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
    By
        2007년 03월 19일 12:23 오전

    Print Friendly

    마치 전생과도 같이 느껴지는 까마득한 옛날, 1974년 1월 겨울, 나는 서울 송정동 뚝방, 그러니까 한양대학교 건너편 중랑천변에 있는, 지금은 사라진 판자촌의 ‘활빈교회’에 갔다. 야학 선생을 하러 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김진홍 목사를 처음 보았다. 대구 사투리에 못생긴 남자였지만 나는 그런 목사가 존재한다는 게 기뻤다.

    내가 읽은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공평하게 나누고 ‘내 것 네 것’이 없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내가 현실에서 만나는 기독교인들은 그런 문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듯했다. 그런데 김진홍 목사를 만난 것이다. “아, 내가 성경을 잘못 읽은 게 아니었구나”하고 안도했다.

    그 시절의 나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기독교 사회주의자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눈에는 기독교인들이 죄다 위선적이며 비기독교적이고 샤머니즘과 다를 바 없는 이기적 기복(祈福) 신앙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 아니 도대체 성경을 읽기나 한 건지 알 수가 없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래서 더욱 김진홍 목사가 반가웠다.

       
     
     

    기독교 사회주의를 찾아 강원도를 가다

    그 후 김진홍 목사와 인연이 없어서 그의 사상을 깊이 알지는 못한다. 다만 박형규 목사 같은 분이 ‘기독교 사회주의자’로서 자기를 규정한다는 이야기를 풍문에 들은 적이 있고 최근에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자기의 사상을 ‘기독교 사회주의’라고 설명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는 성공회 신부이니 영국식으로 이야기한 듯하다.

    무식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기독교 사회주의라니 웬 뜬금없는 소리인가,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대립되는 건데, 또 무슨 이상한 소리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친북 좌파의 속임수인가?”라는 반응을 보이는 걸 씁쓸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희미하다. 그만큼 기독교 사회주의는 전쟁 후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되었다.

    영국노동당의 사상적 기초는 기독교 사회주의였다. 영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세력과 영향력이 소수의 인텔리 서클을 넘어선 적이 없다. 반면에 영국노동당의 창당 주역들은 대부분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다. 최대의 마르크스주의 정당, 독일사민당조차 실은 밑바닥의 평당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기독교적 정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10여 년 전 통계로 스웨덴에는 기독교 신자가 모든 교파를 합해서 8%에 불과하고 영국에는 기독교 신자가 14%인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기독교 신자가 24%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스웨덴의 3배. 영국의 2배나 많은 신자를 가진 기독교 대국이다. 1785년부터 1886년까지 계속된 박해로 1만 명 이상 순교자를 낸 나라답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대국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독교 사회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니 어디엔가 기독교 사회주의는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 사회주의의 자취를 찾아 2007년 3월 6일, 강원도 태백시 산골의 예수원까지 찾아갔다. 그 길은 김소강과 박은철이, 그러니까 23년 전의 친구들이 동행했다.

    기독교 대국에 없는 ‘기독교 사회주의’

    군대를 갔다 오니 3년 후배를, 다시 감옥을 갔다 와서 복학을 하니 7년 후배를, 마지막으로 졸업을 하기 위해 잠시 학교를 다니면서 10년 후배들을 친구로 사귀었다. 김소강과 박은철은 바로 세 번째 복학하여 사귄 친구들, 이른바 386이지만 출세 못한 사람들, 23년 전 ‘혁명놀이를 하던 아이’들이었던 그들이 벌써 40대 중반이다.

    3월 5일부터 영월, 수만명 탄광 노동자의 애환과 노동운동의 역사를 뒤로 하고 카지노 강원 랜드가 휘황한 유혹의 불빛을 밝히고 있는 사북, 그리고 태백을 헤맨 끝에 3월 6일 오후 드디어 우리는 초교파 수도 공동체 ‘예수원’ 입구에 서있는 바위를 발견하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 레 25: 23 (中)”

    우리는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의 한 흐름도 발원하고 있음을 보았다. 사상의 산봉우리가 거기 있었다, 대천덕 신부. 그는 원래 미국인이다. 1918년 중국 산동성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성공회 신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1965년 예수원을 세우고 활동하다 2002년 타계했다.

    헨리 조지의 사상과 대천덕 신부, 그리고 토지공개념

    대천덕 신부는 전강수 교수에게 헨리 조지를 소개하고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을 만들도록 이끌었다. 성토모에는 김윤상 교수를 비롯하여 대구 지역에서 이미 헨리 조지를 연구하고 있던 학자들도 합류했다. 물론 학자들은 ’헨리 조지 학회‘로 알려진 연구 모임도 계속하고 있다. ’토지정의시민연대‘의 뿌리들이다.

    헨리 조지는 영국노동당 창당의 주역 케어 하디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 본인 자신도 1886년, 165개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연합노동당’의 후보로 뉴욕시장에 출마하여 공화당 후보를 제쳤으나 민주당 후보에 뒤져 2등을 하였다. 그리고 58세 되던 1897년에 다시 뉴욕 시장에 출마, 선거운동 도중에 사망하였다.

       
      ▲ 고 대천덕 신부의 추모비 앞에서
     

    그는 토지사유제를 비기독교적인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는 토지는 자연의 일부이며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개인은 토지를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그 임대료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지세는 노동이나 자본에 대한 세금과는 근본적으로, 윤리적으로 다르다.

    토지공개념의 원조인 그의 사상이 실현된다면 중국과 비슷한 체제, 토지공공임대제가 되겠지만, 이미 토지사유제가 고착되어 버린 나라들이라도 지대조세제를 실시하면(토지보유세를 늘리면) 토지불로소득을 없애고 사회정의와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미국의 세제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조지스트들은 생각한다.

    대천덕은 그의 저서 『신학과 사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토지와 경제 정의』등을 통해 헨리 조지 사상의 성경적인 근거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헨리 조지 사상은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비롯된다. 율법에 따르면 토지는 근본적으로 사유(私有)할 수 없고 그러므로 사고 팔 수도 없다, 다만 희년까지 임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식년이 7년마다 7번 거듭된 다음 해, 즉 50년 되는 해에는 부채를 탕감하고 채무 노예를 해방시키고 사고 판 토지를 되돌려 주는 것이 여호와의 율법이었다. 그 율법을 지키면 소농 체제가 지켜지고 소농 체제는 대외적으로도 강하였다. 그래서 구약 시대 선지자들은 희년을 지키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아테네가 마라톤 전쟁에서 대국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로마가 카르타고에게 이긴 것도 결국 자기의 재산과 처자식을 지키기 위해 싸운 자영농민들의 힘이었고 소농 체제의 힘이었다. 페르시아 군대는 100만이었지만 주로 노예들로 구성되었던 반면에 3만 명에 불과한 아테네 군은 모두 주인으로 이루어진 시민군이었다.

    희년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평등한 소농 체제는 무너지고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대지주의 세상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지주의 나라는 곧 도덕적 타락과 사치, 탐욕과 부패의 나라였으니 이러한 나라의 왕과 권력자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저주를 퍼붓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 사람들이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이상하다.

    선지자들이 권력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말하자면 토지개혁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바로 그걸 했고 그 결과 전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부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벌써 토지개혁을 한 지 60년이니 다시 희년을 선포할 때가 지난 것이다. 과연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과 함께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동시에 도덕적 타락도 심해지고 있다.

    그나마 근간에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고 있는 것은 바로 토지공개념의 부분적 적용이고 너무나 당연한 조치이다. 그런데 “부동산 보유세를 많이 내는 것이 기독교적이다.”라고 설교하는 목사가 없는 한국 기독교가 이상하다. 조선일보의 세금폭탄론에 동조하는 한국 기독교가 이상하다. 아니면 내가 성경을 잘못 읽은 걸까?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사도행전 4:32) 예수께서 정치권력에 호소하고 법률로서 강제하던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는 새로운 방식의 희년을 선포하신 결과였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