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바른 ‘정파 만들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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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9일 0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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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파’는 같은 정치적 이념과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뜻한다. 정파는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정파는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저마다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략보다 정책을 추구하는 정파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정파, 어디에나 있어야

       
      ▲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략과 정책의 차이는 거짓과 진실의 차이와 비슷하다. 정파들은 쉼없이 정책연구와 정책토론을 벌이고, 그 결과로 정당을 만들어서 시민의 선택과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정당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정파가 없어질 필요는 없다. 정당은 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정책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당 안에도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는 곳에서 모든 사안에서 일사불란한 정당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나치당이나 유신당과 같은 독재정당이다. 같은 것 안에도 다른 것이 있으며, 다른 것 사이에도 같은 것이 있다. 적대를 정치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저열하고 비현실적이다. 다양한 정파들이 활발히 활동해야 정당이 활성화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수구보수세력이고, 민주개혁세력이고, 진보개혁세력이고 할 것 없이 정파 비슷한 것들만 우글거리고 있지 않은가?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개혁적인 세력을 자부하는 진보개혁세력에 대해서만 좀더 얘기를 이어 보자.

    독자적 사고 못하는 NL과 비대중적인 PD

    놀랍게도 진보개혁세력의 정파는 여전히 NL과 PD로 대표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언젯적 NL이고 PD인가? 우리의 진보개혁세력은 과연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오래 전에 해소되었어야 하는 NL과 PD의 여전한 대립을 보노라면, 정파가 이제는 ‘운동정치의 연고주의’를 실현하는 통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NL과 PD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NL은 독자적 사고를 하지 못하지만 대중 동원력은 여전히 크고, PD는 독자적 사고는 하려고 하지만 대중 동원력은 여전히 작다. 좀더 이론적으로 논의하자면, NL은 황당한 식민지론에 따라 NL을 절대화한 NLpd인 데 비해 PD는 NL의 과제를 무시하지 않는 NLPD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NL과의 갈등이 오히려 격화되면서 PD만 부각되었다. 그리고 PD는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지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노동운동의 개혁을 이끌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노동운동 개혁에 실패하고 쇠락하는 PD

    NL의 힘은 인간주의로 무장한 조직력에 있다. NL을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이론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NL의 반주지주의(反主知主義)는 이미 1986년부터 명확히 드러났다. NL은 조직적으로 독자적 사고 자체를 억제하고 있다.

    이러한 NL이 계속 살아남는 이유는 결국 한국 사회가 강한 민족주의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지정학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NL의 인간주의, 신화적 지도노선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PD의 주장은 애초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가 강한 민족주의의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PD는 식민지적 문제를 많이 안고 있다. PD는 마르크스, 레닌, 그람시, 알뛰세, 푸코, 들뢰즈 등으로 이어지는 서구 좌파 사상사를 달달 외우며 생경한 개념들을 늘어놓는 데 더 열중했다.

    그 결과 PD는 식민지론을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식민지적 사고방식에 찌든 젊은이들의 이념써클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으며, 더욱이 NL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관념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독자적 사고를 조직적으로 억제하는 NL

    연구자로서는 이런 시대착오적 차이가 지속되는 이유에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지만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둘 다 오래 전에 낡은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의 고성장과 민주화, 탈냉전과 지구화, 생태위기와 생태적 전환 등의 변화와 과제를 NL과 PD가 과연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가?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좀더 전통적인 과제에 대해서는 NL과 PD가 과연 제대로 대응할 능력과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NL과 PD가 과연 한국의 정치를 이끌고자 하는 정파라고 할 수 있는가?

    NL과 PD의 대립을 보노라면,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에서 정파를 논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은 정파입네 하면서 혼란을 일으키고 분란을 부추기는 지식인이나 활동가들만 있는 상태가 아닌가?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정파 만들기’일지 모른다. 이 경우에 정파란 당연히 ‘현실을 천착해서 탐구의 결과를 정책적으로 제안하고 그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주체들의 모임’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아니라면 정파는 없다고 얘기하는 게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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