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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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8일 04: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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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봄, 마산 MBC 홀에서는 연극 ‘오월의 신부’가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시인 황지우가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쓴 대본을 연출가 이윤택이 무대에 올린 것이다. 마산 사람들의 마음 속에 광주가, 광주민중항쟁이, 반독재 투쟁 시절의 연대감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연극을 ‘4월의 신부’와 함께 보면서 마음 깊이 울었다.

    1980년에 나는 27살이었고, 그로부터 벌써 27년을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 27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1980년 봄 복학한 나는 사회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학생운동 일선에서 물러나 결혼을 했다. 그래서 내 아내 이명희는 ‘4월의 신부’가 되었다. 고인이 된 김병곤 선배를 비롯하여 일선을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했다.

    불과 한 달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던 나는 긴 혁명을 준비했고 그 준비는 진작 바닥이 다 드러났다. 광주는 그 때부터 우리 모두의 마음의 ‘빚’이고 ‘빛’이었다. 나는 부마항쟁으로 잡혀갔다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오랜만에 봄볕을 즐기는 걸 내심 떳떳하게 생각했었지만 조만간 엄청난 사태를 맞이하고서는 미안했다.

       
      ▲ 광주항쟁 당시에 행방불명 된 47인의 영정(망월동 구 묘역)
     

    광주는 우리 모두의 마음의 빚이고 빛이었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다음 날 2007년 3월 20일, 나는 광주를 찾았다.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사색하고 다가오는 대선과 총선의 흐름을 가늠하는 데는 역시 광주가 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손학규의 한나라당 탈당을 대한민국 정치 1번지 광주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진보정당은 소용돌이를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양동 시장의 상인들은 한사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남구위원회 사무국장 임영재는 내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내 사투리가 그리 심하지 않다고 강변했지만, 내가 1994년부터 벌써 13년을 마산 창원에 살면서 경상도 사투리가 더 심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답변 거부도 역시 하나의 답변이었다. 목욕탕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사나이는 “손학규 그 분이 그래도 제일로 깨끗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에둘러 호감과 기대감을 표현한다.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는 없고 마땅한 대항마가 없는 상황이 손학규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물론 탈당을 잘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광주일보>는 손학규가 탈당하자마자 즉시 광주전남 지역 학계, 법조, 정치, 여성, 문화예술, 시민단체 등 각계 오피니언 리더 497명이 참여하는 자체 ‘인터넷 패널’을 대상으로 e-메일 설문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손학규의 탈당에 대하여 70%가 “잘했다”고 답변했다. 58%가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통합신당’의 불씨는 광주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75%가 “범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통합 신당에 참여할 것이다”고 답했다. 대선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까지도 한나라당 후보에 맞설 뚜렷한 ‘범여권’ 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개혁적 성향의 손학규에 거는 지역민들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고 <광주일보>는 해설했다. 참고로 전국적으로는 찬반의견이 팽팽하다.

    과연 손학규는 이른바 범여권의 후보가 될 것인가?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광주에서 느끼기에 그가 불쏘시개가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과연 탈당 후 그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10%를 넘기기도 했다. 이런 현상의 밑바탕에는 결국 보수 양당 체제의 유지와 복원을 향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광주에서 내가 예감한 것은 팽팽한 양강의 대선구도였고 보수 양당 체제의 복원이었다. 손학규가 불쏘시개가 되어 자유주의자들의 통합신당의 불씨는 되살아나고 있었다. 민주당의 김홍업 공천을 “무슨 공산당이냐”라고 격렬하게 비판하는 광주 민심은 ‘아버지에게 누를 끼치는 자식’을 야단치는 그만큼 올바르면서도 전략적이다.

    2002년 나는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의 요지는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 현상은 소선거구제 하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는 비상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비상한 전략과 노력이 있으면 비판적 지지는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그 책의 결론이다.

    진보정당은 먼저 영호남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넘어설 수 있다”는 근거는 한국 민주주의가 후진적이고 정당 체제가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찾고 있다. 즉 영호남에서 보수 양당이 사실상 일당 독재를 하고 있는 현실 조건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 양당의 지역주의 극복과 진보정당의 뿌리내리기는 시간을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보수 양당 체제는 지역 구도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 약점 때문에 진보정당은 영남과 호남에서 제2당이 될 수 있다. 제2당은 엄청난 이점을 가진다. 그래서 영남과 호남에서 진보정당은 우선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지역주의를 극복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보수 양당 체제가 들어서기 전에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내년 총선에서 2등으로 출발할 수 있는 선거구는 포항 남구, 울산 북구, 동구, 창원 을구, 거제, 광주 광산구, 그리고 사천, 제주 서귀포시 등이다. 광주 광산구는 지난 지방 선거에서 기초의원을 4개 선거구 모두에서 당선시켰다. 바로 이 선거구들이 민주노동당이 소선거구제 하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지역들이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도 당선자는 영호남에서 주로 나왔다. 울산 17명, 경남 17명, 전북 10명, 경기 10명, 광주 8명 등이었는데 경기는 광주에 비하면 거의 열 배나 크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부산은 수도권과 비슷한 데라 광역 비례의원 외에 당선자가 없다. 이런 경험적 진실을 외면하고서 진보정당의 뿌리내리기를 할 수 없다.

    총선 전략부터 내놓아야 한다

    1992년의 장기표도 3등을 하고 1996년의 서경석도 3등을 한 곳이 서울이다. 1992년의 장기표는 오늘의 정운찬보다 유명했고 1996년의 서경석은 오늘의 박원순보다 대단했다. 그럼에도 3등을 했다. 양당이 팽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2000년에 권영길 당 대표의 지역구 선정을 수도권으로 하는 것을 극력 반대했던 것이다.

    소선거구제에 적응하거나 그 장벽을 뛰어넘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학자들이 간간히 소선거구제를 공격해주는 이야기들에 막연한 기대를 걸고 속수무책으로 있어서는 진보정당은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안이함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많이 당선시킨 경험이 있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은 <레디앙>과의 올해 신년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하게 애기하면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제 때문에 의석이 8석이 생겼는데요, 국회에 들어가는 데 많은 역할을 했지만 부메랑 효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 비례대표제가 어떤 면에서 중장기적으로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입니다.”

    이어서 한 마디 덧붙였다. “2012년 집권이니 제1야당이니 얘기를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려면 지역구에서 약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구에서 가시적인 게 있는지 잘 보이지 않고요, 그런 점에서 마치 비례대표제에 의존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입니다.” 참으로 어린 아이 같이 맑은 눈에는 사물의 핵심이 보이는 법이다.

    진보정당은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과연 지난 총선의 학습 효과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다시 한번 전사를 각오하고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들 비례대표 후보만 되려고 한다. 그러니 선거구민의 여론보다는 당내 여론에 더 민감하다. 꼼짝없이 ‘간첩당’으로 몰릴 상황에서도 당내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침묵한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중앙당을 점령하고 있는 수도권 사람들은 아무런 총선 대책도 없이 무작정 대선을 해보자고 한다. 지역구 당선의 가능성, 총선에서의 당의 생존 전략을 제시하면서 대선 참여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영호남에서 우선 확보한 교두보들을 지키고 나아가 근거지를 확장할 전략이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대선에 결선 투표제라도 있으면 소선거구제임에도 불구하고 양당 체제로 귀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등록을 마친 프랑스 대통령 후보는 모두 12명이다. 그만큼 당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선에는 결선 투표제도 없고, 소선거구제는 양당체제로 귀결된다는 ‘두베르제의 법칙’(단순다수제와 일회 투표제는 양당제를 선호한다는 법칙-편집자)이 관철되고 제3당은 항상 존재의 위기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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