 공개되면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검증을 거치게 될 것이다. 경제적 이해득실, 독소조항은 없는지, 심각한 공공적 가치의 훼손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 국회는 물론 관련 전문가들과 언론,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동참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협상의 시작부터 타결까지’ 장장 14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던 한미FTA 협상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어둡고 암울한 현실을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한번쯤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2. 협상의 본질 – ‘한국의 군주제’는 ‘미국 의회제’에 완벽하게 패배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미FTA 협상은 ‘한국의 군주제’와 ‘미국 의회제’가 협상 전쟁을 벌인 것이며, 이 협상에서 한국의 군주제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완벽하게, 그야말로 ‘완벽하게’ 패배하였다.

한국정부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완벽하게 패배했다고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정치철학(협상철학)의 패배이며, 민주적 절차와 제도적 민주성의 완벽한 패배였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한국적 정치체제’의 완벽한 패배였다.

설령 정부와 수출지상주의자들이 호들갑을 떨듯 일부 분야에서 수출이 진전된다고 할지언정 이 같은 명백한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설령 산업화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할지언정, 산업화를 위해서 노동자와 농민들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민주주의’는 돈 몇 푼과 쉽게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 협상 결과에 스스로 만족해하며 지난 14개월간 지적되었던 노무현 정부의 ‘통상독재’ 문제에 대해 별것 아닌 것쯤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박정희’로 거듭나고자 한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

3. 한미FTA 협상이 ‘한국 군주제’와 ‘미국 의회제’의 대결로 보는 이유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의 통상시스템은 한마디로 ‘통상독재’이다. 그리고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통령 개인의 ‘고독한 결단’에 국민과 나라의 운명이 내몰려있는 사실상의 ‘군주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FTA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밟는다. 보통의 경우 초기에 산학연 공동연구를 비롯 관련 연구기관들의 연구가 축적된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은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무시되었다. 또한 관련 법규로 규정하고 있는 공청회 개최 역시도 간단히 무시되었다. 협상을 하기도 전에 4대 선결조건이라는 굵직한 의제들에 대해 미리 합의했으면서도 정부는 그런 적이 없다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국제 통상 협정이란 필연적으로 국내 비교우위 산업은 경제적 이득을, 국내 비교열위 산업은 심각한 손실을 입게 된다. 특히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FTA에 해당하는 미국식 통상시스템은 법 제도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들이 내포되어 있는 위험천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심지어 국회의원들조차 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집권여당의 수장 역할을 했던 사람이 2명씩이나 단식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겠는가. 또한 정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협상 전략’과는 관계가 없는 각 분야에 대한 영향평가, 효과분석 등에 대한 연구보고서마저도 국회 제출을 거부하는 ‘만행’과 ‘독단’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미FTA 협상의 시작부터 타결의 그 순간까지 한국에는 오직 ‘군주’가 있었을 뿐이다. 

4. 미국 협상력의 진짜 비결 – ‘통상절차법’의 존재

협상이 진행되는 내내 한국의 국민들은 ‘몸’을 통해서만 발언할 수 있었다. 정보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발언의 통로는 차단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국민들은 ‘몸’을 통해서만 발언할 수 있었다. 거리에서, 집회를 통해, 단식을 통해.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불살라 ‘한미FTA 중단하라’라는 외마디 주장을 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어떠했을까? 미국의 경우 부시 대통령이 전국축산업협회에서 설명을 갖고, 기타 협상 관계자들이 전미자동차협회를 비롯 관련 이익단체들, 협회, 전문가그룹과 수시로 정보를 교감하며 지속적인 ‘조율’ 작업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쇠고기 문제였을 것이다. 미국의 축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제도적으로 보장된 ‘발언’을 통해 정부와 긴밀한 정보교류와 지속적인 조율 작업을 했던 것이다.

한국의 국민들은 ‘몸’으로 말하는데, 왜 미국은 ‘제도’를 통해 말하는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핵심적으로 미국의 선진적인 통상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역법>에 의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군주제’를 제압한 ‘미국 의회제’의 핵심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통상협상의 권한이 의회에 있다. 이는 헌법적 규정이다. 이에 따라 통상협상은 의회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일시적으로 ‘위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것이 바로 TPA(무역촉진권한)이며,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라는 기구는 바로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할 때 실무를 총괄하는 기구이다.

나아가 미국은 무역법의 규정에 의해 의회가 협정의 진행과정에 참여하고 행정부는 의회에 보고 및 협의 의무를 갖고 있다. 이때 발행되는 각종 보고서들이 연차보고서, 현황보고서, 총체적 영향평가 보고서 등이다. 또한 통상정책/협상과 관련하여 이해당사자 및 국민들로부터 자문, 의견 수렴에 대한 대통령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민간차원의 700여 자문위원 그룹과 26여개 자문회의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협상단은 ‘국내 정치적 견제’의 틀 내에서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당연히 이해당사자들을 포괄하여 ‘총체적인 이익’이 발생할 수 있도록 협상전략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통상영향평가 등의 실시로 인해 경제적 이익/손해에 대한 분석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에 의해 상대국가의 협상전략, 협정문 등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 통상 분야에서 미국의 ‘강력한’ 협상력은 단지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내정치적 견제’가 가능한 견고한 제도적 틀과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참여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진정한 ‘선진 통상국가’로 가기 위하여 – 지금이라도 통상절차법 제정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이 선진 통상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한미FTA 협상 결과에 만족해하며 더 많이 수출하고 더 많이 경쟁해야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 통상국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선진통상국가는 선진적 통상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미FTA 협상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개방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수출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 선진적 통상시스템이라면 모든 통상협정을 임함에 있어 △국익에 부합하는지(효율성 조건) △통상/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는지(공정성의 조건) △이 두 가지의 실현을 위한 이해당사자들 및 전문가들의 참여를 보장했는지(민주적 참여의 조건) 여부를 충족시키면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통상협정을 임하는 한국의 ‘군주제’ 시스템과 미국의 ‘의회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차이이며, 통상을 임하는 정치철학의 차이이며, 정치체제의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상절차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통상협정은 국민적 삶과 산업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한국은 통상에 관한 기본법 하나 없는 나라이다. 본 의원은 일찍이 미국의 무역법을 기초로 한 통상절차법을 대표 발의해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통외통위에서 계류되어 있는 상태이다. 노무현 정부의 반대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의도적’ 무관심으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통상절차법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선진통상국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마치 수출이 국민적 부를 창출시켜, 국민들의 삶의 질을 제고시킬 것처럼 혹세무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출은 단군 이래 최대의 수출호황이라 불리며 3,000억 달러를 달성했지만 이러한 수출은 내수와의 연계가 극히 취약할뿐더러 서민들의 삶과 점점 무관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한국은행 보고서를 비롯 각종 경제연구소에서 ‘이구동성’으로 이 문제를 지적할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수출의 40%이 수출대기업에 편중되어 있으며, 전체 수출의 45%가 반도체를 비롯한 5대 품목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대기업-중소기업-서민으로 호순환되는 구조가 아니라 글로벌 아웃소싱, 현금보유, 자사주매입, 외국인 지분 배당의 방식으로 중소기업-서민과의 연계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며 자신들만의 ‘부’를 창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의 수출증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농업, 제조업, 영세서비스업을 희생시켜 수출중심 대기업의 부를 증대시키는 국민적 부의 수탈과정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선진통상국가는 ‘연대’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함께’ 잘 살겠다는,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연대의 정신이 없다면, 그것은 온갖 휘황찬란한 수식어로 가득 찬 ‘부자 찬가’에 다름 아닐 것이며, 서민들의 삶과 민주주의는 아무렇게나 헌신짝처럼 버려져도 괜찮다고 사고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 발상에서 단 한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하는 것일게다.

지금, 대한민국은 황사로 뿌옇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진보, 대한민국의 진정한 발전, 국민들이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지금은, 아직은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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