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무기로 대처리즘에 맞선 좌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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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6일 08: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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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주는 선물 중 하나는 삶의 무게를 잊고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즐거움이다. 많은 관객은 이 즐거움 때문에 영화를 본다. 일터에서의 괴로움과 스트레스가 자신만의 즐거운 시간까지 이어지는 걸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힘겨운 삶을 다루고 있다면 그 영화를 보는 이는 불편할 것이다.

    켄 로치(Ken Loach, 본명 Kenneth Loach)는 일하는 사람들, 노동계급의 삶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사건을 꾸준히 필름에 담는 작업을 해왔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불편함 없이 볼 수 없다. 노동계급이 처한 현실과 그들이 겪는 역사는 힘겹고 암울하다. 진실은 불편하다.

    유럽의 대표적 좌파 감독

       
      ▲ 켄 로치 감독
     

    지난 2002년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2000)>가 개봉되면서 한국 관객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영화 감독 켄 로치는 유럽의 대표적인 좌파 감독이다. 2006년 10월에 열린 켄 로치 특별전과 그해 11월 59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의 개봉으로 더욱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감독이 되었다.

    켄 로치는 1936년 영국 워릭셔주 너니턴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가정의 삶이 그의 작품에 꾸준히 등장하는 배경 중 하나는, 그가 전기기술자였던 아버지에게서 노동자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공군에서 타자병으로 2년 간 근무한 후에 옥스퍼드 대학 법학과에 진학했으나 학교 실험극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법 공부에는 흥미를 잃고 극예술로 진로를 바꾸었다. 하지만 그와 법의 인연은 이로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 12월에 버밍엄 대학은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옥스포드 대학도 2005년 6월에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켄 로치는 버밍엄 인근 레퍼토리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극단에서 연출을 시작해 방송에 입문했다. ABC에서 조연출로 지내다가 BBC에서 견습감독으로 일하게 된 그는 <젊은이의 일기(Diary of a Young Man, 1964)> 에피소드의 일부 작품을 연출하게 되면서 TV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때까지의 영국의 연극 분위기의 드라마를 벗어나 실험적이고 재능 있는 감독으로 평판을 받았다.

    사회주의자인 제작자 토니 가넷의 지원으로 켄 로치는 <캐시 컴 홈(Cathy Come Home, 1966)>, <인 투 마인즈(In Two Minds, 1967)> 등의 작품을 BBC의 수요극장시리즈(The Wednesday Play, 1965-1969)에서 방영할 수 있었다. 이 시기 무주택, 인구과잉, 성, 낙태 등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드라마를 만들며 주목받았다.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대처와 맞서다

    이 시절의 켄 로치는 프리 시네마(Free Cinema)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이 운동은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영국 국립영화극장에서 6회에 걸쳐 발표된 일련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파생된 영화운동이다. 영화는 모든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예술가는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게 이 운동의 핵심이었다.

    수요극장시리즈 제작 이후에 켄 로치와 토니 가넷은 관료적인 방송국을 벗어나 <케스(Kes, 1969)>를 제작했고 이 작품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요크셔의 광산촌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의 절망과 계급상승을 위한 열망의 이야기이다. 영국 노동자들의 삶을 묘사한 이 영화는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한 켄 로치는 1970년대에도 토니 가넷의 지원 아래 꾸준히 사회 문제, 계급 문제를 다룬 수작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가 후퇴하고 노조의 힘이 약화된 마가렛 대처 수상 재임 기간 동안은 그에게도 고난의 시절이었다.

    BBC도 방영을 취소시켰다

    이 시절 가넷은 헐리우드에서 경력을 쌓길 원해 켄 로치와 관계를 끊었다. 제작 지원도 변변치 못한 대처 시절에 켄 로치를 가장 괴롭힌 것은 검열과 형편없는 배급이었다. 그는 대처리즘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에 집중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품인 <리더십의 문제(Questions of Leadership, 1983)>의 네 번째 부분은 ‘균형 감각을 잃었다’는 이유로 BBC가 방영을 취소했다. 이 작품은 대처리즘의 최대 희생양 중의 하나였던 광원들의 파업을 다룬 작품이다.

    ‘사우스 뱅크 쇼(the South Bank Show)’의 제작자 멜빈 브랙은 광원노조의 파업에서 불려진 민속 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켄 로치에게 의뢰했다. 켄 로치의 <당신은 어느 쪽 편인가?(Which Side Are You On?, 1984)>는 짧은 길이였지만 대처의 정치적 만행을 포함했다는 이유로 상영을 거절당했다. ‘사우스 뱅크 쇼’는 1978년부터 지금까지도 영국의 ITV1이 방영하는 격조 있는 예술 텔레비전 쇼이다.

    로치는 대처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영화들을 만들었을 때 그것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90년대에 들어 새로운 투자자를 만난 로치는 노동자들의 삶을 주제로 한 뛰어난 극영화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절 작품들은 각종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으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노동자 삶 극영화 만들어 세계 영화제 주목

       
      ▲ 영화 <레이닝 스톤>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정치드라마 <숨겨진 비망록(Hidden Agenda,1990)>은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계급적으로 각성하는 건축 노동자들의 얘기인 <하층민들(Riff-Raff, 1990)>은 91년도에 올해의 유럽영화상을 받았다. <레이닝 스톤(Raining Stones, 1993)>은 딸의 첫영성체 예복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켄 로치의 현실 정치 활동도 눈에 띤다. 방영이나 상영만을 목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나 극영화가 아닌 정치적 목적이 분명한 영화를 감독하기도 한다. 1997년에는 영국광원노조의 전투적 지도자이자 블레어에 반발해 사회주의노동당(SLP)을 건설한 아더 스카길을 지지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1년도 영국 총선거에서는 영국 항공권의 독점, 공공 서비스의 부족 등 당시의 정치 쟁점을 다룬 노동당의 선거운동용 5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켄 로치는 2004년 11월에 ‘레스펙트(Respect)’의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레스펙트’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트로츠키주의자, 이슬람주의자, 환경주의자 등이 모인 정치연합이다.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다 36년간 일해 온 영국 노동당에서 제명당했던 갤러웨이 하원의원이 당수로 있다.

    이라크전쟁은 켄 로치에게도 정치적 입장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였다. 1920년대 아일랜드의 독립 전쟁과 북아일랜드 분리를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이라크 전쟁을 직접적으로 암시하고자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일축하면서도, “이는 언제나 당면한 문제이다. 언제나 어딘가에는 군대가 점령하고 있다. 그곳에는 독립과 민주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이라크이다”라며 이 영화가 반전과 반제국주의 영화임을 확인해 주었다.

    민중들에게 역사를 돌려주는 것은 감독의 책임

    켄 로치가 이처럼 현대사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다루는 배경은 그의 신념에 있다. “역사란 향수가 아니다. 역사는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 중 하나이다.” 이런 그의 신념은 <랜드 앤 프리덤(Land and Freedom, 1995)>,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 역사적 배경의 무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레이닝 스톤(Rainnig Stones, 1993)>,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2000)>과 같이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표현도 돋보이는 영화가 있다. 물론 좌파 감독답게 그 유머는 하층민들이 겪는 절박한 현실에서 나온다. 절망으로 얼룩진 등장인물들의 경쾌한 웃음은 마음이 따뜻함을 선사한다.

    이런 영화들이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밑바닥 인생을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에 있다. 켄 로치는 배우가 극중 캐릭터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 삶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연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들, 어디서 왔는지 등을 보여주는 계급을 위장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청소 용역업체에 고용된 불법이민 노동자들이 노조를 건설하고 투쟁하는 이야기를 다룬 <빵과 장미>의 몇몇 배우들은 이 영화를 위해 영어를 배워야 했다.

    하층계급의 생생한 일상을 거침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켄 로치의 영화는 엉뚱한 곳에서 암초에 걸리기도 한다. <스위트 식스틴(Sweet Sixteen, 2001)>은 일본에서 18세 이상 등급을 받았는데, ‘부적절하고 격렬하고 더러운 말’이 200회 이상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러한 말들이 실제로 거리에서 사용되고 있고 리얼한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층민들>과 <스위트 식스틴>과 같은 영화는 스코틀랜드 사투리가 너무 강해서 영어자막이 필요했다. 이는 캐릭터가 지역 사회의 진짜 일원과 같이 보이기 위해서 배우들로 하여금 영화 속 지역 사회의 악센트와 구어를 그대로 구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 영화 <랜드 앤 프리덤>
     

    사람들이 맞서 싸우기 때문에 난 장기적 낙관론자

    켄 로치 작품의 주인공들은 노동자 혹은 민중들이다. 등장인물이 노동을 하는 직업, 농사를 짓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그가 노동자, 민중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생생한 사건을 보여준다. 혹은 그러한 계급에 속한 인물이 피해갈 수 없는 당시의 역사적 파란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를 작품에 담는다.

    간혹 <랜드 앤 프리덤>에서 마을에서 파시스트를 몰아낸 후에 농장을 집단화할 것인가로 논쟁하는 장면이나 <빵과 장미>에서 용역청소부들이 모여 노조를 만들 것인가를 토론하는 장면은 감독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말, 논쟁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여 역사적, 혹은 집단적 선택이 무엇이야 한다는 ‘정답’을 직접 제시하는 측면이 있어 극적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기는 한다.

    켄 로치의 탁원한 능력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기인하는 갈등을 설명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생생하게 그리는 데에 있다. 그는 경쾌하고 따뜻한 유머로 가난한 사람들을 표현한다. 한편으로는 역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의 희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켄 로치의 영화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빵과 장미>에서처럼 경쾌한 승리를 얻는다고 해도 멕시코로 추방당하는 주인공이 있고 연대했던 노동자들이 가난한 용역직을 벗어날 수는 없다. 공화정과 사회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던 길목에서 좌절한 투사들은 더욱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길게 보자면 사람들이 거기에 맞서 싸울 것이니 낙관적이다.” 불편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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