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캄캄" 늙은 노동자들의 한맺힌 절규
    2007년 03월 21일 07: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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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촌동 한적한 주택가 골목이 늙은 노동자들의 한 맺힌 절규로 가득 찼다.

금속노조 인천지부(지부장 염창훈)는 20일 오후 3시 해외공장으로 물량을 빼돌리고 조합원의 40%를 정리해고 통보한 콜트악기 본사 앞에서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규탄집회를 열었다. 콜트악기 정리해고 조합원들과 인천지부 확대간부들이 참가했고, 같은 회사인 대전충북지부 콜텍지회 50여명의 조합원이 먼 길을 달려왔다.

   
▲ 금속노조 인천지부는 20일 오후 3시 서울 등촌동 콜트악기 본사 앞에서 정리해고 규탄집회를 열었다.
 

콜텍 조합원들이 본사 앞에 들어오자 콜트악기 조합원들은 함성과 함께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고 서로 손을 흔들고 포옹하며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는 기쁨으로 연대의 인사를 나누었다. 회사로부터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통보받고 쫓겨날 처지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500리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콜텍 조합원들은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동지’이다.

“2년 전 노동조합이 없던 우리 콜텍 공장에 인천 콜트악기 조합원들이 와서 집회를 하고 선전물을 나눠줄 때 현장에서 내다보지도 못하고 숨죽여 일하면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러나 이제 콜텍도 당당히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이렇게 여러분들과 나란히 서 연대할 수 있게 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콜트악기 조합원들에게 더 이상 외로워 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영호 사장은 ‘나는 이미 대대손손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벌어놨다. 그러니 더 이상 바라는게 없고 세계제일의 기타를 만드는 게 내 꿈이며 여러분들은 내 가족과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꿈의 공장을 만들겠다며 우리에게 그 꿈을 함께 실현하자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이루어 졌습니다. 그는 천억대 갑부로 한국 부자순위 120위 안에 들었고 콜트악기의 기타는 세계악기시장 점유율 30%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은 꿈이 실현되었습니까? 박영호 사장이 말하던 꿈의 공장은 우리에겐 지옥의 공장이었고 박영호의 왕국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무임금의 조출과 잔업을 강제로 해야 했고 먼지구덩이속에서 유기용제에 중독되며 등골 빠지게 일하느라 육신은 병들었습니다.

사장은 천억대 갑부가 되었지만 우리는 20년을 다녀도 100만원 받아 그달 먹고 그달 사는 인생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나이 먹고 사지육신 병들으니 쪽박 채워서 내쫓고 있습니다.”

이인근 지회장의 절규에 집회 참석자들은 공감의 큰 박수로 응답했다.

“해고됐다는 말도 못하고 회사에 나오고 있어요”

“30대에 콜트에 들어와 제 나이 50이예요. 아직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고 노모를 모시고 있습니다. 마누라한테는 아직 해고됐다고 말도 하지 못한 채 회사에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50 넘어 정리해고 되면 죽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 잠이 오질 않습니다.”

20년 넘게 콜트악기에서 청춘을 바친 한 늙은 노동자는 마치 죄인인 것처럼 얼굴을 들지도 않고 땅바닥에 애꿎은 담뱃재만 비벼대며 말했다.

“혼자된 후 애들 둘 키우면서 학비대랴 생활비대랴 이 악물고 살았어요. 엄마가 정리해고 됐다니까 대학 다니던 아들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하겠다고 했어요. 당장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아들 얼굴을 보고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만 납니다.”

   
 
 

정리해고자 38명 중 25명이 여성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38명 중 여성이 25명이고 그 중에서도 혼자 돼서 가장 역할을 하는 아주머니가 9명이나 포함 되어 있다. 이들은 당장 아이들이 학원은 고사하고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정리해고는 이렇게 아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가족 전체의 생존권을 내동댕이쳤다. 

“정리해고를 통보해놓고 라인이 안 돌아가니 나가는 날까지 일을 하라 합니다. 그러면서 회사에 잘못 보이면 정리해고 후 고용보험도 못타먹게 될 수도 있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바보 천치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왜 짤렸냐 물어봤더니 말이 많아서 짤랐다고 합니다. 평소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따지던 내가 눈엣 가시 같았나 봅니다. 찍소리 못하고 시키는 대로 일만하라는 것이지요.” 아줌마들의 분노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산재노동자까지 정리해고 통보하다니"

인천지부 염창훈 지부장은 “집에서 기르던 개도 몸이 아프면 치료해주는데 박영호 사장은 일하다 다치고 병든 산재노동자들에게까지 정리해고를 통보해 길거리로 내쫒고 있는 악질 자본가다. 박영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15만 금속노동자의 이름으로 응징하겠다”고 선언했다.
 
집회 중에 노조는 회사 측에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영호 사장과 임원들은 모두 자리를 피하고 콜텍 관리부장만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조합원들을 비웃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길을 멈추고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 인근 주민들도 창문을 열고 노동자들의 집회를 지켜봤다.

무슨 일이냐고 관심을 보이던 한 시민은 자초지종을 듣더니 “사장이 그러면 안되지…” 하면서 혀를 찾다.

이날 집회에 콜트악기 조합원들이 많이 참석하지 못했다. 회사 측에서 노동조합과 함께 투쟁에 참여하면 정리해고 대상자로 올리겠다고 하는 협박에 나이 40-~50줄인 조합원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싸우지 못하는 게 서운하죠. 그러나 어떡해요 가족들의 밥줄이 걸린 문제인데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합니다. 대신 우리가 끝까지 해야죠.”

“우리가 끝까지 버티면 남아있는 조합원들도 도와줄 거고 금속노조가 도와줄 거잖아요. 고용보험이 최소 6개월은 나오니까 6개월은 버틸 자신 있어요.”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조합원들은 이미 투쟁의 주체는 당사자들일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집회를 마치고 콜텍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조합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힘내라고 다독여주고 버스에 올랐다.

쌀쌀해진 날씨에 몸은 차갑게 얼었어도 내일처럼 달려와 준 콜텍 조합원들의 연대의 마음에 조합원들은 다시한번 일어설 용기를 얻고 공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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