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보잉 747' 객석에 서민은 없다
    2007년 03월 19일 05: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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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선을 노리는 이들이 주제로 삼는 것 중에 ‘경제 성장 목표 달성’이 있다. 올 초 누군가가 7% 성장을 이루겠다고 하여, 그게 가능하네 않네라는 실갱이가 있었거니와 이제는 아예 누군가가 ‘연7% 성장, 10년 후 일인당 국민소득 4만불, 7대 강국 진입’을 한짝으로 묶어 아예 박자좋게 ‘747’을 구호로 내걸기에 이르렀다.

아마 수치를 따지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아닌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할 듯하며, 좀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경제 성장이 꼭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조만간 많은 지적이 이루어질 것 같다. 어차피 올해는 대선 국면이라는 각축전이니 ‘비판’의 소리는 사방에 넘쳐나고 있으니 거기에 돌멩이만한 목소리 하나를 덧붙일 생각은 없다.

어쩌다가 경제성장률이 대선 이슈가 됐을까

   
 ▲ 홍기빈 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우리는 좀 다른 차원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어쩌다가 경제 성장률이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되었는가”라는 궁금증이다. 원래 이 경제 성장률이란 ‘거시경제학’의 기술적 수치에 불과한 것으로서, 경제 관련 관료들이나 학자들 같은 이들이나 다룰 따분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2007년 대한민국에서는 이 경제 성장률이라는 것이 어쩌다가 전 국민이 달려들어 무릎 꿇고 큰절을 올리는 ‘청동 염소’가 된 것인가. 그리고 제사장 자리에 눈독을 들인 야심가들이 저마다 알쏭달쏭한 주문과 함께 몇 프로 몇 프로를 외치는, ‘멈보점보(mumbo jumbo. 미신적 숭배대상-편집자)’의 대상이 된 것인가. 이 경제 성장률 앞에 엎드려 절하거나 가래침을 뱉기 이전에 그 말의 뜻을 찬찬히 생각해보자.

이는 국민 소득의 변화율을 일컫는 것으로, 국민 소득이란 다시 우리 경제 전체에서 1년간 벌어진 모든 경제적 거래의 총량을 말한다. 따라서 경제 성장률이 올라간다는 것은 인간 세상에서 그 해에 벌어진 인간들 간의 상호 작용 중에서 화폐를 매개로 하여 벌어진 것의 양이 불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학자들은 그 양이 얼마나 또 어떤 속도로 변하는가를 자본 축적, 이자율, 소비 경향 등등 경제 ‘시스템’의 다른 모든 수치들과 포괄적이고도 체계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고 보고 있기에 이것의 동향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냥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는 이것이 “전국 고교생의 평균 학력 향상”만큼이나 무덤덤하게 느껴져야 할 수치이다.

실업의 고통이 불러낸 성장률 신화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다가 이혼을 당하는 바람에 식당에서 세 끼를 때우게 되었다면 “화폐를 매개로 한 인간 상호작용”의 총량은 늘게 되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는 기여하게 되지만, 그게 나의 행복과 무슨 상관인가.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면 여당 정치가들 경제 관료들은 목과 배에 힘을 주고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되겠지만 그것이 우리 가정의 행복과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어째서 이것이 전국민적 토론거리가 되고 이번 대선에서는 아예 최대의 쟁점 중 하나로까지 될 조짐을 보이는 것인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학의 칠판에 적힌 그래프와 숫자(그것도 실제 측정치가 아닌 가설적인 그래프와 숫자)로만 머물던 이 경제 성장률이 현대 정치의 최전선으로 끌려나오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실업’ 때문이다.

옛날 농경 사회에 가뭄과 홍수라는 재앙이 있었다면,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는 불황이라는 재앙이 있다. 가뭄과 홍수가 들면 왕이나 제사장의 목이 종종 떨어져 나갔던 것처럼, 불황으로 실업자가 늘고 살기가 팍팍해지면 “국가가 책임지라”는 험악한 목소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각종 통계 수치는 정치적 장에 있어서 가장 따분하고 썰렁한 주제이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일자리를 잃고, 힘들게 시작한 사업이 파산 위기에 처하고, 대학 졸업 몇 년째 취직을 못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의 해결책이 고도 성장 뿐이라면, 747 비행기 아니라 B29 폭격기라도 출격시켜 원자폭탄이라도 쓰겠다는 정치인이 절대적 지지를 얻게 마련이다.

747 아니라 B29 폭격기라도 좋다? 

   
 ▲ 이명박 전 서울 시장 (사진=연합뉴스)
 

그래서 1932년 얌전한 신사였던 후버 대통령이 사자같은 루즈벨트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도 모두 길거리에 넘쳐나는 실업자들과 사업 파산자들의 거친 함성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약다. 학자들 관료들이 제아무리 현란한 논리와 수치를 써서 푸닥거리를 한다고 해도 경제 성장률 그 자체를 신성시할만큼 어리석은 존재들이 아니다.

이들이 다같이 무릎꿇고 ‘멈보점보’를 함께 외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통해 실업과 파산으로 인한 자신들의 생활상의 고통이 덜어질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미국인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2007년의 최소한 80%의 한국인들에게도 이 실업과 파산으로 인한 고통은 참기 힘든 지경으로 불어나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누구 말처럼 이 날이야말로 보통 항상 정치적으로 무시당하고 억압당하기 마련인 이 아래 80% 의 사람들이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단 하루”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을 위해 후보로 뛰어든 이들은 그 80%의 마음을 얻어볼 요량으로 우파, 좌파,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너나없이 경제 성장을 어떻게 이룩하겠다는 약속을 자신들의 핵심 공약으로 내놓게 된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 힘든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지금 꺼낼 생각은 없다. 지금 따져볼 문제는 과연 지금 그 80%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 경제 성장률이 낮아서인가이다. 그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말로 회자되어온 ‘양극화, 청년 실업, 40대 조기퇴직, 중소기업 파산,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 등의 꼭지들을 음미해보라.

경제성장이 당면의 문제들을 풀어주지 못한다

이러한 것들의 원인을 “성장률이 낮고 자본 축적이 부족하여 투자가 위축되어 경제 전반이 침체”한 탓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지난 몇 년간의 성장률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러한 ‘재앙’을 낳을만큼 끔찍했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민 경제’의 구조 붕괴에 있다. 산업과 산업 간의 연관 관계가 끊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위치와 세계 경제의 흐름을 고려하여 중장기적인 수익의 전망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국민적 차원에서의 산업 구조의 설계를 맡아야 할 국가 기구는 ‘위대한 시장 메카니즘의 자기 달성’을 명분으로 하여 사실상 산업 정책을 폐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중장기적 수익 구조의 전망이 불투명해진 이상 기업들도 은행들도 오로지 금융 포지션의 강화만을 행동원리로 삼아 과감한 설비투자와 이를 위한 대부가 위축된 상태이며, 이로 인해 노동 시장에서의 신규 고용 창출도 함께 멈추게 되었고, 유동성이 남아도는 몇 개의 성공적인 대기업들은 외국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소유 경영권 강화를 위해 자사주 매입 소각 등에 골몰하고 있다.

경제 전체가 이렇게 분절화 파편화되어 버린 상태이니 어느 한쪽에서 수익이 난다고 해도 이것이 전체 경제에 파급효과를 내기보다는 개별 산업, 개별 기업에 고여 있다가 개방성이 증가한 자본 시장을 통해 활동하는 국내외의 투자 기관에게 ‘쪽’ 발려나가기도 한다.

국민경제라는 ‘몸’이 다 망가졌다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항상 위험한 짓이지만 인체에 비유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전체의 유기체적 연관성이 사라지고 근골격계, 호흡 순환계, 신경 체계 나아가 경맥 체계가 모두 따로따로 놀고 있는 데에다가 그나마 주요 혈관도 12정경(正經)도 또 뼈들까지 마디마디 끊어져 있는 상태라고 하겠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는 피와 기와 영양분이 과잉으로 넘쳐 몸밖으로 뿜어나오기도 하는데 다른 부분에서는 영양실조와 산소 부족으로 세포들이 꺼멓게 죽어간다. 주요 골간에 해당하는 것들이 그렇게 분절화되자 특히 그 말단인 모세 혈관이나 낙맥(絡脈)에 해당하는 동네 골목의 가게 아저씨들, 미용실 아주머니들은 손님 구경 일자리 구경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렇게 망가진 몸 상태에다가 ‘경기 부양’이니 ‘성장률 제고’니 하는 이름으로 과다한 유동성의 공급이 간헐적으로 벌어지지만, 이는 몸전체로 퍼지지 않고 이미 영양과 산소와 기가 지나치게 실(實 )해 있는 부분으로 한없이 고여갈 뿐이다. 이렇게 허실한열의 조화가 깨어지고 그 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이 목하 진행 중인 양극화이다.

이러한 사태 진전이 ‘시장 경제 메카니즘의 강화를 통한 선진 경제 구축’이라는 구호 아래 10년 전 외환 위기 이후 조직적 체계적으로 벌어진 결과임을 주목해야 한다. 그 당시 급속한 금융 개방과 정리 해고 등 단호하고도 근원적인 시장 자유화만이 살길이며, 그를 통해 안정과 풍요가 함께 달성되는 선진 시장 경제가 도래할 것이라고 외치던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는가.

아시아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IMF 식의 시장 자유화 처방을 급격히 또 충실히 따른 모범생으로 찬양받는 한국이건만 어째서 그러한 안정과 풍요의 낙원은 아직도 요원한 것일까.

이명박 후보 목표 달성은 가능하다

필자는 이명박 후보가 내건 목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먼저 경제 성장률이란 앞에서 말한 대로 화폐 거래의 총량을 늘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미 우리는 5% 가량의 성장을 해오고 있으니 이것을 2% 포인트 늘리는 것이 불가능할 리 없다.

몸의 조화가 파괴되어 각 부분의 허실(虛實)이 극히 불균형해졌다고 해서 몸 속의 혈액과 기의 총량이 줄어든 것도 아니며 또 늘어나지 못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혈액, 산소, 기가 총체적으로 부족한 80% 국민의 고통이 해결될 것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이러한 ‘고통 해결 불가’라는 문제점이 오히려 두 번째 과제인 “10년내 일인당 국민 소득 4만불 달성”이라는 목표를 더욱 쉽게 해줄 것 같다. 골치 아픈 복리 계산을 제쳐두고 주먹구구로 따져보아도 매년 7% 성장을 유지한다고 했을 때 인구가 연 1.5% 씩만 감소해주면 10년 후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2배가 될 것이다.

이 ‘747 성장 호르몬’은 이러한 인구 감소를 이루는 효과도 함께 낳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 성장 드라이브로 인해 도시 생활은 더욱 비싸고 바쁘고 힘들게 될 수 있고, 그렇다면 많은 부부들의 출산 의욕을 감퇴시켜 출산율 저하를 재촉할 것이다.

이명박의 747 성장호르몬, 인구감소 효과 가져올 것

또 이미 아이를 낳은 부부들 그리고 직장을 잡지 못한 젊은이들, 조기 퇴직 당한 중장년등은 대한민국을 탈출하는 이민 대열의 성장률도 올려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국의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자살의 원인 중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원인이 특히 노년층의 경우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어째서 ‘고성장 드라이브’만을 이야기하는가. 뼈도 혈관도 경락도 신경도 모두 끊어진 몸에 ‘747’이라는 초강력 성장 호르몬을 동맥에다 직통으로 펌프질한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아마도 방금 말한 인구 감소와 같은 불쾌한 블랙 유머가 현실에서 벌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지금 80%의 삶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너진 대한민국의 ‘국민 경제’를 재건하는 작업이다. 철심을 박아서라도 부러진 뼈를 다시 붙여야 하고, 바느질을 해서라도 끊어진 혈관들을 이어야 하며, 침과 뜸을 밤새 놓아서라도 죽어버린 경맥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지난 10년간 한국 경제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불능 상태에 빠뜨려버린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 경제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고해야만 한다.

경제 성장을 약속하는 이명박씨 등의 대선 후보군들의 충심과 역량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단지 상기시키고 싶은 바는 사람들이 정말로 관심을 갖는 것은 ‘경제 성장률’ 그 자체가 아니라, 실업과 파산 등으로 인한 실생활의 고통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2007년 한국 사회의 역사적 상황에서 그 고통의 원인과 처방은 초강력 성장 호르몬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구조와 균형을 회복하는 사려깊고 섬세한 작업이라는 점, 그리고 여기에서 지난 몇 년간 계속된 경제적 조건의 악화를 겪어온 이들에 대한 배려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지 않고서 7%니 8%니 하는 극약 처방을 내거는 것만 능사로 삼다가는 정치적인 타격이 반작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서민들의 상황으로 보건데 그 반작용의 크기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리라고 생각된다.

설령 당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러한 사람들의 분노의 반작용이 돌아올 경우 그 당선자의 정치적 안녕이라는 게 어떤 모습이 되는지는 지난 4년간 보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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