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학자 조중래의 마지막 인터뷰
    [책소개] 『시민 교통』(조중래 ) / 빨간소금)
        2023년 04월 29일 11: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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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래가 누구야?

    책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조중래가 누구야?”이다. 대답을 이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2022년에 넷플릭스 드라마 <D.P.>로 5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조연상을 받은 조현철 배우의 수상 소감이 화제였다.

    “아빠가 지금 보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빠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죽음이라는 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작년 한 해 동안 내 첫 장편 영화였던 <너와 나>라는 작품을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소란스러운 일들 잘 정리하고 금방 가겠습니다. 편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빠”가 조중래 선생이다. 당시 선생은 몇 년 전 앓았던 암이 재발해 죽음을 앞둔 상태였다.

    조중래 선생은 1990년대 중반 최초로 서울시의 가구통행실태조사를 실시함으로써 현재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교통실태조사의 토대를 만들었다. 2000년대 초 자동차의 배출가스를 실증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모델링을 시도했으며, 마지막까지 해외의 교통수요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뛰어넘는 도구를 개발하고 확산하는 데 애썼다. 그 이전에는 국내 첫 환경운동단체로 알려진 ‘공해연구회’를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공해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도록 노력한 환경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교통학자 조중래의 마지막 인터뷰

    이 책을 기획한 공공교통네트워크와 조중래 선생과의 인연은 2021년 가을 네 차례의 세미나로 시작되었다. 선생은 정부에서 추진하던 GTX 계획이 불확실한 수요 예측 위에 놓여 있으며,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잘못된 국토발전 방향을 가지고 있음을 시종일관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공공교통네트워크와 같은 시민단체가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조중래 선생과의 만남이 이어지기를 원했고, 선생에게 2022년 ‘시민교통강좌’를 제안했다. 하지만 답은 곧바로 오지 않았다. 어렵게 연락이 이어진 2022년 2월, 오래전에 앓았던 암이 재발했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두 달 정도에 불과했다. 서둘러 선생의 강좌를 구술 방식으로 정리하자고 제안했고, 선생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쾌히 승낙했다. 4월 초까지 네 차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특히 상황이 갑자기 안 좋아졌던 3월 말 “다른 건 몰라도 구술 작업은 마치고 가야겠다”라며 연락을 주어 4시간에 가까운 인터뷰를 이틀에 걸쳐 진행하기도 했다. 한 달 뒤인 5월 22일,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그 총 4일, 8시간의 ‘마지막 인터뷰’를 정리한 결과가 《시민 교통》이다.

    조중래 선생을 인터뷰한 공공교통네트워크의 김상철, 전현우는 이렇게 회고한다.

    “생각해보면 2021년 8월에서 2022년 4월까지의 만남은 별것 아닐 정도로 짧았다. 그래서 추억이니 뭐니 하는 말도 쑥스럽다. 하지만 시종일관 침착하고 치열하고 정확하고 근본적이었던 선생의 태도에 우리는 크게 감동했다. 무엇보다 선생은 교통정책의 근저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위태롭게 만드는 관료와 전문가의 기득권에 맞서 시민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민주주의자였다. 이런 강렬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지금 교통정책에 시민의 자리가 있어요?

    어떤 문제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문제인지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 교통 문제가 그렇다. 교통 문제를 일으키는 교통환경은 인간이 만들었는데도, 자연환경처럼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교통환경이 여타 인공 환경과 다른 독특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민의 공적 경험에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대상’으로 등장한 적이 거의 없어서다. 즉, 교통환경을 만드는 교통정책은 민주주의의 대상이 된 적이 별로 없다.

    이 책은 오랫동안 계량 분석 방법과 시뮬레이션으로 교통 문제를 다뤄온 교통학자 조중래와 함께 현행 예비타당성조사 모델이 지닌 논리와 전제, 그리고 편향성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GTX 계획이 불확실한 수요 예측 위에 놓여 있으며,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잘못된 국토발전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해, 교통 정보 공개의 필요성까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공무원-전문가 카르텔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 깊고 진솔한 인터뷰의 결론은, 현행 예비타당성조사가 거짓말이니 하등 쓸모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예비타당성조사도 하나의 모델에 따른 결과에 불과하므로, 교통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를 위해서 시민 스스로 관료와 전문가의 기득권에 맞설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GTX, 정치인-공무원-전문가 카르텔의 본보기

    광역급행철도(GTX)는 한국의 대규모 교통사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사례다. GTX 구상이 구체적으로 등장한 계기는 당시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김문수의 공약이었다. 김문수는 도지사가 되자 대한교통학회에 GTX의 필요성에 대한 정책연구를 의뢰하고, 대한교통학회는 2007년 11월 17일, 3개 노선에 14개 정류장을 포함한 구상을 내놓는다. 사실상 한국에서 가장 큰 교통학회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수많은 학술적 논쟁은 생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2008년 경기 남부 지역 광역교통망 구상 연구용역이 추가로 수행되었고, 사회적 편익이 2조 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아카데믹을 우회한 정치적 요구가 거세지자 2009년 4월 국토교통부에 건의하는 방식으로 수도권 GTX를 국가계획에 반영하기 위한 절차가 시작된다. 2010년에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대심도 GTX의 타당성 조사 결과에서 비용편익비가 1.17로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국토교통부는 2011년 GTX 3개 노선을 국가기간교통망계획 제2차 수정계획에 반영했고, 그해 9월에 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총 4개 노선에 대한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3개 노선의 총사업비만 13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 2007년 대한교통학회의 용역 발표에서 시작돼 C노선 추진이 확정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2년에 불과했다.

    조중래 선생은 “GTX는 굉장히 잘못된 정책”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잘못된 ‘교통시설 편익 산정 모델’을 써서 비용편익비를 산정했으며,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훨씬 더 크게 벌려놓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이 말하는 잘못된 모델은 현재 한국에서 편향적으로 사용되는 비용절감접근법(Cost-Saving Approach)을 가리킨다. ‘속도’ 위주의 이 접근법을 사용하면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와 실제 시행 시 결과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용인, 의정부, 우이 경전철이 이를 증명한다. 선생은 소비자잉여접근법(Consumer Surplus Approach)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책의 3, 4부에 해당하는 ‘셋째 날’과 ‘넷째 날’ 인터뷰에서 이 방법론을 집중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GTX가 일으킬 ‘지방과 수도권 격차’ 문제에 관해서는 조중래 선생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다.

    “저는 거기에 동의 못 해요. 왜냐하면 도시는 천천히 모양을 갖춰나가요. 1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몰라요. 그런데 당장 급하다면서 단기적으로 처방해버리면 누가 책임져요? 그럼 도시는 제대로 형성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서울로 출퇴근 가능하다고 해서 집값이 싼 동탄으로 이사했는데 실제로 와보니 불편해서 못 살겠어. 그럼 다시 서울이나 서울에서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야 하는데 거긴 집값이 비싸요. 이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줘요? 도시가 천천히 모양을 갖추면서 안정화돼야 사람들도 서서히 그 도시에 정착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단기 처방만 믿고 들어온 사람들은 불편하면 또 당장 나가려고 해요.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해요. 그냥 혼란만 생기죠.”

    툭툭 튀어나오는 재밌는 이야기들

    인터뷰는 시종일관 진지하지만, 조중래 선생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재밌는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강제징집되었다가 제대 뒤 ‘공해연구소’ 만든 얘기, 환경 공부하러 유학 갔다가 주택 공부로 바꾼 얘기, 돌아와 다시 교통 연구자가 된 얘기, 공무원들과 다툰 얘기, 그래서 지자체 용역 사업은 안 하고 R&D 사업만 한 얘기 등. 그 가운데 선생이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에 있을 때(1997년) 발표한 ‘2011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둘러싼 공무원들과의 소동을 직접 옮긴다.

    조중래 : 도시계획 파트에서 담당했는데 그중 교통을 제가 책임지고 있었죠. 도시계획 파트에서 서울 지하철 노선을 쌍안경 모양으로 그려서 올려놨더라고요. 여의도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한 바퀴 뺑, 왼쪽으로 한 바퀴 뺑 도는 모양으로. 그래서 내가 “아니 이게 뭐죠?”라고 했더니, 여의도 주변을 둘러싼 역세권, 생활권 패턴을 고려해서 그렇게 그렸다는 거예요. 내가 지하철 수요 분석하면 이렇게 안 나온다면서 반대했어요. 근데 그 그림을 당시 도시국장이 엄청나게 좋아한 거야.

    김상철 : 그림이 예쁘니까요.

    조중래 : 그렇죠. 그게 지하철이어서 교통 파트 책임자인 내가 발표하게끔 돼 있었어요. 바꾸자, 말자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예 빼기로 했죠. 그런데 발표 당일 발표문을 보니까 그 그림이 딱 들어가 있어. 위에서 그냥 밀어붙인 거죠. 도시국장이 그냥 하라고 해서 “전 못합니다” 하고 그냥 나와버렸어요. 발표장에서.

    김상철 : 황당했겠네요, 공무원들은.

    조중래 : 난리가 났죠, 도시국장이.

    김상철 : 어떻게 수습됐어요?

    조중래 : 날 찾으러 다니고 막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어떻게 수습했냐? 제가 발표문에서 그것만 쏙 빼고 얘기하고 발표를 끝냈죠.

    김상철 : 뒤져보면 그 그림이 남아 있겠네요. 발표 자료였으니까.

    조중래 : 있겠죠. 내 말은 전문가를 싸잡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일부 전문가의 일에 대한 접근법이 문제라는 거예요. 특히 내가 평생을 봐온 교통, 도시 쪽 전문가들이 항상 공무원을 바라보고 있어요. 돈이 거기서 나오니까. 어떻게 보면 설계는 미리 공무원이 다 하고 그 설계에 맞는 기반 데이터를 전문가가 만들어주는 모습이 너무 많이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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