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때마다 나타나는 에피소드"
        2007년 03월 24일 08: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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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전진코리아’ 창립대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제3지대’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공간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표현은,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가출 정치인들의 집합 장소라는 현실적 의미를 은폐시키고 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근 제3지대의 이 같은 성격을 꼬집으면서 ‘우범지대’에 불과할 뿐이라고 비아냥거린 것도 이 대목을 지적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업그레이드된, 또는 퇴행적인 수혈론

    그럼에도 보수 정치권과 언론은 새로운 정치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장소’로서의 제3지대에 여전히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탈당을 계기로 이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같은 가출한 보수정치인들의 집합 장소인 제3지대 주변에는 개혁, 중도개혁, 개혁진보 등을 내세우는 각종 준정치 조직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어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이 표방하고 지지하는 정책과 후보들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반한나라당’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분열된 범여권, 탈당한 손학규, 반한나라당 성향의 준 정치조직이 모인 장소로서의 제3지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 ‘우범지대’부터 ‘희망의 거점’까지.

    제3지대 주변의 각종 준 정치조직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는데, 손학규 전 지사가 기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전진 코리아’ 등이 최근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바 있으며 ‘미래구상’의 경우 민주노동당 내 진보세력 연합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연대의 대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과거 정치권에서 지겹도록 되풀이됐던 물갈이론, 수혈론의 2007년 버전이라고나 할까. 다만 일방적으로 피를 팔고, 물을 대준 과거와는 달리, "같이 피를 나주자"고 나선 것이 달라진 것이라면 달라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준 정치조직들은 어떤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정치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제 3지대 춘추 전국 시대’

    최근 제3지대 세력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손 전 지사와 연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물밑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전진코리아’다.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386 출신 모임인 전진코리아는 ‘비 노무현, 반 한나라당’을 기치로 내걸면서 4월 중 전국 순회 강연회를 거쳐 6월 창당을 목표로 삼고 있다. 

    손학규 전 지사가 탈당 후 가장 먼저 접촉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화해와 상생'(운영위원장 이부영) 모임은 중도 노선을 표방한다. 이 모임은 김지하 시인, 박종화 목사, 법륜 스님,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 탤런트 고두심, 연극배우 손숙 씨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사회 원로가 주축이다.

    이들 모임은 ‘균형 잡힌 길잡이 역할’을 기치로 내걸고 시민단체 성격의 조직이 아닌, 포럼 형태의 개방적 모임으로 운영되며, 특정한 정치적 행보를 가져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일찍부터 올해 대선을 준비해서 전열을 가다듬은 ‘창조한국 미래구상’은 신자유주의(한미 FTA) 반대, 6.15 남북공동선언 준수를 정치적 기조로 내걸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 최열 환경재단 대표, 지금종 전 문화연대 사무총장 등 진보적 시민 단체 활동가 및 전문가 그룹이 참여한 이 조직은 ‘진보개혁 세력의 대선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본격적 행보에 나선 미래구상은 ‘반수구, 반양극화, 국민후보’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범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선거 연합을 모색 중이다.

       
      ▲ 지난 1월 12일 열린 <미래구상> 시국대토론회 (사진=미래구상)
     

    이와 유사한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행동’은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진상 규명위 김선택 집행위원장,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이정희 회계사 등 1970~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 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조직은 정치권 안팎 ‘평화 개혁 세력의 대선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열린우리당 및 범여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미래구상보다는 정책적 성향에 있어 보다 오른 쪽에 위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그 외 진보적 대학 교수들 모임인 ‘원탁회의 준비모임’, 불교계의 ‘6월 항쟁 20주년 기념사업회’, 함세웅 신부, 소설가 황석영 씨 등의 인사들도 제3 세력 통합을 위한 행보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향력 크지 않아…민주노동당에 불리할 수도"

    이들 조직은 올해 대선에서 정치적인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제 3세력 대통합 신당’이 되기보다는 그저 말 그대로 ‘제3지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다. 게다가 대선 4개월 후에 치러질 총선의 이해관계도 현역 의원들의 보폭을 제한하고 있어 제3지대의 흥행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열린우리당의 낮은 지지율로 인해 생겨난 현상일 뿐 매번 대선 때마다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그룹들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특히, 이번 대선에선 국민들이 제3세력들에게 요구하는 시대적 역할이나 소명이 없어 국민적 관심을 끌어 모을 수가 없다"고 분석했다.

    또 홍형식 소장은 손학규 전 지사와 제3지대 세력이 연대를 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오히려 그렇게 되면 손학규 전 지사는 ‘악수’를 두게 될 수도 있다”라며 "사회적 지분과 국민의 관심을 확보하지 못하는 제3세력과의 연대는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제3지대 세력의 실체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지적도 있었다. 명지대 신률 교수는 "도대체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뭔지 정말 잘 모르겠다. 이념 및 계급, 철학으로 모이는 정당 문화가 정착되지 못해 만들어진 부산물"이라며 "제 3의 시민 세력이 아니라 권력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치적 결사체에 불과하다. 결국 끝에는 한 곳으로 통합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제 3지대의 세력화가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범 진보진영에게 안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번 대선 구도가 ‘한나라당, 범여권, 범민주노동당(진보진영)’의 ‘3자 구도’가 될 경우 ‘사표 방지 심리’가 작용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 한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대선 판도가 우여곡절 끝에 ‘반 한나라당 전선’으로 갈 경우 범여권과 범 진보진영이 마지막에 결국 연대를 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 극적으로 발생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제 3지대의 세력 확대가 민주노동당에게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젊은층들이 탈 물질화되면 녹색당 등 진보적 성향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데 반해, 한국의 젊은 층은 왜 민주노동당을 쉽사리 지지하지 않는지 한번 쯤 고민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경우 최근 진보세력의 연합과 단일후보론 등이 제기되는 가운데 좌우로 폭을 더 넓히는 연대가 필요하며 이 경우 미래구상도 그 안에 포함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노회찬 의원도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을 강조하면서 기존 정치권도 전선에 동참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 의원의 경우 최근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제3지대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자 이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여 왔는데, 이는 손 전 지사 개인보다는 그들이 모이고자 하는 ‘장소’를 비판의 초점으로 해야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범여권의 정계 개편 방법론으로 떠오르고 있는 제3지대를 집중 타격함으로써, 이합집산 정치 철새들과 정치권 주변을 배회하는 기회주의자들의 본질을 폭로하는 한편, 그들 가운데 개혁 분파 일부와 함께 하는 이른바 ‘분리 견인’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노 의원이 내세우고 있는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은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내 대선 기획통으로 통하는 한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으로도, 한나라당으로도 못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끌어오느냐는 민주노동당의 향후 행보에 달려있다."라며 "당 차원의 진보 대연합의 범위와 요건 기준 등에 대한 원칙을 정하고 미래 구상 등 우리와 연대할 수 있는 쪽을 향해서는 기본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번 대선 판도를 반신자유주의대 신자유주의의 대결로 이끌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공당답게 연대 세력에게는 겸손하게 견인하고, 신자유주의자들에겐 단호하게 가르고, 확실하게 낙인찍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정치연구소’ 강병익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향후 변화되는 대선 판도에서 당이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도록 대선에 임하는 원칙과 진보 진영 대연합에 대한 기준을 당이 빨리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어떠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제3지대는 중도개혁 세력을 수렴하며 결국 열린우리당 쪽으로 개편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과 지지층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제3지대와 연대를 고민하기에 앞서 대선에 임하는 당의 입장과 진보진영 대연합에 대한 원칙을 소신있게 확립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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