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귀엽게 봐주기엔 너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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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2일 1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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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이어가는 희망의 노래, 한반도 대운하”
“야, 그게 현실성이 있냐”
“그건 너희가 뭘 몰라서 그래”

대운하를 둘러싼 정치논쟁을 보노라면 흡사 아이들의 싸움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운하가 건설 가능하고 국운을 융성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 강변하는데 썩 미덥지 않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한 이 전 시장의 태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당신들이 뭘 모른다”는 거다. 하긴 그 말 많던 청계천 복원공사를 ‘성공’으로 이끈 터라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하다. 그래도, 아무리 개발에 관한 한 ‘권위자’라 하더라도 예견되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귀를 틀어막아선 곤란하다.

대운하라는 게 그저 발랄한 상상으로 귀엽게 봐 주기에는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철학에 기초해 있고, 이 구상을 밀어붙일 경우 한반도의 대재앙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 지난해 10월 중순 유럽 3개국 순방당시 독일 뉘렌베르크 소재 라인-마인-도나우(RMD)운하를 방문해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통해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루겠다"며 "기술적 검토가 끝났으며 시작 후 4년 이내에 완공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사진=연합뉴스)
 

‘웅대한 구상’? 가려진 재앙의 불씨

이명박 전 시장이 주장하는 대운하 건설 구상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대규모 건설로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것이 뼈대를 이룬다.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은 민간자본 유치와 골재채취 수입으로 충당한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수질도 개선되고 주변 환경도 좋아지니 금상첨화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대운하가 만들어지면 컨테이너 물동량 20%를 운송할 수 있고, 시멘트는 20%, 유연탄은 12%를 각각 운송(2011년 기준)할 수 있다며 물류비 절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재원을 퍼부어 이같은 절감효과를 실제로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강원도 동해 지역에서 생산된 시멘트를 굳이 한강까지 옮겨와서 다시 배에 실어 나르고 내리고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대운하 구상 발표 뒤 여러 전문가와 언론의 진단을 통해 많은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자리 30만개를 창출하려면 삽질로 운하를 건설할 때나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고, 골재채취 수입 비용이 과장되었을 뿐더러 무분별한 골재채취가 부를 환경파괴 우려도 제기됐다.

이 전 시장쪽은 이에 대해 운송 선박의 스크류가 공기를 물속에 집어넣어 수질이 개선된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는 기름 없이 움직이는 배라면 모를까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급기야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고 자랑스레 얘기하고 있으니 이러다가는 하늘을 나는 배까지 등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류조절 문제는 운송체계 전반의 개편과 맞닿아 있다. 현재 한국의 운송체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화물운송이 도로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물운송의 도로 편중을 해결하는 방안은 대운하보다는 기존 철도를 발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고도 바람직하다.

고개 드는 개발주의 망령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일명 부룬트란트위원회)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채택하였고, OECD 또한 이 개념을 받아들여 후속 작업을 진행하여 왔다. 한국에서도 이와 엇비슷한 90년대 초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폐기하면서 정부 차원의 개발주의도 마침표를 찍었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국내외에서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 시대를 넘어 경제성장·환경보호·사회발전을 함께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을 기대해 봄직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채 현실화되기 전에 우리는 다시 개발 중심의 가치체계가 대두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

개발이 곧 경제부흥이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담론이 언론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발의 이면은 돌아보라. 바다는 메워지고, 산은 패였으며, 토지는 돈 놀이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같은 개발주의의 최신판이 바로 이명박 전 시장의 대운하 구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대운하의 경제적·기술적·환경적 타당성은 모두 의심스럽다. 대운하 구상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운하 자체의 타당성보다는 청계천 복원의 ‘성공신화’인 듯하다.

그러나 청계천은 애초의 목적이었던 생태하천과는 거리가 먼 절반의 복원일 뿐, 끊임없이 작동하는 모터에 의해서 그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인조천일 뿐이다.

열차페리는 어설픈 ‘짝퉁개발’

문제는 대운하만이 아니다. 같은 당 박근혜 전 대표도 개발주의 깃발을 올렸다. 자신이야말로 원조 개발주의의 직계 후손인데 대운하 구상을 놓친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그냥 앉아 있자니 없어 보이고, 이 전 시장처럼 스케일 큰 그림을 내놓자니 비현실성이 걸린다.

하여 서해안을 달리는 열차페리 카드를 던졌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응은 덤덤하기만 하다. 찬성이든 반대든 사람들은 온통 대운하 얘기다. 결국 ‘누가 옳은지 한 번 검증해보자’고 나섰다.

그렇다면 열차페리도 한 번 검증해보자. 이 구상은 열차 차량을 선박에 실어 서해안을 따라 운송하자는 것으로 비현실적이지도 않고, 대운하보다는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 도로와 항만시설만으로 물동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열차가 굳이 바다 위를 달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더욱이 이 사업은 이미 김대중 정부 시절 검토했다가 철도청과 철도기술연구원의 회의적 진단으로 중단된 것이기도 한다.

박 전 대표의 열차페리 구상은 얼마 전 대선 레이스를 포기한 고건 전 총리의 한일 해저터널과 함께 이명박 식 개발주의 바람을 한몫 거들었다. 이런 개발주의 구상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개발이 정치의 도구가 되고 이윤의 논리에 동원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전 국토를 대각선으로 절단 내는 대운하나 항만 연계 철도부설이 뒤 따르는 열차페리 같은 사업은 그 자체의 경제적 가치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개발되는 공간의 사람, 문화, 환경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대안은 기찻길, 잇기만 하면 돼

두 가지 구상이 지닌 또 하나의 한계는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데 ‘철조망’을 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사업을 검토한 듯하지만 남북관계에 때문에 공약으로 제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북한을 교류·협력 상대가 아닌 적대관계로 바라보는 데서 비롯되는 근본적 한계가 아닌가 한다.

나는 물류체계 개선뿐 아니라 남북의 평화증진, 나아가 동북아 시대를 여는 방안으로 TKR-TSR 연결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다행히도 최근 6자회담을 통해 북미대화가 진행돼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2일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를 올해 상반기 중에 시험 운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남북한 철도연결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철도는 단지 남북의 평화를 매개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미래를 약속해주는 가교이기도 하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물동량은 현재 부산항을 중심으로 운송되는데 이 가운데 70%는 서울에서 옮겨진 것이다. TKR이 개통되면 분단으로 기형화된 물류 흐름을 정상화할 수 있게 된다.

한편 TSR의 종착지인 극동·동시베리아 지역은 러시아 전체 면적의 40%에 이르는 곳이자 천연자원의 보고다.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을 지녔지만 남북 분단으로 한국이 쉽게 접근하기 못했던 곳이다. TKR-TSR 연결은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동시에 남북러 3자,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 지역의 호혜경제체제를 형성하는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이다.

한반도 물류혁신을 위한 지름길은 대운하 같은 ‘공상’이나, 열차를 배에 실어 나르자는 어설픈 ‘짝퉁’으로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21세기 친환경 산업이자, 한반도의 끊어진 핏줄을 이어 평화경제공동체의 동맥으로 거듭나게 될 기찻길이 우리의 대안이다. 남은 것은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는 개발주의, 휴전선에 가로막힌 냉전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려는 우리의 결단뿐이다. 한반도는 뱃길이 아니라 기찻길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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