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노언론' 조선·중앙의 노 대통령 '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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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04일 09: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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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신문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친노 언론’이라는 개념 규정을 통해 진보 개혁성향 언론들을 압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각종 개혁과제에 힘 싣기를 한 것을 놓고 정권과 아부하고 결탁한 언론이라는 개념규정을 해 버린 것이다. 자신들은 ‘비판언론’이라는 포장을 통해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것처럼 ‘홍보’했다.

    억울함을 호소했던 진보 개혁성향 언론은 때로는 노 대통령에게 정도 이상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했다. 이들 언론 입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평가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보수신문은 ‘친노 언론’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1석 2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가 체결된 이후 보수신문의 ‘친노 언론’ 비판은 애매 모호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자신들이 ‘친노 언론’을 자임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4일자 주요 조간신문 1면 머리기사

    경향신문 <손내민 한나라·보수언론…’우군’ 얻은 노 대통령/이번엔 ‘FTA 대연정’?>
    국민일보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 큰 시각차 >
    동아일보 <일 ‘한미 FTA 쇼크’>
    서울신문 <밀·포도주 등 576개 관세 즉시철폐>
    세계일보 <농수산물 FTA 피해 최고 80% 보전>
    조선일보 <노 대통령 6월 방미 ‘FTA 서명식’ 추진>
    중앙일보 <UR·칠레 FTA 때도 ‘망한다’ 했지만…농업체질 오히려 강해졌다>
    한 겨 레 <FTA 합의문 ‘숨은 폭탄조항’ 많다>
    한국일보 <미 투자자 이익 지나치게 보장>

    주요 조간신문은 일제히 한미 FTA 문제를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한미 FTA는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현안이다. 한미 FTA 타결 이후 한국 언론의 지형도가 뒤바뀐 느낌이다. 특히 노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했던 일부 보수신문의 ‘변신’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언론의 훈풍을 느끼고 있다. 신문시장을 장악한 거대 일간지들이 노 대통령 ‘찬양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 개인에 대한 기대와 평가만은 아닐 것이다. 노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해 ‘결실’ 맺게 된 한미 FTA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참여정부 힘 싣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 ‘찬양가’ 나선 보수신문

    보수언론 초반 여론 흐름을 잡기 위해 신경을 쓰는 대목은 장밋빛 청사진에 대한 적극 홍보이다. 과거 논조를 볼 때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의 문제점과 정부의 미흡한 대처 등에 초점을 맞출 법도 하지만 그러한 흐름과 거리가 멀었다. (사실 이러한 비판과 지적은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진보 개혁성향 언론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 중앙일보 4월4일자 1면.  
     

    중앙일보는 1면 <UR·칠레 FTA 때도 ‘망한다’ 했지만…농업체질 오히려 강해졌다>는 기사에서 "FTA로 농촌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UR과 한 칠례 FTA 경험에 비춰보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신문들은 여론조사도 적극 활용했다. 한미 FTA는 한국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며 국민들도 적극 호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객관적 지표(?)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1면 <"한·미 FTA 잘된 일" 58% "잘못" 30%>이라는 기사에서 "우리 국민의 5명 중 3명 가량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타결은 잘된 일"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여론조사 "국민, 한미 FTA 긍정적 평가"

       
      ▲ 조선일보 4월4일자 1면.  
     

    조선일보는 "한국갤럽에 의뢰해 3일 긴급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미 FTA에 대해 ‘잘된 일'(58.5%)이란 응답이 ‘잘못된 일'(30.6%)보다 두 배 가량 많았고 ‘모름·무응답’은 10.9% 였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 타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국회 비준이라는 만만찮은 산을 넘어야 한다. 보수신문은 타결 직후부터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역할과 임무가 무엇인지 훈수를 뒀다.

    중앙일보는 1면 <한미 FTA 비준안 처리 의원 56% "17대 국회서">라는 기사를 통해 "본지가 2일과 3일 이틀간 국회의원 296명을 상대로 한 전화조사에서 응답자 270명 중 152명(56.3%)은 ‘이번 국회임기 안에 비준안을 처리하는 게 좋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칼럼 "다시 보게 되는 노 대통령"

    중앙일보는 "한미 FTA 비준안에 대한 찬성여부를 묻는 질문엔 ‘찬성하겠다’는 의원이 108명(40%)으로 가장 많았다. ‘반대하겠다’는 의원(60명, 22.2%)은 찬성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보수신문들의 논조를 ‘변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과거와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점이다. 불안한 대통령, 아마추어 대통령, 좌파 포퓰리즘 대통령이라는 개념규정은 온 데 간데 없다. 노 대통령은 2007년 4월 ‘구국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35면 <다시 보게 되는 노 대통령>이라는 박두식 정당팀장 칼럼을 통해 "노 대통령이 한미 FTA만큼은 ‘미래의 먹고 사는 문제’로 접근했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반전"이라며 "노 대통령이 남은 10개월 동안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정책’에 전념한다면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4월4일자 35면.  
     

    중앙일보 "노 대통령 결단 역사 속에서 평가받을 것"

    조선일보는 6면 <"노 대통령 잘한다" 29.8%>는 기사에서 "지난해 12월28일 갤럽 조사에서 노 대통령 지지도가 12.3%였던 것과 비교하면 약 석 달만에 두 배 이상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말 그대로 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주자이다.

    중앙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중앙일보는 30면 <노 대통령과 한·미 FTA 협상단 잘했다>는 제목의 김종혁 사회부 부에디터 칼럼을 통해 "무엇보다 노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많은 걸 잃었다.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었다"면서 "그야말로 ‘노무현이 아니면’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게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 중앙일보 4월4일자 35면.  
     

    중앙일보는 "한미 FTA를 단행한 노 대통령의 결단은 역사 속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그것이 지지자들의 돌팔매 속에서 이뤄졌기에 더욱 빛난다. 그동안 노 대통령이 미웠다고 그의 공로를 모른 체하고 깎아 내리는 건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한나라당이 한 게 뭔가"

    중앙일보의 노 대통령 칭찬은 한나라당에게 불똥이 튀었다. 중앙일보는 <비전도 원칙도 없는 한나라당>이라는 사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국민연금 개혁과 같은 국가적 과제에 부닥칠 때마다 미래를 보기는커녕 구차하게 눈앞의 표만 구걸하고 있어 정말 실망스럽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밀어붙이는 동안 한나라당이 한 게 뭔가. 분명한 입장 한번 밝힌 적이 없다. 그저 있으면 슬쩍 한 다리를 올려놓고, 여론이 나빠지면 몽땅 떠넘기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아니었던가"라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도 노 대통령 칭찬 릴레이에 동참했다. 세계일보는 <노 대통령의 결단을 평가한다>는 사설에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탈출구가 될 한미 FTA 협상타결에 노 대통령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면서 "대통령은 국가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선 민족이라는 구호는 물론 정파적 이해득실을 초월하고 정치적 동지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노 대통령 인식에 따끔한 ‘일침’

    그러나 경향신문의 평가는 전혀 달랐다. 경향신문은 "이번 담화에서는 노 대통령 스스로 FTA에 대해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편향적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냈다. 장밋빛 미래만 볼 뿐 FTA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불편한 진실’엔 눈을 돌렸다"고 비판했다.

       
      ▲ 경향신문 4월4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협상 타결의 ‘업적’만 홍보하며 국민을 압박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FTA 비판을 무턱대고 근거 없고 정략적이라고 몰아붙이는 태도야말로 정략적 자세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보수신문들의 달라진 논조에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평소 청와대 브리핑 등을 통해 보수신문과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덧을 감안할 때 적응하기 힘든 것도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언론에서 불어오는 모처럼의 ‘훈풍’에 들뜰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 1차적 노림수 한미 FTA 연착륙

    보수신문의 ‘든든한 지원’은 뚜렷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국정운영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한미 FTA 연착륙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노 대통령이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현실화 할 경우 보수신문과의 ‘허니문 기간’은 오래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은 한미 FTA 추진에 따라 진보는 물론 개혁성향 유권자의 외면으로 이어져 더욱 어려운 상황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경향신문 4월4일자 1면.  
     

    경향신문은 1면 <손내민 한나라·보수언론…’우군’ 얻은 노 대통령/’이번엔 FTA 대연정’?>이라는 기사에서 "한미 FTA 찬성 진영에 노무현 대통령을 필두로 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친노 의원들, 재계, 보수언론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이같은 정치지형 변화가 향후 대선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핵심 지지층 이탈, 정치적 입지 열악해질 우려"

    경향신문은 "노 대통령은 자신을 일컬어 ‘신자유주의가 아니며, 유연한 진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개방을 통한 국제경쟁력 제고를 이유로 지지층에 등돌리고 보수세력과 손잡음으로써 ‘신자유주의자’로서 ‘커밍 아웃’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핵심 지지층 이탈로 불안한 ‘임기말 운행’>이라는 8면 기사를 통해 "현실정치 측면에서 이번 협상 타결은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 운영과 정치적 행보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그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그러나) 보수세력이 공격에 나설 경우 노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이전보다 훨씬 열악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신문이 ‘친노 언론’ 역할을 자임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한미 FTA 연착륙은 1차적 목표이고 그 이상의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조선일보 사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제목을 <FTA 비준은 ‘발전세력’ 대 ‘후퇴세력’의 대결>로 뽑았다.

    진보진영 가치 선점한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올해 12월 대선, 내년 4월 총선 표를 헤아리느라 나라를 뒷걸음질하게 만드는 수구세력이 될 것이냐의 두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40년 뒤 자신의 후손들에게 ‘2007년 그 때 나는 발전세력의 한 사람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세력을 향해 ‘후퇴세력’이라는 개념규정을 했다. 동아일보는 <정치권의 FTA 기회주의자들>이라는 사설에서 "이들은(김근태 천정배) 최근 반대 단식농성을 벌이다가 협상이 타결되자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배신’ ‘제2의 을사늑약’ 등 독설을 쏟아 냈다. 하지만 이들의 정략적, 위선적 처신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가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미래’ ‘변화’ 등은 진보진영이 앞세우는 가치이다. 그러나 보수신문들이 한미 FTA 반대세력을 향해 ‘후퇴세력’ ‘위선적 처신’ 등의 개념규정에 나서고 있다. 진보의 가치는 자신들이 선점하려 하고 있다. 한미 FTA 장밋빛 홍보에 제동을 거는 일이 말처럼 쉬운 상황은 아닐 수 있다.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특히 반대세력은 비준을 늦추거나 피해계층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객관적 자료와 합리적 논리로 무장하는 게 옳다. 개방을 통해 오늘의 국력을 쌓아 온 우리가 나아갈 길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류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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