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거리에서 비전제시 집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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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8일 09: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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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04년 4.15 총선 이후 20% 가까이 상승했던 당 지지율이 한해도 못가서 한자리수로 떨어졌고 현재 5-6%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당이 밖으로는 신선한 정책정당의 이미지를 각인시키지 못하고 파벌투쟁과 스캔들로 지지율을 갉아 먹는 한편, 안으로는 지도력 부재와 정파간 갈등으로 좌절과 소외감을 안겨주어 당직자 사퇴와 당원 탈당을 가져오고 있다. 국민의 신뢰도 받지 못하고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도 결집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정당으로서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없을 것이다.

       
      ▲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진=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위기의 핵심에 정파가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 조직진단팀이 중앙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위기상황임을 부정한 중앙위원은 9.1%에 불과한데 비해 위기상황임을 인정한 중앙위원은 82.9%에 달하여 위기의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지닌 문제점들 가운데 당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와 함께 정파들 간의 입장 차이가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지도부도 정파들로부터 배출되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 위기 논의는 정파문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정당 안에 정파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공통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비슷한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정당이라는 자발적 결사체를 형성하듯이, 정당 내에서도 더욱더 세분되고 구체적인 정치적 목적과 신념에 따라 구성원들이 조직화된다.

    진보정당이 기존질서를 거부하고 사회변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구조적 모순이 많을수록 변혁 대상은 다양해지고 진보적 가치관과 변혁의 지향성은 다면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진보적 가치관들의 결집체인 진보정당 내에 변혁 대상과 우선순위 및 실천전략에 있어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정파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다.

    ‘패거리’ 집단 같은 정파

    민주노동당의 창당정신과 강령을 실천하고 당헌·당규를 준수하는 한 정파는 허용되어야 한다. 정파를 없애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스럽지도 않다. 문제는 정파의 존재가 아니라 정파의 기능이다.

    정파들에게 요청되는 역할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대안사회의 전망과 변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당 운영방안을 내놓아 당원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안겨주며 신뢰와 지지를 획득하여 당 권력에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정파들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정파 역할에 대한 중앙위원들의 평가는 긍정적 평가 26%, 중립적 평가 22%, 부정적 평가 52%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의 중앙위원들이 정파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파의 긍정적 기능은 정파간 대립과 토론을 통해 쟁점을 명료화하는 것뿐이고, 당의 통합과 당 입장 확정을 어렵게 하고, 공식기구들의 가동과 당내 민주주의를 저해하며, 당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며, 당 발전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권력획득에만 연연하는 조직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정파’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파벌’ ‘패거리’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파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당의 위기의식과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나 정파구성원들과의 불유쾌한 개인적 경험이 투영되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또한, 정파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어 싸잡아 패거리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정파들이 혐오스런 권력집단으로 형상화되는 데는 그 근거가 있다는 점을 정파들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파벌 천하에 당원은 없다

    정파들이 변혁 프로그램과 운동의 전망을 제시하고 비전과 프로그램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면 정파들간의 당권 경쟁은 대안사회 이행과 당 발전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권력장악 자체가 목적인 단순한 권력투쟁으로 된다. 결국 정파간 경쟁을 통해 당이 발전하는 포지티브섬게임이 아니라 정파들 사이에서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는 제로섬게임이 되거나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는 네거티브섬게임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로섬게임과 네거티브섬게임의 권력투쟁이 일상화되면 당 차원의 리더십이 형성될 수 없고 당내 결속은 어려워진다. 당권경쟁은 당원들의 신뢰와 감동을 향한 경쟁이 아니라 정파구성원들의 조직동원에 의존하게 되며 당원들은 철저히 객체화된다.

    이러한 구도에서 정파는 정파 구성원들에게 정파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정파는 정파 구성원들에게 무조건적 보호와 권력분점의 보상을 약속한다.

    정파내 내부규율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자기 정파 구성원이라면 당 강령을 무시하고 당헌·당규를 위반하는 행위를 해도, 일반인들의 정상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도 관대하게 용서하고 구당행위로 정당화하는 현상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면 당내 권력은 정당성을 수반하지 않고 행사되어 자발적 동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당권 경쟁은 당원들의 무관심 속에 정파들만의 리그로 치러지고 당은 정파엘리트들이 군림하는 유령의 집으로 되고 당원들은 무력감과 소외감 속에서 마음부터 떠나게 된다.

    정파의 안이한 문제의식, 자정기능의 실종

    획기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민주노동당은 이 어두운 시나리오의 트랙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정파들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물론, 모든 정파들이 나서야 하고, 특히 당내 영향력이 큰 정파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파들이 자정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외부의 강제 없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파들 사이의 시각 차이 못지않게 정파 구성원들과 일반 당원들 사이의 인식 차이도 크기 때문이다.

    중앙위원들 가운데 정파의 동일시 정도에 따라 정파 정체성이 높은 집단, 약한 수준이나마 공감하는 정파를 지닌 집단, 정파 정체성이 전혀 없는 집단 등 세 집단으로 나누어 중간 집단을 제외하고 정파집단과 무정파집단을 비교하면 정파에 대한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반 당원의 경우 중앙위원들에 비해 정파 정체성이 훨씬 낮다는 점에서 무정파집단에 상대적으로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중앙위원들 가운데 무정파 중앙위원들의 경우 14.8%만이 정파가 당 발전방향을 제시한다고 보는 반면 77.7%가 당 발전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어 정파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와 반대로, 정파구성원은 24.6%만이 정파가 당 발전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보는 반면 그보다 훨씬 많은 42.0%가 당 발전방향을 제시한다고 보고 있어 무정파 중앙위원들과 대조되고 있다.

    한편, 정파는 “당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조직일 뿐이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무정파 중앙위원은 7.4%만이 반대하고 88.8%가 동의하고 있으나, 정파구성원들의 경우 20.2%만이 동의하고 53.6%가 반대하고 있어 무정파 중앙위원들과 상당한 시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리하자면, 무정파 중앙위원들과 일반 당원들은 정파가 당 발전방향은 제시하지 않으며 권력만 추구하여 휘두르는 권력기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반면, 정파 구성원들은 정반대로 정파가 단순한 권력추종 집단이 아니라 당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정파 구성원들의 안이한 상황인식은 정파가 자정기능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과 민주주의 원리 훼손

    정파구성원들은 정파가 당 안팎에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한 분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정파 중앙위원들과 일반 당원들의 정파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다소 과도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정파 구성원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정파에 대해 좀 더 냉철하게 분석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정파가 자기성찰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면 자정기능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정파와 구성원들의 각성인 것이다. 정파가 스스로 각성하여 긍정적 존재로 전화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한다 하더라도 정파의 긍정적 역할을 유도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현재 정파들은 지도부를 배출하고 지도부 구성원들과 대의기구 대표들을 통해 당론 형성 및 당 운영 관련된 주요한 의사결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후의 실질적 권력기구이다. 하지만, 정파들은 자신들이 배출한 지도부 구성원들의 활동과 자신들이 개입하여 제출된 당론 및 의사결정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파들이 당원들에 의해 선출되지도 않았고 권력을 위임받지도 않은 비공식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노릇을 하는 것은 당내 민주주의 원리를 저해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파들이 자신들의 권력 행사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조차 지지 않는 것은 당내 민주주의 원리를 이중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물론, 정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을 리 없다. ‘보이지 않는 권력’에서 책임 있는 행위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은 재벌그룹 총수일가들의 행태에서 확인된 바와 같다.

    투명하고 책임지는 정파, 비전으로 경쟁하라

    정파들이 자기 정파와 구성원들의 행위와 입장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비전과 프로그램으로 경쟁하며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은 정파들에게 활동공간과 자원을 제공하며 당내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당의 규율을 부과해야 하며, 정파등록제 도입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정파들은 당내 조직으로서 당의 창당정신과 강령을 존중하고 당헌·당규를 준수하며 자발적으로 엄격한 내부규율을 세워 집행하고 정파 활동을 공개하며 정기적으로 평가서를 제출하는 한편 자기 정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정파소환제도 실시해야 한다.

    정파들이 책임감 있는 실천 속에서 대안사회 비전과 변혁 프로그램, 당 발전 전략과 구체적 정책들로 경쟁한다면 정파들은 당원들의 신뢰와 존경을 회복할 수 있고 당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긍정적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정파경쟁은 제로섬게임 혹은 네거티브섬게임이 아니라 당과 함께 정파들이 더불어 성장·발전하는 포지티브섬게임이 되며, 당과 함께 정파들은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정파들이 정파 문제와 당의 위기상황을 동시에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본고는 민주노동당 조직진단팀의 민주노동당 조직진단 결과보고서(2007.2.10)와 중앙위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참조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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