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경제학의 절반
    [책소개] 『이코노믹 허스토리』(이디스 카이퍼/ 서울경제신문사)
        2023년 06월 04일 03: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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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믹 허스토리》는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디스 카이퍼 교수가 꼽은 102명의 여성 경제 저술가 및 여성 경제학자들의 이름을 보여준다. 경제학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역할과 기여를 했지만 그동안 경제사상사에서 쉽게 발견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원인과 방식을 분석한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였지만 독일 우익 자경단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한 로자 룩셈부르크, 노예제 폐지에 참여하고 여성 권리를 위한 연설 활동에 매진한 흑인 여성 노예 출신의 소저너 트루스, 성인 여성으로 성장할 소녀들의 교육 개선을 위한 저작 활동과 교육 개혁을 주도한 새라 트리머 등이다.

    경제학(economics)은 18세기 후반 서유럽과 경제 패권을 쥐었던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중심의 경제학자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패권을 가로챈 미국의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중심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적 연구(historical research)가 그러하듯 경제사상사 또한 무수히 많은 경제학자 중에서도 백인 남성(man)의 관점에서 채택된 이론이 뼈대를 이룬다. 하지만 경제사상사에 기록되지 않은, 오랫동안 외면받고 소외된 여성 경제 저술가와 경제학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경제라는 사회적 구성물의 각 분야에서 연구 및 저술을 통해 학문적으로 기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에 관한 토론과 이론 전개의 장은 물론, 경제사상사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했다.

    오이코노미아에서 페미니즘 경제학까지
    “경제학이란 무엇이고, 누가 경제학을 연구하는가”

    경제학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평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이디스 카이퍼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진 여성과 젠더 평등에 관해 언급한 저술가들과 경제학자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더불어 18~19세기 영국과 프랑스, 19~20세기 미국의 여성, 식민지 여성, 유색인종 여성의 경제적 활동을 묘사하면서 그들의 경제 문제, 투쟁의 역사, 경제적 관점 등을 다룬 저작들을 소개한다. 또 재산, 권력, 교육, 생산, 분배, 소비, 정부 정책 등의 분야에서 활동한 여성 경제 저술가 및 경제학자들의 발자취를 연대기 순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카이퍼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경제학자라는 개념에서 여성 경제 저술가와 경제학자가 빠지게 된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학은 ‘가계관리’ 혹은 ‘가정경제’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유래했다. 오이코노미아, 즉 가정경제라는 개념이 중세 말기까지 경제적 사고의 중심 역할을 했지만 근대에 이르러 화폐, 가격, 시장, 거래 등의 경제적 요소를 포함한 근대적 개념의 이코노미(economy)와 분리됐다. 이는 정치경제학의 창시자 또는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자율적인 남성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공적 영역의 생산성과 부를 이코노미로 정의하면서 가정경제와 분리시켜 바라본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후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맬서스와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이 시도한 이론적 접근법은 카를 마르크스가 만든 ‘고전주의 경제학’이라는 용어로 불리게 된다. 카이퍼는 이처럼 남성 편향의 주류 경제학 이론이 채택한 초기 자본주의, 한계주의, 마르크스주의, 제도주의 등 학문적 방법론과 암묵적으로 배제된 여성의 경제적 역할과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젠더차별, 계급차별, 인종차별, 성 소수자 문제, 글로벌 불평등, 지속 가능 개발 등
    반쪽짜리 경제학의 좁은 터널을 지나 건전한 토론의 장을 위하여

    이디스 카이퍼는 여성들이 경제사상사에 배제된 이유를 밝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이코노믹 허스토리》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묻힌 이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생각이 경제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경제사상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추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권력’, ‘주체성’, ‘재산권’의 젠더화한 해석은 ‘호모 이코노미쿠스’, 즉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경제 행위 주체에서 여성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카이퍼는 여성들이 실제로는 생산, 분배, 소비에서 충분히 많은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주는 예시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세탁부였던 매리 컬리어는 1739년에 쓴 시 <여성의 노동>에서 여성이 남성만큼 일하고 생산했다고 묘사했다. 이는 여성이 가정과 일터에서 겪는 이중 노동의 부담을 기록한 최초의 저술이다. 또 1921년 흑인 여성 최초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새디 태너 모셀 알렉산더는 <필라델피아 흑인 이주자 가족 100명의 생활 표준>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는 백인 남성 중심의 주류 경제학에서 비서양인을 ‘타자’, ‘미개인’, ‘원시인’으로 취급하는 행태가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인종과 계급을 낳은 결과로 이어진 것과 대조를 이룬다.

    그녀들의 경제학, 《이코노믹 허스토리》에 담긴 경제사상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초점을 여성에게만 맞출 것이 아니라 성별, 인종, 계급, 나이, 기타 정체성을 두루 고려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쪽짜리 경제학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균형 잡힌 시각으로 확장시켜줄 그녀들의 이야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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