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우리는 너무 유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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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9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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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우석훈 교수의 ‘마리 앙뜨와네뜨 같은 노 대통령’이란 글의 반론이 아님을 밝힌다. 필자는 전적으로 그의 글을 지지한다. 다만 남미에 오랫동안 살게 된 인연으로 남미의 흐름을 중심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나라가 OECD 국가가 아니라는 지적은 맞다.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국가는 멕시코 정도일 것이란 이야기도 정말로 맞다. 우리 국민들도 많이 알게 되었듯이 멕시코는 미국과 캐나다와 1992년 나프타를 체결했고 1994년 1월 1일부터 협정을 발효시켰다.

       
     

    나프타 체결 이후 멕시코

    멕시코의 정체성은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나프타 이후 이런 멕시코의 정체성과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

    첫째는 가난한 소농을 보호하려는 토지 분배의 정신이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이 시작된 후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헌법이 제정되었는데 그 헌법 27조를 개정하여, 농민 공동체 소유의 토지는 매매할 수 없다는 조항을 1992년 없앴다.

    둘째는 1934년에 라사로 까르데나스 대통령에 의해 국유화된 멕시코 자부심의 상징인 국영석유회사(Pemex)가 있는데 최근에 이 회사의 일부를 민영화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물론 멕시코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셋째는 타국의 주권(자주적 결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에스뜨라다 선언’으로 유명한 멕시코의 민족주의 정신이다. 이로 인해 비록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던 것이 2000년 자유주의 정권 수립후 흔들리게 되어 쿠바와도 거리가 멀어졌고 중남미에서 맏형 노릇을 하던 지위를 포기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첨병으로 변신한 것이다.

    중남미 맏형에서 미국의 첨병으로 

    주식(옥수수와 콩)을, 그것도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개방한 나라가 있다. 바로 멕시코이다. 한마디로 식량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얼마 전 옥수수로 만든 ‘또르띠야’를 비싸게 사먹는 가난한 사람들이 "배고프다"며 거리에서 데모를 했다. 그동안 농산물의 경우 미국으로부터 수입량이 어느 정도 제한돼 있었는데 내년 1월부터 우유를 포함하여 완전 개방한다.

    그런데도 멕시코 사회는 조용하다. 잠깐 여담을 하자면 옛날 마카로니 서부영화에 나오는 까맣고 킨 콧수염의 멕시코인들이 나무주걱으로 떠먹던 콩을 ‘후리홀’이라고 하는데, 미국인들이 멕시코인들을 깔볼 때 ‘후리홀 먹는 녀석들’이라고 부른다.

    현재 미국이 광우병 위험의 쇠고기를 우리에게 수입하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식량주권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노벨 평화상 받은 좌파 여성 대통령 당선 가능성

    최근 칠레의 바첼렛 대통령이 ‘전략적 연대’를 위해 멕시코를 방문했다. 그리고 과테말라와 파나마를 방문했다. 잘 알다시피 칠레와 멕시코는 미국과 FTA를 발효시켜 남미에서 신자유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현재의 중남미 정치 지형은 돌아가는 정세가 사뭇 긴장감이 있다. 특히 중미가 주목되고 있다. 1940년대의 좌파 부상이 다시 중미에 불지 관심을 표하는 전문가도 있다. 9월에 있을 과테말라 대선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좌파 리고베르토 멘추 여사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녀는 인권 보장을 위한 사회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니카라과에서 다시 좌파 산디니스타 정권이 집권한 후 ‘대안적 연대를 위한 볼리바리안 협정’(ALBA)에 가입하고 중남미 대안 위성방송(Telesur)에도 가입했다. 물론 미국도 80년대와 같은 노골적 개입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미국은 2005년 나프타를 남미 전역에 확산시키려는 ‘미주자유무역협정’(ALCA)을 성사시키려 했다. 그러나 남미 좌파 정부들의 반대로 ‘알을 까지’ 못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새벽’( ALBA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니카라과-이 동터옴에 당황하고 있다.

    마르셀로 꼴루시에 의하면 미국은 단순히 경제적 지배만이 아니라 남미에 대한 군사 기지 확충도 고려했다고 한다. ‘평택 대추리 사태’가 우리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87년의 반복은 가능할까

    역사는 반복하여 1987년 6월의 민중 직접 행동 같은 국민적 폭발을 우 교수는 지적하였지만 이미 역사는 많이 바뀌었음을 말하고 싶다.

    앙헬 까예 꼬야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관습적 정치인 계급과 일반 시민 사이의 관계가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미 ‘유순한 시민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익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에 따라 사회적 무관심과 혐오와 연결되지 않는 채널을 통해 위의 관계를 재구성할것을 강제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저항을 하더라도 세상이 바뀌었으므로 기존 방식의 채널이 아닌 새로운 채널을 통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1987년의 의미는 ‘독재에서 민주로’의 체제 변화였다. 그러나 이미 정치인들과 일반 시민 사이는 의사소통이 거의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지형이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민적 분노와 ‘거리의 정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무관심과 혐오가 광범해져 있는 것이다.

    뜬금없는 중도론과 정치-시민사회의 거리

    그럼에도 진보의 상징이었던 유명인사들 몇몇이 뜬금없이 ‘중도’를 이야기 하며 정치인들과 일반 시민 사이의 거리를 더욱 넓히고 있다.

    이는 그간 약 20년 동안에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기득권 연합’에 의해 기본적인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뀐 것을 의미한다. 과장해서 이야기 하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바뀐 것과 같다. 이를 당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은 잘 모를수 밖에 없다

    앙헬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직업과 가족과 사는(생존에 급급하는) 장소가 이미 우리 삶의 결정적 기둥이 아니다. 적어도 예전의 방식은 아니다. 전통적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어 사회는 불안에 떨고 있다 … 텔레비전도 세상이 그렇지 않느냐고 계속해서 설득한다 …

    지배계급은 이런 대중의 공포를 감지한 후, “우리가 이미 거기에 가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면 당신은 오직 ‘그들을 따르는’ 일만 할 수 있다. 유순하게 따르는 것 말이다. 전에는 정치, 금융, 또는 기업의 기득권층을 향해 책임을 지적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반대로 그들이 해결사가 되어 있을 뿐이다.”

    앙헬은 “우리가 이미 거기에 가있다”는 문제 해결의 메시지 전달의 사례로 ‘빈곤퇴치’를 위한 몬테레이와 요하네스버그 ‘발전을 위한 세계 정상 회의’를 들고 있다.

    뛰어난 해결사 자부하는 노무현 대통령

    정말로 노대통령은 뛰어난 해결사라고 자부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민주화’가 되고 난 후의 지배계급은 과거 독재정권의 지배계급과는 성격과 행동방식이 달라 일반 시민 대중이 제대로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앙헬은 “그냥 따르든지 아니면 민주주의와 사회적 응답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형식을 재-발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정치가가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안을 내어놓고 있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같은 체제 변화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에 있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시인 호세 마르티는 지도자는 엘리트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남미 좌파가 주장하는 ‘지속가능한 내발적 발전’의 전략도 엘리트가 아닌 가난하고 평범한 ‘대중’들에게 대안을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내발적 발전’ 전략은 밖으로의 개방만이 살길이라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거부하고 일반 대중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그들의 가장 기초적 필요성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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