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사경보? 못 걸을 때까지 싸워야지"
        2007년 04월 02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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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을 열지 말고 노약자는 절대 외출을 삼가해 주세요."

    최악의 황사가 몰려온 4월 1일 아침 TV뉴스는 요란스레 황사에 대해 떠들었다. 그러나 이날 이미 오래 전에 환갑을 넘기고 칠순에 이른 농민들은 자식과 후손에게 한미FTA가 체결된 나라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마스크도 내던진 채 서울 도심을 뛰고 또 뛰었다.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조강호 농민(70)은 "황사가 뭐 대수여?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라며 마스크를 쓰고 있고 있는 기자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는 백발에 앞니가 거의 빠진 ‘노인’이었지만 황사같은 건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그와 나란히 앉아있던 세 명의 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4시 동료 농민들 40여명과 함께 당진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지독한 황사’도 그렇고, 몸져누워있는 아내와 자식들이 "나이든 양반들이 가서 뭐하냐?"며 말렸지만 그는 그럴 수는 없었다.

    "당진에서 온 양반들 다 65세 이상이여. 이제 많이 살아봐야 10년밖에 더 살겠어?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여. 우리 크는 애들, 그리고 우리를 막고 있는 저 전경애들 쟤들 위해 싸우는 거야."

    그는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52년을 농사를 지었지만 남은 것은 빚과 아픈 몸뚱아리뿐이라고 말했다. 천 평 남짓되는 땅과 소 다섯 마리가 그가 가진 전부다. 4남매를 키워 출가시켰지만 그는 돈이 없어 중학교까지밖에 가르치지 못한 게 마음에 한으로 남아있다.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어. 분노가 치밀어서. 정치하는 인간들 전부 국민 우롱하고, 속이구 있단 말이여. 노무현이 농민들 모아놓고 뭐라고 했어. 대통령직 걸고 쌀과 소고기 수입 막겠다고 안했어? 그런데 사우디인가 어딘가 가서 자기가 한미FTA 결정하겠다고 했어. 이 놈의 대통령을 정말 용서할 수가 없어. 국민을 팔아먹은 대통령은 사형을 시켜야 해"

    그는 얘기하면서 서너 차례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리쳤다. 그는 진짜 분하다는 말을 몇 차례 되풀이했다. "농업이 상품이여? 농업이 자동차냐고? 기름을 끼얹고 자살을 해도 협상을 중단하지 않는 이 놈의 정부를 가만두지 않을 꺼야."

    "제발 오늘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저놈들은 무조건 통과시키려고 하고. FTA 통과되면 노다지 올라와야지. 정치하는 놈들한테 우리 먹여 살리라고 올라와야지. 걸어다니지 못할 때까지 싸워야지."

    행진이 시작되고 그는 동료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광화문 4거리에서 만난 그는 경찰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미FTA가 타결되면 너희들이 다 죽는 거야. 뒤로 돌아서서 같이 청와대를 때려부수러 가야 해. 우리를 막지 말고 뒤로 돌아 같이 싸워야 한다구."

    칠순의 노인인 그는 손주뻘되는 학생들과 함께 시청에서 안국동으로, 다시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달리고 또 달리며 ‘노무현 정권 퇴진’을 외쳤다. 이 나라와 후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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