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서른, 전쟁난다고 한 게 벌써 몇번?
By
    2007년 03월 19일 12:06 오전

Print Friendly

   
  ▲ 신민영씨
 

한 5년 전 쯤 겨울, 나는 일본 삿포로에 있는 일본인 친구 집에서 놀고 있었다. 결코 길지 않은 열흘쯤 되는 체류기간 동안 부지런히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스키도 타고, 남녀혼탕(-_-;)이라는데도 가보고 싶었으나… 그게 맘대로 되지가 않았다.

왜냐? 삿포로는 5월까지 눈이 올 정도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인데다, 특히 내가 머물던 2월은 제일 눈이 많이 오는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눈이 한 번 제대로 오기 시작하면 시야가 1m도 안되고 온통 사방이 하얗게 보이는데, 그러면 밖에 나갈 수도 없고 특히 밤이 되면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체류기간 중 상당부분을 집에서 TV를 보며 보냈어야 했다.

TV 프로그램 중에 가장 재밌났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일본판 ‘일밤’이었다. 일요일 저녁7시에 공중파에서 하는 것도 똑같고, 일본인 친구가 넋을 놓고 낄낄대고 있는 걸 보니 제법 인기 프로 인게 분명한데… 문제는 이게 한국에서 같은 시간에 하는 프로랑 느낌이 똑 같다는 거!

삿뽀로의 추억과 전쟁의 기억

일본어가 안 되니 당연히 내용은 한 개도 모르겠으나, 쇼 진행 순서나 자막 나오는 거, 글구 결정적으로 성우 목소리가 완전 똑같았다.-_-; 왜 거 있잖은가? 낭창한 목소리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외치는 거. 지금도 동일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여튼 이런 식으로 방바닥을 뒹굴던 어느 날이었다. 역시나 외출을 포기하고 느즈막히 일어나 TV를 켰는데. 허억 ㅠㅠ 갑자기 정규방송이 중단됐다. 그리고는,

TV속보!!!!!!
가 나왔다. 뭐지?

이윽고 컴컴한 밤을 배경으로 똥구멍이 활활 타고 있는 미사일이 날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北朝鮮 어쩌구저쩌구‘하고 써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전쟁이 났구나! 앞이 깜깜했다. 일본에 이대로 발이 묶이는 건가? 식구들은 무사한 건가? 아 이거 입대 하라고 나오면 어쩌지? 그럼 미국 편을 들어야 되나 북한 편을 들어야 되나? (그때만 해도 나름 애국청년이었다ㅠㅠ) 심회가 복잡했다. 뉴스를 설명해 줄 일본인 친구도 아침 일찍 출근을 해버려서 가슴만 답답했다.

아! 인터넷이 있었지! 친구의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복잡한 로그인 과정을 거쳐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한국어 패치를 까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네이버에 접속 성공! 아~ 조국의 안위는 어떻게 된 것인가.

결과는 다들 잘 알 듯이 전쟁은 아니었다 -_-; 그럼 뭔가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 언론이 정규방송까지 중단해 가면서 난리를 친 걸 텐데 그 이유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스포츠 기사 몇 개나 뒤적거리며 친구의 귀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했다” 귀가한 친구가 서툰 한국어로 해준 설명이었다.

나른한 민방위 훈련의 비현실성

시내버스에서 20분간 발이 묶여 있노라니 5년 전 추억이 문득 떠올랐다. 아니, 대망의 21세기가 밝은지도 7년이 지난 2007년인데도 멀쩡한 도로를 통제하고 민방위 훈련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ㅠㅠ 차라리 지하철을 탈것을 하며 후회했으나 하릴 없이 5년 전 추억으로 20분을 버스에서 보내야만 했다.

   
  ▲ 민방위 시범훈련 모습. (사진=소방 방재청)  
 

근데, 더 재밌는 건 길을 막아놓고 훈련이랍시고 하긴 하는데 막는 사람이나 길에 서있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표정이 나른해 보였다.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래야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을 보고 있노라니 5년 전의 일본에서의 호들갑과 겹쳐져 더욱 훈련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밖에서 나른하게 서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나 역시도 나른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게 94년 핵위기, 98년 전쟁위기 등등 미국이 한반도를 불구덩이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단 얘기였고,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자료도 읽어보고 있지만, 가슴 한구석엔 ‘에이~설마~’하는 마음이 앞선다.

내 나이 올해로 서른인데, 전쟁난다고 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1. 86년 구토사건

86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주산학원에서 돌아오던 길에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더니 주변사람들이 혼비백산에서 뛰는 게 아닌가? 거의 경기 수준이 돼서 안 그래도 허연 얼굴 새하얗게 질려 집에 들어왔더니 엄마가 온 장롱에서 통장이니 금반지니 하는 걸 꺼내서 보따리를 싸고 있었다.

그걸 보고 더욱 놀란 나는 결국 먹은 걸 다 토하고 며칠간 끙끙 앓았다. 알고보니 북한에서 한 조종사가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것을 남한 군 당국이 공습하는 걸로 알고 사이렌을 울린 것이었다.

2. 94년 핵위기 때

맨날 볼이나 차던 교련시간에 왠일인지 실내수업을 했다. 전쟁에 대비한 특별수업이라고 했는데, 뭐 맨날 나오는 심심한 내용의 수업이었다. 특별수업이 오히려 긴장감을 풀어주는 듯했다. ‘에이 뭐 별 일 아닌가 보다’했는데…

심심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교련 선생님이 “에… 여기까지가 공식수업 내용이고” 라며 서두를 띄우고는 “만약 전쟁이 나면 니들한테 전부 정상수업한다고 연락이 갈 거야”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거 사실이야. 전쟁 나도 정상수업 할거야. 근데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전부 교련수업이야.”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진짠가?’ 허나, 역시나 별 일 없었다.

쥐를 옴짝달싹 할 수 없게 가둬놓고 전기자극을 가하면 처음에는 격렬하게 통증을 느끼고 허겁지겁 도망갈 길을 찾아보려고 앞발에서 피가 나도록 철창도 긁고 뭐 그런다고 한다. 근데, 이걸 계속하면 나중에는 회피하기를 포기하고는 순응을 시작해서는 나중에는 전기자극을 가해도 통증에 둔감해지는데, 더욱 놀라운 건 지능까지 따라서 떨어진다고 한다. 이른바 좀비가 되는 거다.

국민을 좀비로 만드는 공포 자극

나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갇혀있는 쥐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3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으니 어디로 도망을 가겠는가? 전쟁난다고 하면 꼼짝없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폭탄비가 저절로 그쳐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난다고 얼마나 전기 자극을 가하니, 동대문구장이니, 효창운동장이니에 모여서 손에 피가 나도록 피켓도 들었다 놨다 하고, 목이 갈라지도록 반공웅변대회도 열고, 재정에 빵구가 나도록 사재기하는 등 격렬하게 반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이젠 반 포기상태가 되어버렸다. 옆에서 아무리 전쟁난다고 찔러봐도 현실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뭐 이런 현상이 비단 안보문제에만 국한되겠는가? 요즘엔 정치좀비도 많이 보인다. 나만해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주 한겨레21도 열심히 사보고, 인터넷에 정치관련 기사 올라오면 열심히 읽고 댓글도 열심히 달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대선이고 뭐고 시들하기만 하다. 근데 신기한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같은 증상을 호소한다는 점이다. 다들 나이를 먹고, 먹고 살기가 바빠서 일 수도 있겠지만 큰 이유는 ‘전기자극’에 지쳐서 정치적 좀비가 돼 버린 게 아닐까 한다.

‘한나라 집권’ 위협 약발 다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던 지난 대선, 탄핵 바람이 불었던 지난 총선. 참 강한 자극이 많았다. “정몽준이 대선 전날 떨어져 나갔다. 이러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는다!” 충분히 강렬한 자극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손에 피가 나도록 문자도 돌리고, 스키장 가다 돌아오는 등 투표 정말 열심히 했다.

지난 총선은 또 어땠나? “탄핵주역, 한나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 수 없다!” 단상에서 뜯겨져 내려오고, 무릎 꿇고 엉엉 울고. 아! 자극 강렬했다. 나 역시 데모도 하고, 글머리에 ‘투표합시다’도 다는 등 열렬히 반응했다.

근데 발버둥 치면 뭐하나, 정신 차려 보면 다시 철창 안 그 나물에 그 밥인데. 좀비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다. 아무리, 한나라당의 집권가능성을 경고하고 ‘한나라당 대 비한나라당’구도를 만들어야 된다는 둥 해도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위협’이란 자극도 이젠 약발이 다한 듯하니, 좀 신선한 자극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발에서 피가 나도록 뛰어줄지도?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