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파 -"누굴 찍나", 자주파 - "후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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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6일 07: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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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선출사상 최초로 경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당내에서는 많은 고민과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11일 열린 당대회 사전 행사에서 대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는 노회찬, 심상정, 권영길 의원.
 

보수정당에 계보가 있다면 민주노동당에는 정파가 있다. 공식적으론 정파라는 말의 부정적 어감을 씻기 위해 의견그룹이라고 부른다. ‘계보’가 정치적 이해관계와 인간적 친소관계의 묶음이라면 ‘정파’는 이념과 정치노선에 따라 갈린다.

태생적 기원에서 정파는 계보보다 건강한 것이지만, 때로 완고한 정파중심적 사고는 계보정치를 방불케하는 혼탁상을 연출하기도 한다. 정파간 주도권 다툼과 반목은 민주노동당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로 지적돼왔다. 정파적 질서의 극복은 해묵은 과제이고, 이런 인식은, 적어도 언술의 차원에서는 ‘정파적 차이’를 초월한다.

그러나 정파가 민주노동당의 오늘을 이루는 주요한 조직적 성분인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를 알려면 정치적 의사결정의 ‘비공식’ 단위인 정파의 움직임을 눈여겨 봐야 한다.

자주파와 평등파

민주노동당 내 정파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언론에선 이를 NL(민족해방파)과 PD(민중민주파)로 분류한다. 당은 ‘자주파’와 ‘평등파’란 명칭을 선호한다.

‘자주파’와 ‘평등파’는 어떤 경향성에 가깝다. 대체로 ‘자주파’는 민족문제를, ‘평등파’는 계급문제를 중요시한다. 정치적 단위로서의 정파는 이들 경향성 내부에서 나뉘어지는 조직 단위다. ‘자주파’와 ‘평등파’는 정파를 동일한 경향성에 따라 묶는 일종의 대분류법이다.

‘자주파’에는 세 개의 주요 그룹이 있다. ‘인천연합’,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이다. ‘평등파’에는 네 개의 주요 그룹이 있다. ‘전진’, ‘혁신네트워크’, ‘해방연대’, ‘다함께’ 등이다.

현재 민주노동당 내 정파들의 최대 이슈는 단연 대선이다. 어떤 대선이 되어야 하며, 어떤 기준으로,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정파들은 고심하고 있다.

정파들은 당이 이번 대선을 통해 대중적 지지세를 비약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밑돌 삼아 총선까지 내달려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진보대연합’과 같은 적극적인 선거연합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도 대체로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당의 자해행위’로 비판받던 ‘비판적 지지’의 움직임이 적어도 당위의 차원에서는 정파를 불문하고 자취를 감췄다는 것도 예년과 달라진 풍경이다.

그러나 선거의 목표나 선거연합에 대한 강조점에서 정파들은 미묘하게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당 기반 확대냐, 한나라당 집권 저지냐"

‘자주파’는 선거연합에 보다 적극적이다. 다만 ‘반신자유주의’와 ‘반한나라당’의 경계에서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반한나라당’에서 한 발짝만 오른쪽으로 가면 ‘비판적 지지’라는 낭떠러지가 있다. 물론 이들은 ‘비판적 지지’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울산연합’ 핵심 관계자는 "내부 논의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비판적 지지’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자신을 ‘범자민통 계열’로 분류한 한 당직자는 "비판적 지지의 가능성은 0.1%도 없다. 당의 구조가 그런 주장을 하면 죽게 되어 있다"고 했다.

‘반신자유주의’는 당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대신 연합의 외연을 좁힐 수 있고, ‘반한나라당’은 연합의 외연을 넓히는 대신 주도권을 다른 곳에 내줄 가능성이 크다. ‘울산연합’ 핵심 관계자의 말은 자주파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대선의 목표는 두 가지다. 먼저 민주노동당이 대선-총선을 거쳐 독자적인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또 ‘진보대연합’을 통해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 이 둘을 연결시키는 게 쉽지 않다"

당내 경선과 관련해선 ‘본선경쟁력’과 ‘민족문제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기준으로 놓고 후보를 고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심상정 의원이 ‘한반도 정치군사적 현안 해결을 위한 5대 긴급제안’을 내놓은 것을 당내 정치의 맥락에서 읽는 시각도 있다.

‘인천연합’에 속하는 이정미 중앙연수원 부원장은 "당의 정책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본선경쟁력과 당을 쇄신하고 비약시킬 수 있는 비전을 눈여겨 볼 것"이라고 했다. ‘울산연합’ 관계자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태도, 민심과 당심의 소재, 두 가지를 후보를 고르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자체 후보론을 둘러싼 자주파 내부의 입장차

‘자주파’는 현재 출마 의사를 밝힌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의원 모두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 ‘독자후보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당 주변에선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출마설도 소문처럼 떠돈다. ‘독자후보’ 문제에 대해선 그룹별로 조금씩 입장이 갈리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조직의 사정에 밝은 당의 한 관계자는 "그들은 자주민주통일의 정치강령을 입간판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전했다. 가능하면 자체 후보를 내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독자후보를 낼 것인지, 독자후보를 내지 않을 경우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는 단계"라고 했다.

반면 ‘울산연합’은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울산연합’ 관계자는 "후보전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면서도 "’독자후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당의 후보가 독자후보"라고 했다.

‘인천연합’도 아직 후보방침을 정하지 않았다. 이정미 부원장은 "경선 시기가 6월말 7월초로 결정된다면 4월 경 후보 방침에 대한 윤곽이 잡힐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좀 더 늦춰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정파구도로 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했다.

자주파는 현재 당권을 쥐고 있다. 당내 세력분포에서 대략 60%의 지분을 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자주파의 움직임은 후보의 당락을 결정짓는 최대의 변수가 될 공산이 크다.

이들이 ‘조직투표’에 나설 경우 특히 그렇다. ‘울산연합’ 관계자는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오더를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지금까지의 관례상 조직투표가 100%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고민하는 평등파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경선 국면에서 ‘평등파’는 ‘자주파’보다 뜨겁다. 현재 출마 의사를 밝힌 주자들이 범평등계열인 탓이 크다. 후보군과 동일한 이념적 지반에 서 있는 평등파로선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고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최대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당내 최대의 ‘평등파’ 그룹인 ‘전진’은 4월 1일 예정된 총회에서 대선의 강령과 후보 방침을 정할 예정이다.

‘전진’의 핵심 관계자는 "전진의 대선 강령을 수용하는 복수의 후보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세 후보 모두 대선 강령을 수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즉 세 후보를 모두 지지한다는 것인데, 이를 뒤집으면 조직 차원의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진’은 앞서 중앙의 방침을 통해 조직원들이 각 주자의 캠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열어둔 상태다. ‘전진’은 현재 노회찬 의원을 지지하는 그룹과 심상정 의원을 지지하는 그룹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지후보를 사실상 정하지 않기로 한 이번 방침은 조직 내부의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진’ 관계자는 "전진의 강령을 관철시키기 위해 경선 국면을 활용하는 것으로 봐 달라"며 "세 후보 모두 훌륭한 분들"이라고 했다. ‘전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대선을 통해 당의 정책을 보다 좌파쪽으로 끌어당길 것"이라며 "인물, 조직, 정파보다는 정책 중심의 경선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전진’은 대선주자 토론회 등을 통한 후보 검증을 계획하고 있다.

‘혁신네트워크’ "지지 후보 정하지 않겠다"

‘혁신네트워크’는 지난 3월 9일 모임을 갖고 조직 차원의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기로 했다. 조직의 다수는 노회찬 의원을 지지하고 있지만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소수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혁신네트워크’ 한 관계자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별도의 후보 검증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내 토론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이번 경선이 당을 혁신하고 내외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되도록 혁신 네트워크 회원들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 주자의 정책적 차별성이 없어 자칫 인물이나 조직 및 정파 중심의 경선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세 주자가 견해 차이를 뚜렷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혁신네트워크’는 정책 경선을 유도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4월 말 ‘당의 혁신과 대선’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계획하고 있다.

당내 트로츠키주의 그룹인 ‘다함께’는 누구를 후보로 뽑느냐보다, ‘진보대연합’을 어떻게 이룰 건가 하는 문제에 좀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김인식 서울중구위원회 위원장은 "노무현 정권의 배신에 대한 대중의 환멸감이 극에 달한 상태"라며 "진보세력이 정치적 구심점을 제공해야 한다. 진보적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아니라고 하고, 한나라당에는 돌아가기 싫고, 그렇다고 아직 민주노동당도 아닌 국민들이 많다"며 "민주노동당은 진보진영의 광범위한 결집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선거연합의 제안 대상을 ‘미래구상’에서 ‘노동자의 힘’까지로 규정했다.

그는 당내 경선과 관련해선 "후보에 대해 결정된 건 없다. 누가 돼도 좋다는 생각"이라며 "반신자유주의적 의제에서 급진적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고 대안을 내놓는 데 가장 적합한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또 "앞으로 후보 세 사람의 정치적 장단점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후보 토론회도 하고 싶은데 누구를 먼저 불러야 할 지 고민"이라고 했다.

‘노동해방실천연대’ "자체 후보 내보낼 것"

‘노동해방실천연대'(이하 해방연대)는 자체 후보를 모색 중이다. 후보의 조건은 △해방연대의 대선 강령에 따르는 사람 △운동에 흠결이 없는 사람 △대중성이 있는 사람 등이다.

해방 연대 관계자는 "현재 당내에 있는 후보군 세 명과 개별적으로 접촉하며 본인의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중"이라며 "3월말 대선 강령을 확정하고 4월초 후보를 가시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모든 정파들은 이번 당내 경선이 정파 구도로 치러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동의하고 있다. 권-노-심 세 후보도 공히 정파 구도로 경선을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경선을 통해 낡은 정파구도를 극복하고 정파들간의 생산적인 경쟁 체제로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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