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은 왜 단죄 받지 않고
    무릎 꿇지 않고 여생 보낼 수 있었나
    [신간]『전두환의 마지막 33년』(정아은/ 사이드웨이)
        2023년 05월 20일 10:4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대한민국의 제11대, 12대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그의 삶과 죽음은, 그가 끝끝내 단죄받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의 가장 첨예하고도 문제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뒤 전대미문의 학살과 인권 탄압을 자행했던 전두환은,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채우고 퇴임한 뒤 33년간 풍족하게 살아가며 천수를 누렸다. 그는 우리 사회로부터 마땅한 처벌을 받은 적도 없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 적도 없다. 수십 년간 진상규명과 사죄를 외쳤던 5·18 유족들의 고통과 절망이 무색하게, 그는 2021년 11월 23일 자신의 집에서 평화로이 눈을 감았다.

    우리는 왜 전두환을 무릎 꿇리지 못했는가? 그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국가적·사회적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전두환을 둘러싼 해설과 논평은 넘치도록 많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내놓은 적이 없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전두환의 생애와 대한민국 현대정치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를 그 근원으로부터 상호 연관시켜 철저하게 들여다봐야 하고, 그의 여러 악행을 가능케 했던 개인적 기질과 당대의 정치 환경, 시대적인 맥락을 총체적으로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병설 서울대 교수가 이 책에 부친 말처럼,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라는 문제의식에 입각해 전두환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깊고 치밀하게 복원하는 중층적이고 입체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세 편의 인문 에세이를 출간했던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정아은은,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작업을 완수했다.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전두환이란 인물의 태생부터 죽음까지를, 그의 집권 전후의 시간을, 나아가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의 여생을 지금껏 나온 그 어떤 문헌보다도 철저히 복원한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전두환을 악마처럼 몰아붙이는 작업이 아니고,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도 아니다. 대신 전두환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규명하고,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 그리고 그 인물을 탄생시킨 ‘악(惡)의 기원’을 대한민국의 현대사라는 지평 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전기적인 작업이다.

    정아은은 왜 이 작업을 시작했고, 이 작업을 끝마쳤는가? 그는 책에 그 이유를 적어두었다.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악’은 물리적 생명력이 끊어진 뒤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미래에도 영향력을 이어갈 것이기에. 피와 눈물을 흘릴 줄 알았고, 자신의 가까운 사람과는 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던 유형의 악인(惡人) 전두환의 면모를 우린 이제라도 똑바로 인식해야 하기에. 전두환이라는 악인을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하고 감당해야 하는지 묻는 일은, 그의 사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본격적으로 성찰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그는 어떻게 악인惡人이 되었고, 악인으로 죽었는가’
    우리가 전두환을 단죄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를 묻다

    2021년 11월 23일,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 전두환이 세상을 떠났다. 1931년에 태어난 그의 구십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뒤, 광주의 학살을 딛고 1980년 8월부터 1988년 2월까지 7년 반 동안 집권했다. 퇴임 후 쫓기듯 2년간 백담사에 머물렀고(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1995년 12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김영삼 정권의 과거사 청산 정책에 따라 본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김대중 정권에 의해 특별 사면된 후, 그는 자신의 연희동 자택에서 자유롭고 윤택하게 노후를 보내며 천수를 누렸다. 국민의 절대 다수는 그가 정당히 단죄받아야 한다고 외쳤으나, 그는 4개 필지, 3개 건물로 이루어진 약 500평 규모의 집에서 한쪽 벽면 전체를 취임식 때 했던 연설문으로 뒤덮은 채 죽을 때까지 제 무고함을 강변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전두환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광주의 유족들과 전두환 집권기 숱한 인권 탄압의 피해자들은 그가 정당하게 단죄받지 않고 죽었다는 사실에 여전히 몸서리치고 있다. 2023년 초 우리에게 얼굴을 드러낸 그의 손주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학살자라고 지칭하며 만인 앞에서 고통의 신음을 흘리는 중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전두환을 옹호하고 그의 죄 없음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수십 년째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1980년대와 5공화국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정서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더욱 짙게 공유되는 중이다. 그들은 전두환 집권기가 ‘단군 이래의 최대 호황’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그래도 전두환 때가 먹고 살기는 좋았지.”라는 말로 미묘한 심정을 드러낸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전땅크’, ‘엔젤 두환’ 등의 닉네임을 쓰며 전두환의 1980년대를 낭만적으로 찬양하거나 희구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전두환을 “진짜 애국자”, “진정한 경제 대통령”, “강하고 유능한 군인 대통령” 등으로 묘사하며 예찬한다.

    요컨대, 전두환은 우리 사회를 선 긋는 하나의 정치적인 리트머스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입에 올리지만, 아무도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대부분 전두환이 ‘나쁜놈’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아무도 그의 악행이 어떤 개인적·사회적 특질로부터 연유했으며, 그가 왜 그렇게까지 문제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는지를 그 뿌리부터 추적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우리는 전두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그는 도대체 어째서 사죄하지 않고 이 나라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는가? 대한민국은 왜 그를 끝끝내 무릎 꿇게 하지 못했는가? 이 답을 찾는 과정은 결코 가볍고 단순하지 않다. 전두환의 개인적 일대기를 입체적인 시각과 역사적인 안목, 대한민국의 시대적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퇴임 이후 그가 맞이한 33년의 생애’를 심층적으로 길어 올리려는 지성과 의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세 편의 인문 에세이를 출간하고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인 정아은이 이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통해 바로 그 작업을 완수했다. 수많은 문헌을 섭렵하고, 여러 인사들과의 수많은 인터뷰 및 당대의 시대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적인 성찰을 거친 뒤, 정아은은 몇 년간의 작업을 거쳐 비로소 그 작업을 끝마쳤다.

    전두환을 악마 혹은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규명하다
    12·12와 광주를 거쳐, 1980년대의 모순과 격정을 연출했던 그의 여정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전두환이 왜 악인이 되었고, 악인으로 살았으며, 악인으로 죽을 수 있었는지를 파고든다. 정아은의 이 책은 전두환을 악마처럼 몰아붙이는 작업이 아니고, 영웅으로 미화하는 작업도 아니다. 대신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치열하게 규명하고,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 그리고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악(惡)의 기원’을 대한민국의 현대사라는 지평 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전기적인 작업이다. 전두환의 퇴임 이후 33년의 생애, 그와 대한민국이 맺었던 관계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시기에 전두환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만나 이 땅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전두환이 끝내 무릎 꿇지 않은 이유를 알기 위해선 전두환의 개인적인 기질을 똑바로 들여다봐야 하고, 악인을 잉태하고 권력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던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의 맥락을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정아은은 이를 위해 전두환의 개인사적 시간과 한국의 집단적 정치 시간의 맥락을 총괄적으로 되짚어간다.

    책의 1부 ‘영광(1931-1980)’에서 저자는 전두환이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50년이라는 시간을 심층적으로 추적한다. 즉, 전두환의 기질적인 씨앗이 싹튼 그의 성장기에서부터 1979년의 12·12 쿠데타, 1980년 5월의 광주를 거쳐 그가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로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정아은은 그가 남긴 회고록과 다양한 문헌을 통해 그의 성장 과정을 되짚고, 상승을 향한 끈질긴 집념이 이뤄낸 강렬한 드라마를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전두환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각오로 군 경력의 승승장구를 거친 뒤 박정희가 암살되기 7개월 전, 49세의 나이로 보안사령관에 파격 임명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식민과 분단, 전쟁이란 토양 위에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뚝심의 계보를 정통으로 잇는 후계자라는 사실이다. 정아은은 전두환이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이승만-박정희와 어떠한 일관성을 갖고 있었으며, 동시에 두 전임자들과 어떤 면에서 달랐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85명의 군인이 3,700만 대한민국을 접수했던” 1979년 12월 12일의 밤을, 그가 어떻게 광주의 비극을 딛고 권좌에 올랐는지를 철저하게 복원한다. 전두환이 ‘정보’를 다루고, 미국과의 관계를 저울질하며, 법을 짓밟고 국민을 학살할 수 있었던 대내외적 기제를 망라하며, 그의 행보에서 무신경한 낙천성의 끔찍함, 그의 무반성을 가능케 만든 ‘특별한 가벼움’을 길어 올린다.

    이 책의 2부 ‘모순(1981-1987)’은 그렇듯 아무런 정통성도 없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전두환의 1980년대가 얼마나 논쟁적이고도 아이러니한 시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정아은은 말한다. 1980년대는 대단히 문제적인 시기였으며, 온갖 모순으로 점철된 격정의 시절이었다고. 1979년의 12·12 쿠데타 이후 1987년 6월항쟁에 이르는 기간은, 전두환이라는 무법자가 노골적인 폭력을 통해서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점차 기정사실화되었던 시기이자 정통성 없는 대통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먹고사는 문제’에 사활을 걸었던 시기였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받고 있던 고통의 시간이었고, 역대 어느 정권보다 적나라한 부정부패로 얼룩진 시간이었으며, ‘한 명 대 사천만 명의 대결’이라 불릴 수 있을 어두컴컴한 시간이었으면서도, 동시에 전두환이 김재익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내세워 경제 분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뤄내며 이 땅에 물질적 풍요를 불러온 시기이기도 했다. 전두환은 분명 핵심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알았던 용인술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1980년대 5공화국의 성과들은 그가 퇴임 뒤에도 자신의 ‘공(功)’을 소리높여 외치는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러므로 정아은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1980년대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대한민국이 왜 그의 퇴임 후에도 전두환을 끝끝내 무릎 꿇리지 못했는지를 추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전두환의 관계를 깊고 치밀하게 성찰하다
    우리 공동체에 남은 상흔을 치유하는 첫걸음을 떼기 위하여

    전두환은 분단과 전쟁 이후 거대한 공백과도 같았던 대한민국의 시공간에서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전임자들의 전통을 착실히 따라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자기 정통성의 부재를 만회하기 위해 이 땅에 부분적인 자유와 물질적 풍요의 기반을 선사했고, 그때 싹튼 개인주의와 감각적 자유는 1990년대 대한민국에서 절정을 맞는다. 책의 3부 ‘몰락(1988-2021)’은 이제 그가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이후부터 2021년 죽음을 맞이한 날까지의 여정을 고찰한다. 전두환이 권력에서 물러난 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에 올랐고,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투신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었다. 노태우는 자신과 하나의 뿌리를 가졌던 전두환을 냉정하게 뿌리쳤고, 김영삼은 그를 감옥 안으로 집어넣었고, 김대중은 그를 감옥 바깥으로 풀어주었다. 1989년 12월의 5공 청문회로 일약 이 나라의 스타가 되었던 노무현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전두환과 극단적으로 다른 방식을 취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박정희의 후계자 박근혜는 전두환의 부정 축재 재산을 몰수했지만, 그 또한 전두환을 향한 사적 복수의 자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전두환은 권좌에서 내려온 뒤 백담사와 감옥 안에서 각각 2년의 시간을 보낸 것을 제외하면 수영장과 스크린골프장과 널찍한 정원이 딸린 광활한 저택에 머물며 자유롭게 살았다. 다시 한번 질문해보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대한민국은 왜 퇴임한 학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는가? 드물게 이루어졌던 처벌은 왜 그렇게 단편적이고 자의적이었는가? 정아은은 이 3부에서 전두환이란 인물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들, 즉 노태우와 김영삼,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박근혜의 개인적·사회적·역사적·정치적 동역학을 추적한다. 정아은은 전두환을 향한 우리 사회의 단죄와 용서가 시스템과 법치가 아니라 (정치적 진영을 떠나) 최고 결정권자의 사적 동기로 가해졌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직선제’ 그 이후로 도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정아은의 표현처럼, 전두환은 이미 우리 사회의 뼈아픈 ‘대자아’가 되어버렸다. 전두환은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인물, ‘시층이 겹겹이 쌓인 한반도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절단면 같은 인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퇴임 후 33년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은 대한민국의 가장 첨예하고 취약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저자는 3부에서 바로 그 작업에 천착한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마지막 4부 ‘악의 기원’은 1부에서 3부까지 고찰해 온 화두, 즉 전두환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집권할 수 있었고, 단죄받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었으며, 결국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깊은 상흔과 족쇄가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되짚는 장이다. 저자는 쓰고 있다. 전두환이 퇴임 뒤에라도 반성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면, 그는 그의 가족과 측근들이 그렇게도 부르짖는 ‘정당한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최고 등급의 결정권을 가진 이의 인격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며, 헌법상 최고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그는 그가 속한 사회의 공기와 만나며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두환이 어떤 죄과를 갖고 있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든, 1980년대는 뛰어난 관료들이 정책을 잘 펴고 전두환이 이들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어 경제가 순항을 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그런데 전두환은 제 원죄에 대해 전면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공’에 해당하는 사항을 인정받게 될 수 없었으며, 그가 자신의 죄를 부정할 때마다 그의 정체성은 ‘살인자’로 귀결되고 그때마다 세상은 그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특히 4부에서 전두환에 대한 찬양과 낭만화 현상을 살피는 저자의 지성적인 스펙트럼은 빛을 발한다. 강원택과 임혁백, 이제민과 최병천 등 뛰어난 정치경제학자들의 분석과 알렉시스 드 토크빌, 토머스 홉스 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저자는 1980년대의 독재자를 향한 퇴보적인 선망이 대한민국이 199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후 국민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래서 사람들이 과거 개발연대 시절의 ‘강력한 국가’를 얼마나 그리워하며 또한 1980년대의 공동체적인 소속감과 유대감을 얼마나 희구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반증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정아은에 따르면, 전두환과 같은 극단적인 악의 돌연변이가 이 땅에서 다시 득세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4부 마지막 챕터에서 그런 인물의 재등장을 막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선(線)’, 법치주의와 사회적 규준을 정착시켜 가는지에 달려 있음을 논증한다. 우리가 지금 전두환의 직계 후손이 살아오는 내내 혹독한 죄책감에 시달려 왔음을 지금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악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후과와 그 상흔은 이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얽어매고 있다. 그래서 정아은은 말한다.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고, 자신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국민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두환이라는 악인(惡人), 전두환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넘어설 때에만 우리는 선과 악, 말과 행동, 과거와 미래, 현실과 이상을 제대로 가늠하며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것, 부정적인 것의 맞물림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

    ‘국민을 살상하고 불법적으로 집권한 전두환이 어떻게 7년 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도 제대로 된 단죄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바로 이 논쟁적인 화두에 관한 기나긴 탐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세상을 떠난 전두환에 관해서는 그간 다양한 저술이 출간된 바 있지만, 아직 우리 출판계에서 엄밀한 고증과 비평적 관점에서 집필된 그의 평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개인적 일대기를 입체적인 시각과 역사적 안목,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깊이 있게 파악하고 ‘퇴임 이후 33년의 생애’의 의미를 치열하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전두환에 관한 기존의 저술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목적 혹은 진영의 논리에 기대어있거나, 주로 그를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첨예하고 비극적인 사건, 예컨대 12·12 사태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특정 사안에 깊이 천착해왔다. 즉, 전두환과 그의 집권기는 아직껏 한국 현대정치사의 일부분 정도로만 다뤄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우리나라의 중견 소설가이자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정아은이 전두환과 당시 시대에 관한 핵심적인 문헌들을 바탕으로 쓴 첫 전기적인 르포, 한국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100여 권의 참고문헌과 200여 개에 달하는 이 책의 세심한 주석은 저자가 전두환과 대한민국의 한국의 현대정치사에 관하여 얼마나 깊은 공력을 쏟고 오랜 탐구를 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철저한 문헌적 고증에 더하여 대한민국 현대사와 이 땅의 독재자들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 어느 문제적 개인이 보여주었던 인간성의 심연과 대한민국의 지난 한 세기를 지배했던 사회적·문화적 습속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찰이 이번 원고를 이끌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단순히 과거의 자료 및 문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육군사관학교를 예편한 여러 인물과의 꼼꼼한 인터뷰 등 정아은의 이번 원고엔 전두환의 궤적과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다방면의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