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에 맞서 삶을 일궈내는 사람들
    [책소개] 『곁을 만드는 사람』 (이은주 외/ 오월의봄)
        2023년 04월 08일 0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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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없는 노동자에서 연대를 향한 활동가로: 이주활동가가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

    한국 이주노동의 역사가 시작된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고, 올 2023년만 해도 11만 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한국사회의 시선은 좀처럼 ‘연민’과 ‘불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차별과 배제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현실과 한국사회의 이주민 정책에 존재하는 명백한 한계를 방증하는 한편,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극히 평면적이고 단편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자신만의 고유하고 구체적인 삶을 향유하는 주체로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고용허가제와 명동성당 투쟁이 20년을 넘어서는 지금, 이주노동자의 노동 현장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기획되었다. 10년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투쟁해온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베트남,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 스리랑카,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들을 만나 본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으며, 한국에 어떻게 들어와 어떤 시간을 보냈고, 현재 어떻게 일상을 꾸려가고 있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라는 보통명사를 뒤로하고 김나현, 섹 알 마문, 샤말 타파, 또뚜야, 차민다, 놀리(가명)라는 ‘고유명’을 통해 마주한 이주노동 이야기에는 폭력과 차별, 고통과 슬픔을 넘어서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감각이 넘실댔다. 그들은 우리에게 ‘투쟁’ ‘활동’ ‘연대’ ‘공존’ ‘정의’ ‘곁’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로 살며 저마다 품었던 꿈과 고민을 확장하며 예술가, 활동가 등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간 이들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가 아닌) ‘이주활동가’라는 명칭을 제안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을 ‘이주활동가’로 소개할 때 이주노동을 둘러싼 논의와 과제가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노동력’이 아닌 ‘사람’: 저당 잡힌 몸에 맞서는 언어의 힘

    한국에 도착한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은 대개 소통이 어렵다는 데서 비롯된다. 본국에서 건너올 때부터 송출업체나 브로커를 통하는 데다, 일터도 한국에 들어온 후에야 알음알음 결정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친구나 사촌 등 먼저 도착한 이들이 전해주는 정보에 의존한 채 벼락치기로 일을 익히고 일상생활은 반쯤 눈 감은 채 적응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부당한 일을 보거나 당해도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만한 언어가 없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시켜놓고 “너는 무단결근을 했다”(98쪽)라고 회사에서 보낸 문자를 정작 당사자는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거나, “맹장염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당장 수술을”(36쪽) 하지 못했던 일 등 그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이주 여성 한글교실 1기생이자 이주민과함께의 부설기관인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 센터장으로 활동하는 김나현은 이주노동자가 ‘언어’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자신이 한국에서 28년간 머물며 이주노동자로 일하다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그리고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동안 한국말로 직접 소통하기만 해도 현실이 달리 보일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주 여성 여섯 명이 찾아가 “우리 한글을 좀 배우자”(31쪽)고 의기투합한 것을 시작으로 국가별 한글교실을 추가 개설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후배들에게 직접 한국어를 가르치고 노동 상담까지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온 또뚜야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지 8년이 다 되어서야 한글교실에 찾아갔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또뚜야 씨’라고 불렸고, 존중받는 그 느낌이 좋아 계속 찾다가, 회사의 여러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주는 쪽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국어 다리를 놓아주며 상담, 통역하는 일은 상대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의미가 컸다. “문제를 같이 해결하고 나면 안에서 에너지가 생”기며 “눈이 반짝반짝”해지고, 행복하다고 느”(183쪽)낀다는 또뚜야는 언어와 언어를 연결하는 소통 창구 역할을 지금도 쉼 없이 이어가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노조신청서를 내밀며: 이주노동에 빛을 만드는 사람들

    책 제목인 ‘곁을 만드는 사람’은 이 책에 실린 구술자들을 포함해 이주노동 활동가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개인적인 목표와 꿈을 안고 한국에 건너온 이들이 타국에서 이주민의 곁에 머무는 활동가가 된 과정과 그 활동 방식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자리한다.

    마문은 캠코더를 들고 이주노동 현장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으며,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굿바이>, <기다림> 등 12편의 작품을 세상에 발표한 독립영화 감독이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대한 환상을 안고 왔지만 마석 가구단지에서 미등록노동자로 살기도 했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퇴직금도 못 받고 쫓겨날 뻔하기도 했으며,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에서 곡기를 끊으며 투쟁했을 정도로 강성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주노동의 한복판에 있던 그는 AMC팩토리에서 올린 연극에 우연히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이제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열악한 주거 실태, 폭력 단속으로 부상당한 노동자의 모습, 폭력적인 고용관계 등을 알리는 데 앞장선다. 그의 예술 활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폭로를 넘어 선주민과 이주민을 연결시키며 더 나은 이주노동을 향한 길을 만드는 중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성서공단노조에 소속되어 노동자를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차민다 활동가도 있다. 스리랑카에 살 때는 정작 노조나 투쟁 활동을 거의 본 적 없다는 그는 “노조 조끼를 입으면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보호받는다는 느낌”(235쪽)이 든다고 한다. 자신이 경험한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지만 노조 가입을 강요하기보다는 본연의 의지로 가입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을 택한다. 그럼에도 책장 가장 앞에는 나라별로 정리한 “노조 신청서만 묶어놓은 서류철”(248쪽)을 가장 맨 앞에 꽂았다고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을 드러낸다. “돌아보면 정말 행복했어요.”(234쪽)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는 노조의 역할을 알리면서 천천히 스미듯 이주노동자들에게 참여의 장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젊은 이주노동자를 위하여: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공동체

    이 책에 소개된 여섯 인터뷰이는 모두 한국보다 가난한 국가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제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몸을 해치면서도 쉽게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도, 야간조에 들어가 추가 근무를 해보려는 이유도,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감수하면서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도 하루라도 빨리 목표치를 모아 돌아가기 위함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이 품은 꿈과 계획을 악용한다는 데 있다. 현재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나라는 16개국”(232쪽)으로, 이들 국가에서 오는 노동자는 E-9(비전문취업), E7-4(특정 활동) 등과 같은 비자 종류에 따라 분류된다. 어떤 비자를 갖고 어떤 신분으로 한국에 머무는지가 이주노동에 있어 핵심인데, 기본적으로 이들을 향한 법과 정책이 ‘고무줄’ 같고 불합리함 투성이라 이주노동 활동이 무색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성과가 빈약하다. 그러는 중에도 한국을 찾는 이주노동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실정이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을 멈출 수도 없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 2기 지부장이자 명동성당 농성투쟁단의 대표를 맡기도 했던 샤말 타파는 출입국에 붙잡혀 여수 외국인보호소에 갇혔다가 본국인 네팔로 강제출국당한 경우다. 그는 한국에서 했던 활동을 바탕으로 네팔노총에 들어가 “10년 가까이 (네팔) 노동부를 압박하고 인력송출 회사와 싸”(143쪽)워 왔다. 궁극적으로는 네팔에서 더 이상 이주노동을 떠나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렵다면 네팔 정부가 이주노동을 떠나는 이들을 보호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주노동을 떠나는 국가와 서로 협력 관계를 맺는 일이 필요한데, “2010년 9월 민주노총과 네팔노총이 네팔 이주노동자 교육과 조직화를 위한 교류협정서를 체결”(142쪽)한 일은 그러한 결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필리핀에서 온 놀리는 ‘뉴에라’를 통해 한국 내 필리핀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을 시작으로 동료들과 함께 한국에 있는 크고 작은 필리핀 공동체들을 모아 카사마코(필리핀이주노동자단체연합)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카사마코는 현재 한국을 넘어 전 세계 필리핀 이주노동자 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필리핀 정부의 인권 탄압을 폭로하는 일이나 다른 나라의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세우는 일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이주노동자를 넘어 결혼 이주민과 이주민 자녀 등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까지 눈을 돌리면서 지금을 직시하고 앞날을 모색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며 확장되는 이 같은 연대가 젊은 이주노동자를 위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그들의 노력이 더 이상 허물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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