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바로크 에토스
    [L/A 칼럼]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고 대안 실천한 동력
        2023년 03월 31일 04: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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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민족성’ 운운하는 담론이 많았다. 아니 최근에도 “조선인과 여자는 북어 패듯이 때려야 한다.”는 제목의 글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어령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주장도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겉으로는 작은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 일본인이 내심으로는 확장적, 팽창적이라는 성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항상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는 강한 민족주의 성향 즉 에토스가 우리에게 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일부 극우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에토스는 로고스 즉 논리가 아니라 어떤 기질, 성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자칫하면 주관적, 직관적인 이야기로 건너가기 쉽다.

    바로크 에토스는 바로크적 기질, 성향을 가리킨다. 바로크 에토스를 깊이 있게 연구한 학자가 고 볼리바르 에체베리아다. 그는 에콰도르인이지만 멕시코로 귀화하여 멕시코 국립대학교(UNAM)의 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2010년 세상을 떠났다. 바로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17세기다. 맞다. 바로크를 분석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문학과 예술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느 사회의 대중의 에토스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볼리바르 에체바리아

    볼리바르가 연구한 방식은 후자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바로크 문학과 미술과 관련하여, 한 가지를 언급하려 한다. 1605년 작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1656년 작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 메디나스] 등이 바로크 예술의 ‘흑과 백’이 공존하는 애매성과 복합성을 드러낸다.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바로크 에토스와 관련하여 라틴아메리카의 17세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17세기는 이미 스페인이 쇠락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여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직접적 통제권이 상대적으로 16세기에 비해 약해졌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대중은 인종적, 문화적으로 애매성과 복합성을 가진다. 이를 전문용어로 ‘문화적 혼종성’이라 부르며 라틴아메리카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스티소로 불리는 유럽 백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인이라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17세기에 라틴아메리카 대중은 인종적으로 서로 경계 없이 어울려 산 경험이 있다. 즉, 원주민계와 아프리카계 혼혈의 가난한 대중이 백인 후손(크리오요)이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한 동네에서 같이 살았다. 그러므로 문화적 혼종성을 대표하는 인종은 메스티소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난한 크리오요 백인들도 지배계급 크리오요가 주로 거주하는 정부, 수도원, 교회, 대학들이 있는 중심부가 아니라 도시 주변부에서 다양한 혈통의 메스티소와 공간적으로 함께 거주했기 때문이다.

    17세기 중반 경에 식민지에는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중요한 도시들이 만들어졌다. 테노치티틀란의 폐허 위에 멕시코시티가 건설되었고 페루에서는 잉카제국의 건물의 토대 위에 쿠스코가 세워졌다(실제로 쿠스코에 가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본국의 권력 엘리트와 식민지 관료들의 통제를 넘어선 공간, 즉 중심부 거리와 광장, 시장, (수도원 신학교 등이 있는 리마와 멕시코시티의 대학 같은) 지식 생산의 중심을 벗어난 주변에서는 다른 것들이 싹트고 있었다. 거기에는 원주민, 메스티소, 흑인, 물라토 그리고 권력의 주변으로 밀려난 크리올이 함께 한 동네에서 거주했다

    함께 거주했다는 것은 문화적 함의를 강하게 가진다. 왜냐하면 원래 종교와 문화는 ‘공동체적 거주’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의 구성원들이 함께 거주하면서 원래의 뿌리 문화로부터 이질적으로 변화되면서 “새로운 문화로의 통합적 이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의 에토스가 옛것과 새로운 것이 애매하게 공존하는 바로크 에토스이다. 관념적으로 크리오요와 나머지 메스티소(혼혈인)들은 위계서열적으로 구분이 된다. 식민 초기에 순수 원주민은 거의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현실적으로 원주민도 단순하게 오직 식민지배 계급에 의해 폭력적 억압만의 대상은 아니었다.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공간적으로 가난한 크리오요와 메스티소가 함께하는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은 독특한 문화인 바로크 에토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7세기에 지식인, 엘리트가 아닌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원형적 주체가 ‘라틴아메리카’를 스페인과 ‘다른 무엇’으로 만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 그러나 19세기 초에 라틴아메리카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뒤에 수 십 년이 흐른 뒤인 19세기 후반에 우리가 요즘 알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서구 근대성(프랑스를 대표로 하는)과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근대국가 만들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근대성은 인종적 위계서열을 중시하므로 순수 백인 후손의 기득권계급이 중간계급의 메스티소만을 포용하고 그 아래의 원주민계와 아프리카계 혼혈대중은 체제에서 아예 배제한다. 약 200년 전의 17세기의 경험을 보기 좋게 배신(뒤통수친)한 것이고 이것이 약 백년 동안 지속된다. 그러나 드디어 이전의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1980년대에 대중 스스로에 의해 역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 계기는 신자유주의 도입이었다. 즉 신자유주의가 엘리트만을 위하고 가난한 대중을 배제하는 것에 우리 사회와 달리 라틴아메리카 대중은 과거 17세기의 경험을 되살려 예민하게 대응한 것이다.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고 대안을 실천했고, 그 동력이 바로크 에토스였다. 볼리바르는 서로 다른 네 개의 에토스를 분석하고 있다. 현실적, 낭만적, 고전적, 바로크 에토스를 말한다. 그 중에 핵심적 대립은 현실적/바로크 에토스이다. 우리 사회는 전자를 대표한다. 전자는 자본주의적 현실을 긍정하고 동일시하는 태도로서 가치평가와 생산력의 발전을 동일시하며 대안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후자는 자본주의적 현실과 거리를 두지만 수용하지는 않고 오히려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역설적으로 자본의 힘이 강한 것을 인식할 뿐이다. 그리하여 비공식적으로 또는 B급 혹은 C급으로 자본주의를 재발명 또는 재구성하면서 구체적인 부를 즐기다가 신중하게 전략적으로 반격할 기회를 엿본다.

    한편 낭만적 에토스는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사용가치를 중시하며 끝없이 혁명의 모험을 즐긴다. 그리고 고전적 에토스는 자본주의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고 거리를 두고 사물의 비극적 구성을 이해하며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자본주의 현실의 순간을 참아내며 살아간다. 매우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분류이다.

    볼리바르는 근대성이 14세기 르네상스에서 시작했고 16세기에 유럽에서 세계에 대한 보편적 문명의 기획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헤게모니를 가진 주류 근대성이 18세기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바로크 에토스가 출현한 17세기의 근대성을 ‘다른’ 근대성으로 인식한다. 17세기의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은 주어진 체제의 “경제-세계”의 근대성을 넘어 단순한 순응/저항의 이분법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17세기의 이런 흐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체가 바로 ‘하층 크리오요’이다. 이들은 백인 후손이지만 ‘대중’의 카테고리에 속했다. 그러므로 양면적이고 경계적인 정체성을 가진 주체였다. 결국 바로크 에토스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현실적 에토스와 공존하는 태도로서 자본주의 체제 보존과 불복종의 충동이 동시에 결합한다. 다시 말해, 파괴를 통한 사용가치의 보존을 추구한다. 즉,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형식을 견디면서 현재의 조건에서 불가능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행복을 위해(사용가치의 보존을 위해) 존재하는 장애를 지칠 줄 모르게 견디고 언젠가 뛰어넘으려고 한다.

    당연히 현재 우리 사회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한없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현재 사회경제적 위기와 생태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히 어떤 인사이트를 주는 것 같다. 그러므로 필자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을 직수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구조와 경험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알자는 것이다.

    필자소개
    성공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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