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롬비아 좌파집권의 의미
    [L/A 칼럼]루이스 갈란의 암살 이후
        2023년 04월 19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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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8월에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잘 보도가 되지 못했지만 라틴아메리카 정치 지형에 역사적인 일이 일어난다. 젊은 시절에 좌파 도시 게릴라, 비합법 조직인 M-19에서 활동한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가 대통령에 취임한다.
    이 조직은 1970, 80년대에 활동하면서 에콰도르, 페루 등의 도시 게릴라 조직과 연합하여 상징적 인물로 ‘시몬 볼리바르’를 내세웠다. 그리고 정치인, 기자들을 납치하여 생긴 돈으로 빈민을 돕는 ‘로빈 후드’같은 일도 벌렸다. 이런 일은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념적으로는 민족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했다. 그러나 1989년에 콜롬비아 국민의 큰 지지를 받던 비주류 자유당 정치인인 루이스 갈란(Luis Galan)의 암살 이후 1990년부터 무장투쟁을 포기하고 합법 정당(M-19 민주 동맹당)으로 변신한다. 아마 갈란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제도 정치에 대한 대중으로부터의 어떤 정치적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1991년의 제헌의회에도 이 좌파 정당은 참여한다. 새로운 헌법은 아프리카계 주민의 집단적, 자율적 권리(예를 들어, 태평양연안의 주민들이 다국적 기업들이 지적재산권을 내세워 바이오산업을 개발하려는 것을 주민의 자율적 결정을 통해 반대하는)의 인정 등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고 특히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적용하는 개혁적 성격을 가졌었다. 1990년의 에콰도르의 원주민 시위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서 선구적 사건이었다. 구스타보는 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 보고타 시장을 역임했고, 2010년, 2018년 대선에서 패배한바 있다. 하지만 2021년 여러 좌파 정당을 연합하더니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다.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예외적으로 특이한 나라다. 무엇보다 실제적으로 거의 내전상태에 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파 기득권 지주계급과 현실을 변혁하려는 좌파(사회운동지도자, 기자 등을 포함) 사이에 갈등이 심해 학살과 폭력이 일상화 되었고 최근에도 폭력을 피해 국내에서 살던 곳을 떠나는 “이주 난민”이 일상화된 나라다.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모든 나라들에서 좌파 게릴라들이 이미 과거의 일이 된 반면에 콜롬비아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 와서야 ELN-FARC 등이 정부와 평화협상을 할 정도이다. 콜롬비아의 대중이 평화를 간절히 원하고 좌파 게릴라의 무장투쟁에 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백년의 고독]에서 사실적 리얼리즘을 거부하고 초현실주의적, 마술적 리얼리즘의 시각을 통해 학살과 폭력을 아무리 은유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했더라도 팩트의 출발은 매우 구체적인 콜롬비아 역사(예를 들어 1928년의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 폭동)이다. 문학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유명한 소설의 암묵적 모티브가 되는 인물이 호르헤 가이탄이기 때문이다. 호르헤는 1949년 자유당의 대통령 후보로 암살당한다. 이 사건에 항의하여 ‘보고타소’라는 민중폭동이 일어나 약 수 천명이 희생된다. 콜롬비아에서 신화적 인물이다.

    그리고 약 오십년 뒤인 1989년에 자유당의 비주류 인물로서 대통령 후보인 루이스 갈란이 대통령 선거연설을 하던 연단에서 메데인 카르텔의 마피아에 의해 암살된다. 루이스 갈란은 “새로운 자유당”을 주장했었다. 지금은 마약단(카르텔) 범죄자를 미국에 인도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지만 이는 갈란의 희생의 성과이다. 2016년에 콜롬비아 국가는 정식으로 갈란의 암살을 “인류에 대한 범죄”로 규정했다. 이런 움직임은 콜롬비아 대중이 이끌었음은 물론이다. 즉 루이스 갈란은 정치 역정에서 마피아의 은밀한 지원(?)을 거절하며 고난을 겪어왔음을 대중은 아무 말 없이도 알고 있던 것이다.

    비주류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 까닭은 위의 소설에 나온다. 그는 당시 대중의 엄청난 지지를 받아 만일 암살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주류 보수파와 자유파의 차이는 소설에 묘사된 대로 주일날 그들이 참석하는 미사 시간의 차이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도시게릴라 조직도 보수파와 자유파의 주류가 서로 타협(야합)하는 것에 절망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 조직의 이름에 들어가는 “4월 19일”도 1970년 4월 19일의 대선의 선거부정 혐의에 대한 항의의 의미이다.

    1989년 암살 뉴스가 나오자마자 정부에서는 “레이 세까(ley seca)”를 공포했다. 일종의 금주령으로 직장인들이 조퇴를 하고 마트에서 일체 술을 팔지 못하는 법령이다. 이 당시 필자는 콜롬비아에 유학중이라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시내버스에서 사람들이 묵묵히 퇴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갈란의 장례식에는 길거리에서 시민들이 말없이 흰 손수건을 흔들던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던 것도 떠오른다. 당시 마약단은 양심이(?) 있던지 밤중에 비어있는 비디오 가게 또는 사람이 없던 시간의 영화관 화장실 등에서 폭탄을 터트렸다(하지만 당시 식구들에게 군대 경험(?)을 되살려 침대 밑에 엎드리라고 했던 긴장감을 잊을 수 없다).

    구스타보의 취임 이후 2023년에 변화된 것은 그동안 앙숙이었던 베네수엘라와 관계개선의 회담을 개최한 것이다. 콜롬비아의 변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1990년대부터 라틴아메리카 변화의 판도라 상자는 이미 열렸다는 생각이다. 즉 어떤 정권의 교체 등 표면적인 변화가 있더라도 거기에 상관없이 대중이 정치의 주체가 이미 되었다는 점에서.

    필자소개
    성공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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