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 곳마다 꽃'인 섬진강과 은어
    By
        2007년 03월 17일 05:3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 섬진강은 꽃으로 봄의 시작을 알리고 꽃으로 봄을 완성하는 아름다운 강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봄이 한발 한발 내딪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마다에는 봄을 알리는 꽃망울들이 곧 터질듯 맺혀 있고, 여기저기서 들썩거리는 땅들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럴 때면 덩달아 엉덩이가 들썩거리며 마음이 싱숭생숭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이어지는 섬진강 길이 그곳이다.

    어떤 시인은 ‘눈 가는 곳마다 꽃이다. 땅을 내려다보면 광대살이꽃, 노란 꽃다지꽃, 민들레꽃, 냉이꽃, 봄맞이꽃, 현호색꽃이 눈이 시리게 피어 있고, 산을 보면 복숭아꽃, 산벚꽃이 이마에 닿을 듯 하얗게 피어 있고, 참나무, 때죽나무, 느티나무의 새 이파리들이 꽃보다도 더 예쁘게 피어난다. 산과 들이 그러하니 물빛 또한 꽃빛’으로 피어나는 곳이라 하였던가. 그의 말마따나 섬진강 변의 봄빛은 ‘환장하겠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다.

    특히, 3월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벚꽃과 함께 달리는 19번 국도는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과 어우러져 마치 꽃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더구나 계곡 깊숙이 들어앉은 화엄사, 쌍계사 등 천년 고찰이 있고 그 산사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길이 있으니 어찌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을까?

    그러나 이곳은 이렇게 숨막히게 아름다운 구경거리와 어울려 가는 길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침을 넘기며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먹거리가 가득 채워져 있기에 더욱 아름답다. ^^

    금빛모래와 은빛은어

    그 가운데 뭐니뭐니 해도 가장 입맛을 당기는 것은 은어이다. 하지만 그 맛부터 먼저 논하는 것은 은어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그에 앞서 섬진강 주변과는 물론 강변의 금빛모래와 함께 완벽한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는 은빛은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해야 한다.

    은어는 연어처럼 모천회귀하는 1년생 민물고기다. 은어는 은빛으로 흐르는 몸통과 금빛 지느러미가 마치 버들잎을 강물에 띄운듯한 고운 자태를 가지고 있다. 보통 은어는 9월 모래톱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는데, 알에서 부화된 새끼 은어들은 강물이 차가워지는 겨울이 다가오면 바다로 내려갔다가 강물과 바닷물 수온이 엇비슷해지는 4월쯤 강을 거슬러 회귀하게 된다.

    이 은어 떼가 회귀하는 모습을 본 시인은 달빛 아래 가슴 터지도록 사랑을 나누는 남녀마냥 설레는 풍경으로 그리고 있다.

    복사꽃이거나 아그배꽃이거나
    새보얀 꽃그늘 강물에 어룽대던가
    섬진강 상류 압록물에
    달빛은 욜량욜량, 바람은 살랑살랑
    너와 난 마냥 설레였던가

    그랬던가, 어느 순간
    강물은 마냥 은빛으로 술렁이던가.
    그것이 물너울인 줄 알았더니
    그것은 은어 떼 돌아오는
    은어 떼 돌아와선 짝짓기하는
    그 번뜩이는 번뜩이는 뒤설렘이었다.

    <은어 떼 돌아올 때> 고재종

    하여튼 간에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음식으로서의 은어의 매력은 다른 고기가 지니지 못한 독특한 냄새에 있다. 생선 특유의 비릿내가 나지 않고, 상큼한 수박냄새가 난다.

       
      ▲ 섬진강 은어구이
     

    이러한 까닭에 중국에서는 향어(香魚). 영어로는 비리지 않다는 뜻으로 스위트피쉬(Sweet Fish)라 부른다. 이것이 은어를 회로 먹든, 굽거나 익혀 먹든 간에 특별한 양념이 없어도 그 은은한 맛이 유지되는 비결인 것이다.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소금구이다. 또한 숯불에 약 20분간 구어 양념장에 발라 먹는 맛도 일미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주체할 수 없는 은어에 맛에 조선시대 한 선비는 "죽는 것은 괜찮은데 상놈의 입에 들어갈까 슬프다"라는 유언을 하였다 하니, 맛있는 것을 독차지 하려는 있는 가진 자의 끝없는 탐욕을 보는 것 같아 괜히 씁쓸해진다.

    인간탐욕에 되돌아오지 못하는 은어

    그러나 조선 선비의 탐욕은 차라리 양반이다. 본래 은어는 보통 1급수를 유지하는 강이라면 어디서든 떼지어 사는 흔한 물고기였다. 그러나 환경파괴에 의한 수질악화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점차 그 수가 섬진강에서 줄고 있다.

    은어잡이를 하던 주민에 의하면 예전에는 하루에 120~130마리 잡았다고 하나, 요즘은 그렇게 잡지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주변 음식점에서 맛 볼 수 있는 상당 부분의 은어의 양식에 의한 것이라 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각종 건설에 필요한 모래와 골재 채취를 위해 수년 동안 강은 파헤쳐지고, 섬진강댐, 주암댐이 생기며 수량이 줄어 수질이 악화된 까닭이다. 더구나 모래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구례구역 앞에 물막이 보가 쌓아 은어가 다닐 수 있는 어로를 막아 버렸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농업용수도 아니라, 모래 채취 긁어모으고, 그 모래가 쌓이라고 보를 만들어 버린 인간의 탐욕의 끝은 과연 어디가 끝일까?

    하여튼 이렇게 섬진강에 생태가 위태해지면서 몇 년 전부터 골재 채취를 금지하고 새로운 ‘어도’를 설치한다고 하니 한번 두고 볼 일이다. 하루라도 빨리 금빛모래로 빛나는 섬진강에서 고기를 잡고 놀던 어릴 적 추억을 가진 이들에게 은빛 은어가 떼지어 올라왔으면 좋겠다.

    문학과 맛의 고향 섬진강

    이렇게 아름다운 고장인 까닭일까? 섬진강은 걸출한 문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을 비롯해서 조태일 등 당대에 걸출한 문인들의 고향이 이곳이다. 또한 작가 박경리씨의 작품 「토지」로 유명해진 평사리 마을은 이 섬진강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섬진나루와 화개장터가 이어지며,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 사는 이야기가, 사람과 문학이 함께 어울려 사는 이곳은 섬진강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하동 출신 문학인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평사리문학관은 섬진강 찾는 사람들에게 섬진강에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은어와 함께 이곳의 유명한 맛도인 참게탕도 그 하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