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욱씨가 막장인생이라고?"
    2007년 04월 02일 12: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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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의 사전적 의미는 ‘갱도의 막다른 곳’이다. ‘막장인생’이란 출구 없는 절망적 인생이다. 시쳇말로 ‘갈 데 까지 간’ 인생이다.

대체로 내뱉는 8할 이상의 말에서 정신적 독극물이 검출되는 전여옥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2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한미FTA 협상 체결에 반대하며 전날 협상장 근처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한 민주노동당원 허세욱 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허 씨는 15년 막장인생에 온갖 불우한 일을 겪으며 사회참여를 활발히 한 분인데 왜 막장인생인 분이 몸을 던져야 하나" 그녀가 허 씨를 ‘막장인생’으로 분류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짐작은 간다. ’15년’이 열쇠다. 허 씨는 올해로 택시기사 16년차다.

   
  ▲ 분신한 허세욱씨에게 막말을 일삼은 전여옥 한나라당 최고위원
 

전여옥식 계층사전에서 택시기사는 ‘막장인생’으로 규정된다. 우리나라에는 전체 택시기사와 택시기사에 밑도는 소득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합 만큼이나 많은 ‘막장인생’이 있는 셈이다.

그녀가 ‘막장인생’이라고 부르는 계층의 상식적인 명명법은 ‘서민’이다. ‘막장인생’론은 ‘서민’에 대한 그녀의 평소 생각이 어떤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허 씨의 분신을 ‘안타까워’ 하면서 좌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얘기했다. 그녀는 "영국군 장교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전쟁에서) 앞장을 섰다. 그래서 장교들의 전사율이 가장 높았다"고 했다. 또 "(한미 FTA 반대 지도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부터 얘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지도급 인사들이 허 씨 같은 사람을 총알받이로 앞세우고 있다는 식의 논법이다. 이런 식의 발상에는 ‘막장인생’에 대한 또 하나의 편견이 깔려 있다. ‘막장인생’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라 ‘동원’과 ‘활용’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인식이다.

그러나 알려진 바로 허 씨는 사회활동에서 대단히 주체적이고 적극적이었다. 민주노동당의 모범 당원이었고, 9년째 박봉을 쪼개 기부하던 참여연대의 성실한 회원이었다. 한미FTA 협상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는 등 공부에도 열심이었고 각종 교육 및 촛불 문화제에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어려운 처지에서나마 더불어 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이런 사람을 우리는 보통 ‘모범시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교과서적인 ‘모범시민’이 비주체적인 ‘동원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건 그가 ‘막장인생’이기 때문이다.

전 의원은 허 씨를 ‘막장인생’으로 규정하면서 허 씨의 활발한 사회 참여활동이 ‘막장인생 특유의 불만’에서 비롯된 절망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야말로 허 씨를 위하는 척하면서 인격적으로 말살하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하고 잔인한 수법이다.

이는 한 개인의 사회적 참여의 동력을 ‘불우했던 개인사’에서 찾곤 했던 개발독재기의 천박한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우리 사회가 몇 걸음 나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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