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탈당 대선정국 요동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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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20일 11: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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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9일 한나라당을 떠났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제 3세력, 중도개혁 성향의 정치 세력을 모아 신당 창당의 길을 걸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20일자 아침신문들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정당정치 훼손’이라며 비판하는 한편 탈당 사태가 가져올 대선 판도의 변화, 특히 범여권 대선 경쟁구도의 변화에 주목했다.

    다음은 20일자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경향신문 <손학규 결국 탈당 씁쓸한 ‘어게인 2002’/쳇바퀴 위의 한국 정치>
    -국민일보 <중도개혁 제3세력 결집 모색>
    -동아일보 <손학규 전지사 탈당>
    -서울신문 <손학규 탈당 대선정국 요동>
    -세계일보 <손학규 "한나라당 탈당" 대선 구도 ‘요동’>
    -조선일보 <손학규 탈당…범여 후보 노려>
    -중앙일보 <명분과 변절 사이…큰 도박>
    -한겨레 <대선정국 ‘빅뱅’ 신호탄 올랐다>
    -한국일보 <대선정국 격랑 다자구도 되나>

       
      ▲ 중앙일보 3월20일 1면  
     

    손 전 지사는 탈당 이유로 시대정신을 외면하는 한나라당의 구태정치와 줄서기 관행, 개혁과 변화 등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아침신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빅3’으로 불리면서도 ‘이명박-박근혜’ 양강구도 사이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를 절감한 손 전 지사가 경선에 질 것이 뻔해지자 탈당을 감행했고, 따라서 속보이는 ‘정치적 변절’이자 ‘배신’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1면 <명분과 변절 사이…큰 도박>에서 "손 전 지사의 변신이 ‘거대한 정치적 도박’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그가 내건 명분을 변절로 보는 차가운 시각도 있다"면서 손 전 지사의 ‘말바꾸기’에 주목했다. "방법론적으로 ’97년 이인제 의원’의 길을 택한" 손 전 지사가 자신이 띄운 승부수를 성공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은 "그가 뿌려 놓은 말"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와 관련, "탈당하겠느냐는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먼저 물어본 뒤 나에겐 가장 나중에 하라"(2006년 6월6일 동아일보 인터뷰) "내가 벽돌이 아닌데 어떻게 빼서 (여권후보로) 넣겠느냐"(2007년 1월 17일 충남도당 신년교례회) "난 한나라당을 자랑스럽고 꿋꿋하게 지켜온 주인이며 기둥이다. 나의 행적을 봐라."(2007년 1월31일 경남도청 기자 간담회) 등 과거 발언과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에 등을 돌릴 수는 없다"는 19일 탈당 기자회견 발언을 나란히 ‘손학규의 말말말’로 1면에 소개했다.

    조선일보도 A3면 <"탈당 안한다" 보름만에 결국 말 뒤집어>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탈당 가능성을 부인했었다"며 "말 뒤집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꼬집었다.

    ? 그것이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또 한 가지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이론적인 단서는 자본의 자본화 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에 있다. 여기에는 두 차례 개입의 여지가 있다. 첫째는 M-C의 계기, 즉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고, 두 번째는 C-M’의 계기, 즉 상품이 다시 잉여가치가 부가된 화폐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것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파는 일이 된다. 무산대중에게 이것은 노동자가 되고 소비자가 되는 일로 나타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M-C-M’의 과정을 끊자고 제안한다.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사상의 실패인가 새로운 사상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는데, 그것이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 운동이다. NAM 운동은 그가 제안한 최초의 현실운동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NAM 조직을 만들고, 각 지역의 NAM 지부 사이에서 네트워크를 꾸려냈다. 간단히 말해 그가 제안한 NAM 운동은 새로운 교환원리인 어소시에이션에 기반하는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 운동이었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발상이 단지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통화 운동은 원리적으로 어소시에이션이다. 그가 『가능한 코뮤니즘』이나 『NAM 원리』에서 제시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운동 역시 자본이 되지 않는 화폐를 매개로 삼는 지역통화 운동의 일종이다.

    그리고 NAM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의 연대를 목표로 삼는다. 화폐 경제에서 판매와 구매, 생산과 소비는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분리, 나아가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의 분리를 낳는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을 해산시킨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현실에서 보여준 시도와 실패는 일본과 한국에서 그를 둘러싼 평가가 갈리는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평가는 예순이 넘은 가라타니 고진의 나이를 상기시키며 “가라타니 고진도 이제 다했다”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정녕 사상의 실패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실패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고도 그는 실패를 감행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현실적인 운동의 실패를 사상의 실패라고 단정짓는 것은 사회주의의 현실적인 몰락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를 사상적으로 꾀했던 가라타니 고진에게는 공평치 못한 일이리라.

    가라타니 고진은 이제껏 여러 사상적 입장에 가격을 매겨 왔다. 이제 자신의 사상적 궤적을 제작비이자 홍보비 삼아 하나의 입장을 상품으로 내놓았으니, 그것은 팔릴 것인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의 사상 언저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늘과 불쾌함을 더 이상은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한 사상가를 진정 대면하려면 그 사상이 지닌 탄성을 제멋대로 줄여놓고 쉽사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2007년 가라타니 고진은 재직 중이던 컬럼비아 대학과 긴키 대학에서 물러나 일본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또 한 번의 사상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하지만 자신의 명성에 사로잡히지도,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기에 그는 건강하다. 그리고 이 말도 보탤 수 있겠다. 기꺼이 실패하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자의 역사적 역할이다. 사회주의자는 하나의 입장에 관한 이름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자들이 공유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실패할지언정 불씨를 남긴다. 그 불씨는 타오를 것인가.

                                                                 * * *

    * 이 글의 필자는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옮긴 책으로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반일과 동아시아』(공역), 『현대사상지도』(공역)가 있다. 현재 동경외국어 대학에서 외국인 연구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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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3월20일 A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