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괴물”
        2007년 04월 02일 05: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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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은 2일 한미FTA협상 타결이 발표된 직후 긴급좌담을 가졌다. 한미FTA에 대해 비판적 문제제기를 계속해왔던 정태인, 우석훈 두 학자의 날선 평가를 그대로 전한다.

    이재영 계속 미루어지던 한미FTA 최종 타결 발표가 있었다. 한미FTA에 대해 총평해달라.

    우석훈 총평하라면 “참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협상이란 것은 저쪽하고 하는 것도 있고, 내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있는데, 협상 과정 내내 우리 국민을 속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아직도 TV에 나오는 결과가 전부인지 그 외에도 뭔가 더 있는지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총평? "참담하다"

    정태인 지금은 대외 협상이 일단락되고 대내 협상에 들어가는 단계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찬성하는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미국 사람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한다. 미국 이야기를 베껴와 국내 부처에 강요한 것인데, 이제는 그것을 국민들을 대상으로 떠들겠다는 것이다.

    이번 결과는 국내 부처에게 미국 논리를 강요하는 것이 성공한 것이다. 예를 들면 보건복지부는 최저약가제만 빼면 모두 항복했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던 약값 인하 정책이 무산된 것이다. 국민의 약값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것이 한미FTA의 본질이다. 이는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Pfizer)의 이익을 위해 국내 법제도를 바꾼 것이고, 한국 제약회사는 망할 것이고, 국민도 손해를 보게 된다.

    아마도 한국 정부는 미국의 관세를 낮추고 한국 관세를 지켰다고 자랑할텐데, 미 의회 조사국(CRS) 보고서는 관세보다는 비관세 장벽을 없애는 것이 FTA의 목표라 밝히고 있다. 그대로 됐다.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우석훈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요구를 100 정도 받을 줄 알았는데, 지금 나온대로라면 300 넘게 받은 꼴이다. 유전자변형생물(LMO-GMO는 유전자의 인위적인 조작으로 창출된 생물, LMO는 새로운 유전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생명체, LMO가 더 광의개념임-편집자)까지 개방하기로 했다는데, 이런 협상 결과는 우리 같은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요즘 국제무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지는 LMO까지 받은 것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태인 LMO 수입 개방은 섬유 관세와 교환하려고 한국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다. 관료들의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측의 관세 인하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니까, 관료들이 LMO 등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을 내준 것 같다.

    우석훈 이번 FTA 타결은 한국의 비관세 제도, 비가격 정책, 국민 삶의 질, 사회권과 사회 안보를 모두 내준 것이다.

    "지킨 걸 얻었다고 하면 안된다"

    이재영 애초 정부가 밝혔던 목표와 무엇이 달라졌나? 한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문제되는 부분들을 짚어보자.

    정태인 정부는 섬유 제품의 원산지 제한 규정을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목표했던 85개 품목 중 5개 품목만이 미국에 의해 인정되었다. 결국 한국의 섬유 수출 기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석훈 그나마 한국에 있는 제도를 지킨 걸 두고 “얻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한미FTA에서 굳이 얻은 점을 찾자면 “이런 FTA는 절대 안 된다”는 한국 민중의 학습 정도가 아닐까.

    정태인 한국 정부가 얻으려 하지 않아서 얻은 게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미국의 관세를 떨어뜨리는 데 집중하면서 한국의 비관세 장벽을 포기했다. 이런 협상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석훈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인다고 진짜 미국처럼 되느냐 하면, 그건 또 그렇지 않다.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이더라도 미국의 R&D 능력 같은 걸 쫓아가기는 어렵다. 그리고 미국 같이 광범한 중산층은 이번 FTA 때문에 오히려 만들지 못할 것이다.

    정태인 우리 나라 부자들은 부자인 척 못해왔는데, 이제는 미국처럼 부를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는 우리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원래 이 제도는 제3세계에서 투자 재산을 몰수하는 국유화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 나온 결과는 국가 정책 전체를 무효화시킬 정도로 끝도 없이 확대된 것이다.

    먼저 국내법 절차에 따라 소송하는 국내절차소진 제도 조항도 없고, 3심제 이후에든 이전에든 마음대로 무제한으로 제소할 수 있다. 또, 그 소송의 심의관이 세 명 이하로 정해져 있는데, 미국 사람이거나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이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우석훈 FTA를 했다고 미국 수준의 환경 기준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투자자국가소송제 때문에 미국의 선진적인 제도를 가져올 수도 없다.

    정태인 물론 투자자국가소송제에는 ‘국민 보건의료는 예외로 한다’는 등의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소송을 통해 충분히 무력화될 수 있다.

    우석훈 한국 정부는 서비스 산업 경쟁력을 키운다는 내부 목표를 세웠었는데, 케이블 방송 같은 것을 다 내주면 경쟁력 강화할 시장 자체가 없어진다. 시장이 있어야 생산 능력을 키울 수 있는데, 아예 시장을 선점당해서 결국에는 수입업자만 남을 것이다.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고도화 전략은 조선과 석유화학 같이 명확한 방향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서비스 강화론은 가자는 말만 있지, 어디로 가자는 방향은 전혀 없다.

       
      ▲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투자자-국가소송제 예외 조항 무력화될 것

    이재영 미국 의회의 추가 수정 요구 등 사후 조치 가능성은 어떠한가?

    정태인 미 의회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멕시코와 나프타(NAFTA)를 맺을 때 멕시코산 설탕을 쿼터제로 수입하기로 협상하였다가, 미 의회가 거부하니까 멕시코 정부가 결국 미 의회 요구를 수용해 포기했었다.

    우석훈 아예 미 의회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1~2년 순연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을 지금과 같은 구두가 아니라 문서로 요구할 수도 있다.

    정태인 미국이 낮추기로 한 자동차 관세를 도로 올린다든가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자동차 관세 경우 80가지 불공정 기준에 저촉될 경우 다시 관세를 높일 수 있게 하였는데, 80개 기준에 저촉되지 않기가 어렵다. 반면 한국 의회에서 그렇게 강력한 수정 요구를 할 가능성은 없다.

    우석훈 국제 관례상 협정 조인 후에 자국에 유리한 입법을 하는 것은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미 의회는 이미 그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미국은 깡패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

    정태인 미국은 트레이드 로그 스테이트(Trade Rogue State-교역깡패국가-편집자)다.

    한-칠레 FTA 평가 아직 이르다

    이재영 한국 정부는, 한-칠레 협정 때도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 …

    정태인 큰 나라와 작은 나라 차이다. 칠레는 작은 나라인데다, 국제 경쟁력도 그다지 강하지 않다.

    우석훈 아직 칠레와의 FTA 결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포도 농민이 줄었지만, 다른 농업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포도 농업으로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국제 구리 가격이 폭등한 것 때문에 한국 측의 적자가 늘어났는데, 이런 고가격 역시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이 교란효과가 계속되고 시장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칠레 FTA를 평가할 수는 없다.

    정태인 정부는 한국산 공산품의 수출이 많이 늘었다고 주장하는데, 칠레는 원래부터 적은 시장이었고, 적게 수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증가율이 높은 것이다. 또 칠레의 관세가 높았던 것도 효과가 컸다. 그런데 미국은 거대 시장이고, 관세도 낮아 수출증대효과가 적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칠레와 맺은 FTA와 미국과 맺은 FTA의 범위, 수준이 다르다. 미국과는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FTA를 맺었다.

    미국 초국적기업 요구하는 법제 만드는 게 본질

    이재영 경제적 손실 외에도 한국 사회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어떻게 되겠는가?

       
      ▲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
     

    정태인 미국 초국적기업이 요구하는 바를 관철시키려 미국처럼 법제를 바꾸는 것이 한미FTA의 본질이다. 미국 제약회사들은 시장은 개방시키면서도, 자신들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자료독점권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는 50년까지 인정되던 지적재산권을 70년까지 연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상품 무역의 관세를 인하한 것보다 이런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더 중요히 봐야 한다.

    우석훈 한국 경제를 압축성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압축성장은 공적 장치를 통해 시장경제를 조절해온 시스템 때문에 가능했다. 투자소송제 때문에 이런 공적 장치, 사회적 자본, 공공 합의를 모두 쓸 수 없게 되었다. 공공정책의 조절기능이 부서지면 정부나 사회가 할 수 있는 게 아예 없어진다.

    정태인 투자자국가소송제에서 부동산 정책이 빠지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 안에서 각종 정책의 역차별 문제 때문에 부동산 정책 등에서도 적극적 정책을 펴기 어려울 것이다. 또, FTA 조항에 걸릴까 두려워 공무원들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는 주정부마다 각종 완충장치가 자유무역화의 충격을 완화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그런 것이 없다. 결국 미국에는 있는 완충장치 없이 미국식으로 운영된다는 말이다.

    이번 협상 결과에는 ‘미래 최혜국 대우’ 조항도 있다. 나중에 다른 나라와 FTA를 맺어 최혜국 대우를 줄 경우 미국에게도 같은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조항이다. 한미FTA는 어떻게 커갈지 모르는 생물체, 괴물이다.

    우석훈 다국적기업을 우대하는 조항이 많아서 이미 다국적기업 대열에 낀 기업이 아니고서는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국적기업 이외 기업에 대한 진입장벽이다.

    정태인 한미FTA는 비시장 비경쟁 독점제도로 봐야 한다.

    우석훈 지금까지의 민영화에 따르자면 한전은 소유자만 바꾼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한전이 제공하는 전기의 가격, 서비스 조건 같은 것도 모두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체에너지 우대제 같은 것도 없어질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보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 있다. 한미FTA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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