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중심 '대중 연금정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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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4월 04일 08: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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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가 타결되던 4월 2일, 국회에선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국회 본회의에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공동발의한 국민연금 수정안이 전격 상정된 것이다. 이를 두고 열린우리당은 ‘신좌우합작’, 한 진보언론은 ‘정책소연합’이라며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당원들도 다소 의아해 했을 듯하다. 국회에서 벌어진 며칠 간의 연금정치를 살펴보고, 몇 가지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신좌우합작인가, 정책소연합인가?

민주노동당이 작년에 국회에 제출한 연금개혁안은 현행 국민연금(급여율 60%, 보험료율 9%) 단층체계를 ‘국민연금(급여율 40%, 보험료율 9%) + 기초연금 (15%)’ 이층체계로 전환하는 구조적 개혁안이다. 기초연금을 새로 도입하고 그만큼 국민연금을 인하하는 방안이다.

법정 명목급여율로만 보면 60% 급여율이 55%(국민연금 40% + 기초연금 15%)로 줄어들지만, 연금액이 가입기간과 연동되는 국민연금의 특성을 감안하여 실질급여율로 접근하면, 급여율 인하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방안이다. 대신 저소득계층일수록 실질급여율이 높아지고, 국민연금 사각지대 사람들도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 현행 제도에 비해 연금의 공공성을 강화시킨 안이다. 

민주노동당이 주장하고 있는 기초연금 급여율은 한나라당 안(20%) 보다 낮다. 종종 이에 대한 비판도 있는 듯 하지만, 미래재정 부담을 감안하여 지급대상을 제한하고(노인의 80%), 부부감액제까지 적용하여 한나라당안 필요재정의 56% 수준으로 설계된 ‘알뜰기초연금’이다. 그래도 현재가격 기준으로 2020년에 20조, 2030년에 50조원이 소요되는 큰 규모다.

한나라당은 기초연금 20%를 도입하되 국민연금 급여율을 20%(보험료율 7%)로 낮추는 파격적인 안을 제시했다. 가입자에겐 보험료율 인하를, 노인에게 높은 기초연금을 선사하는 안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안은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이 소요된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재원없는 기초연금안이었으며, 한나라당의 감세론과도 상충되는 안이었다.

지난 해 정기국회에서 유시민 안으로 불리우는 정부여당 안이 보건복지위원회를 강행 통과된 바 있다. 국민연금 급여율을 50%로 낮추고, 보험료율은 12.9%로 인상하되, 5% 급여율의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는 내용이다.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강하게 반대하였지만, 보건복지위원회 구성이 열린우리당에게 유리하게 개편되면서 표결처리되었고, 2월 국회에서 사학법 개정 논란에 막혀 있다가 마침내 지난 4월 2일 본회의에 상정됐던 것이다. 

본회의 앞두고 난감해진 민주노동당

본회의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은 난감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한나라당은 수정안을 발의하여 열린우리당과 표대결을 통해 자신의 안을 주장하겠다고 하고, 수정안 발의요건인 30명의 의원이 없는 민주노동당으로선 본회의에서 정부여당안과 한나라당안에 모두 반대투표하는 일외에 뾰족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와중에서 한나라당이 자신의 ‘무리한’ 기초연금안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본회의에서 다소 완화된 수정안을 제출할 것이라는 사실이 감지되었다. 이미 한나라당은 작년 보건복지위 심의과정에서도 민주노동당안을 상당히 전향적으로 검토한 바 있었다. 

법사위에서 연금관련법이 통과되던 3월 30일, 같은 시간에 민주노동당은 노동, 시민단체들과 본회의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 자리서 노동시민단체(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여성연합, YMCA)들은 민주노동당안을 일부 완화한 수정안을 정치권에 긴급 제안하기로 정했다. 국민연금의 주인인 가입자들이 조정한 안이므로 국회가 이를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31일) 민주노동당이 이를 수용하였고, 일요일인 4월 1일부터 본회의 당일 오전까지 가입자단체와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에게 조정안에 따를 것을 요구했다. 지도부간 의견이 오가고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실질적인 ‘연금교섭’이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균등지수(A값) 인하폭, 국민연금 급여율 인하속도, 공동발의 여부 등에서 이견이 발생했으나, 결국 가입자단체-민주노동당이 제안한 내용이 모두 수용된 안으로 최종합의되었다.

수정안 기본골격은 애초 민주노동당 개혁안

아래 <표>는 수정안의 내용을 민주노동당의 원래 개혁안과 비교한 것이다. 수정안에 담긴 기초연금 내용은 개혁안과 사실상 동일하다.

개정안에서 2008년 5%, 2018년 10%, 2023년 15%였던 기초연금 경로가 수정안에선 2018년 10%까지만 포함되었다. 반면 국민연금에선 수정안이 개혁안에 비해 다소 후퇴하였다. 급여율 40% 도달연도가 2018년으로 5년 앞당겨졌으며, 계층별 누진급여율에 영향을 미치는 균등지수 A값이 1에서 0.75로 낮아졌다.

   
 

<표>에서 확인되듯이, 수정안의 기본골격은 민주노동당 개혁안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당초의 개혁안에 비해서는 다소 낮아졌지만, 현행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여전히 평균소득가입자 이하 저소득계층들의 실질급여율(20년 가입)이 다소 높아지고, 기초연금 도입으로 가구별 급여율은 더욱 높아지는 안이다.

국민연금에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사각지대 사람들은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기초연금을 (10%는 현재가격 기준 18만원)을 받을 수 있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박빙의 표결로 좌절된 기초연금 도입

본회의를 앞두고 두 안 모두 박빙의 승부로 예상되었다. 오전부터 국회기자회견장에는 가입자단체, 민주노동당, 유시민장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공방전이 뜨거웠다.

논란의 핵심은 기초연금 미래 재정확보에 있었다. 정부여당은 수정안이 가결되면 2008년 4.4조원이 소요되지만, 이후 노인인구 수와 기초연금 급여율이 동시에 늘어나 2009년 7.1조원, 2018년 24.2조원, 2030년 73.4조원이 필요하다며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고령화시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금 재정 지출은 불가피하기에, 진짜 문제는 연금재정 지출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취약한 국가 재정이라며 재정조세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본회의에서 치열한 찬반토론을 거친 결과는 두 안 모두 부결이었다. 수정안은 과반수에 5표, 정부여당안은 과반수에 12표 부족했다. 대신 정부가 따로 제출한 5% 기초노령연금법안이 한나라당의 동의로 통과되었다. 이후 언론은 정치권의 무책임한 연금정치를 질타했고, 정치권은 서로를 비판했다. 이렇게 본회의 표결은 다음 라운드를 예고하며 종료되었다.

이번 수정안 제출과 본회의 표결을 거치면서 생각해 볼 점이 여럿 있다. 향후 보다 생산적인 연금정치를 준비하며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가입자 대중의 연금정치가 필요하다

첫째, 연금개혁의 주체는 가입자이어야 한다. 이 원칙은 연금법 개혁이 가입자의 사회적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와 연금개혁의 실질적 주체가 가입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이번 본회의에서 수정안 정치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정치권의 정치공학도 작용했지만 ‘가입자 동의안’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전자의 의미에서 보면 가입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연금개혁의 실질적 주체가 가입자라는 의미에선 한계가 많은 정치였다. 아래로부터 조직된 연금개혁운동은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여전히 노동, 시민단체 정책담당자간 협의에 의해 연금개혁안이 조정되고 국회를 압박하는 ‘위로부터의 연금정치’에 머무르고 있다.

이번 본회의에서 부각되었던 기초연금을 2라운드로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힘은 특정 정세에서만 발휘되는 상층정치가 아니라 현실에서 상시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가입자 대중정치에 있다.

둘째, 연금개혁의 핵심은 기초연금 도입에 있다. 지난 1~2년 전까지 연금개혁의 초점이 재정안정화였다면 이제 점차 사각지대가 핵심의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번 수정안이 거둔 성과라면 본회의 통과 문턱까지 기초연금 도입을 공론화했다는 점이다.

비록 5% 기초노령연금 도입으로 귀결되었지만 향후 기초연금 상향을 위한 밑거름이 쌓인 것은 분명하다. 정책공조과정에서 기존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안이 완화되어야 했지만, 이는 다시 제출할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해 원상회복되거나 조정될 것이다.

재정조세개혁과 연금개혁은 수레의 두 바퀴

셋째, 진보진영의 재정조세개혁 활동이 시급하다. 기초연금 도입이 대중적 동의를 얻기 위해선 국가재정을 그만큼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수 서민들이 기초연금에 기대를 하면서도 선뜻 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미래 재정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진보운동이 재정조세개혁을 대중정치운동으로 발전시키며 국가재정 확대의 비젼을 사회에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재정조세개혁과 연금개혁은 수레의 두 바퀴이다.

민주노동당의 연금담당자로서 수정안 통과에 기대가 컸었다. 비록 보건복지부 간부들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였지만, 기초연금 도입은 사각지대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실질적 성과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재원 확보를 위한 대대적인 재정조세개혁 논란을 불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분야에 대표선수는 민주노동당이다. 대선국면에서 재정조세 의제를 부상시킬 수 있는 호재이지 않은가?

아직도 연금개혁 논란은 진행형이다. 곧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국민연금법 개정을 마무리하자며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다. 한나라당도 다시 법안을 내겠다하고, 민주노동당도 역시 개정을 제출할 것이다.

대중적 연금정치를 그리며

지난 3년 연금개혁 논의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사각지대의 발견이다. 이번에 통과된 기초노령연금 5% 급여율은 광범위한 노인 빈곤층을 고려할 때 미흡하기 그지없다.

다가오는 2라운드의 진보운동의 과제는 국민연금 개악을 막고 기초연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일일 것이다. 가입자들이 중심이 되어, 기초연금을 외치며 재정조세개혁을 향해 행진하는 대중적 연금정치가 만발할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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