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쩌다 ‘롯빠’가 됐나
    [프라우다의 야구 야그] 도깨비 같은, 길고양이 같은 팀
        2012년 05월 02일 05: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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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어쩌다 야구 얘기가 나오게 되면 “응원하는 팀이 있냐?”고 묻는다. 물론 나에게도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야구 안 봐요.”였는데 몇 해 전부터는 달라졌다, “자이언츠요(편의상 ‘롯데’라 하긴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반문이 돌아온다, “어, 왜?”

    머리 벗겨진 사람 시구 보고 야구 관심 사라져

    꽤 당연한 의문이다. 나와 롯데? 일반적인 야구 응원팀 결정의 흐름도로는 설명이 안 되는 조합이다.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심지어는 군대도 집에서 다녔다), 서울 출신에 부산이나 경남에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일하거나 거래하는 입장도 아닌 내가 ‘꼴빠’라는 사실은 이 논리로는 나올 수 없는 답이다. 아마 나에게 반문을 던졌던 사람은 서울 연고팀 가운데 하나를 꼽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환호하는 롯데자이언츠 팬들.(사진=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사실 나도 궁금하다, 어쩌다 이 팀의 팬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베이스볼 키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국민학교 시절엔 야구중계도 열심히 듣고 신문도 열심히 읽었고(당시는 야구 기사라고 해봐야 경기 결과를 옮겨주는 정도였던 것 같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는 거의 야구 중계를 들으면서 무언가를 했었으니까.

    가끔 일요일엔 친구들과 아침도 굶은 채, 당시 살던 동네에서 한 시간쯤 버스를 타야 갈 수 있었던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아침 9시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돈이 없어서, 혹은 공 한 번 주워보고 싶어서) 외야에서 눈이 빠지게 구경하고는 집에 돌아와 그날의 유일한 식사를 마친 후 곯아떨어졌었으니까.

    아주 잠깐 동안은 야구부를 기웃거리기도 했었다, 사실 그건 글러브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유니폼을 입어보고 싶었고, 알루미늄 배트로 “깡” 소리를 내며 공을 쳐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별로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는 얼마 후 그만두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야구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버렸다. 어느 해 봄날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와 TV를 켜보니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단다. 경기 첫 날,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 대머리가 시구를 했고, 그날 이후 내가 좋아하던 고교야구 중계는 TV와 라디오에서 조금씩 자취를 감추었다.

    우연히 들른 목동야구장

    사춘기가 시작되던 나이여서 더 그랬나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끌고 가는 것 같은 이런 변화가 싫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슬금슬금 야구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1982년, 프로야구의 개막과 함께 나의 야구 암흑기는 시작되었고, 야구에 대한 관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학 시절에는 야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까.

    그로부터 26년 후 어느 늦여름 저녁, 안양천을 걷던 옛 베이스볼 키드는 무엇에 홀린 듯이 목동야구장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 7회를 넘긴 이후라 경기장엔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쪽은 원정팀 응원석. 마침 이기고 있어서였는지 다들 기쁘게 떠들고 노래 부르고 응원하고 있었다. 타자들마다 응원가가 있는 것도 신기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가본 야구장에서, 정말로

    오랜만에 즐겁고 신나는 분위기에 폭 빠지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야구는 원래 이렇게 신나는 것이었다. 내가 그걸 잊고 있었을 뿐.

    사실 그동안 나에겐 즐거운 일보다는 슬퍼하고 화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끝간 데 없이 막장으로 치닫는 주변 상황에 정신이 멍해지기도 했으며, 조금만 더 해주면 잘 마무리될 것 같던 일들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리는 때도 있었다. 그걸 뒤집어보겠다고 노력도 해보았고, 그래서 좌절한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때 마무리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게 긴 터널의 끝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라면 나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진 않았을 것일 테니. 그렇기 때문에 휴식 없는 행진을 계속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젠 나에게도 조금씩 숨통을 틔워주자. 그래도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야구를 다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자이언츠냐고?

    롯데, 8888577의 긴 암흑기

    8888577의 긴 암흑기를 거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4강 전력팀으로 변신한, 그리고 금년엔 (20년만의) 우승을 노리고 있는(꼴레발인 거 압니다, 용서를..) 전력을 보유한 팀이기 때문이다. 불멸의 투수 최동원과 타격 7관왕에 빛나는 이대호를 배출한 팀이다. 2011년엔 팀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홈런에서 1위를 기록한 불 뿜는 타선의 팀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실책, 병살, 불펜 투수들이 승리를 날린 경기가 가장 많은 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선발투수가 초반부터 난조를 보이며 무너지기라도 하는 날엔 희한하게 타자들도 공격을 잘 못하거나, 어이없는 운영으로 게임의 흐름을 스스로 끊어먹는 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다음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선발 전원 안타, 대량 득점으로 이기기도 하지만 바로 그 다음날엔 다시 타선이 침묵할 수도 있는,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는 도깨비 같은 팀이기 때문이다. ‘꼴데툰’의 작가 샤다라빠님의 이야기대로 ‘병신 같지만(죄송^^) 멋있는’ 경기를 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한 이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졌다고 할까. 어느 날 마당으로 쪼르르 들어와 한구석을 덥석 차지하고 먹이를 달라고 뻔뻔하게 아우성치는, 가끔씩 말썽을 부려 마음 상하게 하지만 이젠 없으면 못 사는 우리 동네 길고양이 같은 팀이랄까.

    여전히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이언츠는 좀 더 깊숙이 나에게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뿐.

    필자소개
    프라우다
    뒤늦게 야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동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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