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재자 노무현 퇴진 투쟁 나서자"
        2007년 04월 02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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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최악의 황사도, 수만명의 경찰도 노무현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달려가는 시위대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막히면 뚫고 또 막히면 돌아가면서 3천여 시민들은 ‘한미FTA 중단’을 축구하며 2시간 30분 동안 청와대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한미FTA 마지막 협상이 벌어지고 있던 4월 1일 밤 7시 서울시청 앞 광장. 사상 최악의 황사 때문에 촛불집회가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와 달리 노동자, 농민, 학생, 시민들은 삼삼오오 손을 잡고 시청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3시 55분 한미FTA 저지를 요구하며 온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해 중퇴에 빠진 허세욱 택시노동자의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차마 따뜻한 안방에 누워 휴일을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주군농민회, 당진군농민회 등 농민회 깃발이 황사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푸른 금속노조 깃발을 비롯해 많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학생들의 깃발이 하나 둘 씩 시청 광장에 나부꼈다. 한미FTA중단 촉구 범국민촛불문화제에 모인 3천여 시민들의 함성과 열기가 일요일 밤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국회의원은 "온 몸을 불살라 한미FTA를 막고자 했던 허세욱 님이 매우 위독한 상태"라며 "노무현 정권은 살인정권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 국민은 이 땅에서 더 이상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기 원하지 않는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강행한다면 독재자 노무현 퇴진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한미FTA 협상이 허세욱 님을 극단적인 저항으로 내몰았다"며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이고 사회양극화를 극단적으로 심화시키는 한미FTA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은 "3월 30일 7시부로 한미FTA는 무효"라고 선언했다.

    "지금부터 청와대로 갑시다"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겁니다. 지금 당장 가야 합니다. 지급부터 청와대로 갑시다." 9시 35분 사회자의 포효와 함께 3천여 시위대가 달리기 시작했다. 을지로를 향해 달리던 시위대는 종각역으로 방향을 틀어 4분만에 종각역에 도착했다. 경찰이 청와대로 향한 안국동 길을 가로막자 시위대는 다시 종로로 방향을 틀어 달렸고, 종로 2가에서 낙원상가를 지나 안국역으로 뛰었다.

    9시 52분 한국일보 사옥에 도착한 시위대를 맞이한 것은 수십대의 경찰버스와 경찰들이었다. 성난 시민들은 차량 철문을 뜯고 유리창을 부수었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이곳에서 약식 집회를 가졌다.

    사실 이곳까지는 경찰이 열어준 길이었다. 진정한 게릴라 시위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10시 20분, 시민들은 경찰을 피해 다시 종각역 방향으로 뛰었다. 광화문 4거리로 나가는 모든 길이 경찰에 의해 봉쇄되자, 시민들은 청계천까지 내려가 광화문 4거리로 나아갔다.

       
    ▲ 4월 1일 밤 11시 3천여명의 시위대는 세종로 4거리에서 ‘한미FTA저지’와 ‘노무현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진정한 게릴라 시위를 보여주다

    마침내 광화문 4거리를 뚫은 시위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민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갑자기 서대문 방향으로 달렸고, 새문안교회 샛길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당황한 경찰은 연신 우왕좌왕했고, 시위대는 그 틈을 이용해 계속 청와대를 향해 나아갔다.

    지도부도 없었고, 경찰과의 협상도 필요없었다. 오직 청와대를 향해 가야 한다는, 허세욱 동지의 한을 풀어야 한다는 분노와 투쟁의 열기만이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민들은 깃발이 인도하는 대로, 앞에서 뛰는 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젊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전력을 다해 골목골목을 누비며 경찰을 피해 달렸고, 경찰이 막아서면 돌아갔으며, 때론 경찰봉쇄를 뚫고 뛰었다. 쉴 새 없이, 그것도 전력질주로 달렸기 때문에 이를 따라잡지 못한 많은 시민들이 시위대에서 떨어져나갔다.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아파트 앞길까지 들어간 시위대를 경찰이 가로막자, 다시 시위대는 배화여자대학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렸다. 허둥지둥 나타난 경찰이 방패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공격했으나 소용없었다. 시위대는 한 사람만이라도 지나가는 통로가 나오면 바로 빠져나가 뒤에서 경찰을 포위했다.

    일부 시위대는 쓰레기봉투를 싣고가는 쓰레기차 위에 올라가 쓰레기를 집어던지며 싸웠고, 다시 경찰의 봉쇄를 뚫고 나아갔다. 시위대는 달리고 또 달렸다. 좁은 효자동 골목길을 뛰면서 목이 터져라 ‘한미FTA 저지’와 ‘노무현 정권 퇴진’을 외쳤다.

    밤 12시. 시민들은 2시간 30분을 쉼 없이 달려 마침내 청와대가 바라다 보이는 서울농학교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수천명의 경찰들이 좁은 골목길을 막아섰고, 청와대로 가는 통로를 완전히 봉쇄했다.

       
     
     

    한미FTA 목숨 걸어야 막을 수 있어

    네덜란드에서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존 폴 스미트 씨(55)는 "여기까지 뛰어오느라고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열정적인 시위였다"며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는 농민을 죽이는 정책이기 때문에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배현철 대외협력국장은 "한미FTA 타결이 눈 앞에 있는데도 민주노총이 강력한 투쟁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현장토론을 거쳐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위력적이고 강력한 저항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FTA는 대충 싸워서는 막을 수 없는 괴물이었다. 한 순박한 택시노동자는 온 몸을 불사르면서 한미FTA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줬다. 이날 청와대 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은 택시 노동자의 분신을 생각하며 새벽까지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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