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나먼 여정과 마음 깊은 곳의 숙제와"
        2007년 03월 16일 12: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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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에 ‘아테네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고 있는 하영식씨가 지난 3월 5일 불쑥 레디앙 사무실을 찾았다. 아주 오래 된, 매우 큰 배낭을 짊어진 그는, 11,000km가 넘는 긴 여정을 막 마친 상태였다. 그는 그리스에서부터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그 후 중국을 거쳐 배를 타고 1년 반 만에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한 달에 걸친 긴 여정이었다.

    <레디앙>은 열차를 네번 갈아타며 시베리아를 횡단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하영식씨는 11년 전인 96년도에 처음으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2004년도에는 1월과 10월 두 번, 올 초 네 번째로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이번에는 시베리아의 끝인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을 거쳐 대련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입항했다.

    동남아, 일본, 유럽 등 비교적 손쉬운(?) 해외여행을 다년 본 여행 매니아들이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주목하는 코스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시간변경선을 일곱 번이나 넘는 이 여정에서 여행객들은,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자작나무숲, 그리고 러시아 승객과 보드카 한 잔을 기울이는 낭만을 기대한다.

       
      ▲ 레디앙의 <아테네에서 온 편지>의 필자 하영식씨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고국을 찾았다.
     

    시베리아 횡단 이번에 네번째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번 할까 말까 한 이 머나먼 여행길을 그가 벌써 네번이나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생이 되고 힘들더라도 긴 여행을 좋아한다. 러시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경로를 몇 번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사실을 듣고 보았다. 그 나라들이 변화하는 모습에서 내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고민, 숙제를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많이 변했는데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가도 생각한다.

    마음의 평화. 그냥 가만히 있어도 평화스러워진다. 다른 이들이 잠들어 있을 때 혼자 깨어 있으면 모든 게 정지된 듯 조용하게 기차 가는 소리만 들리고, 바깥으로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별이 보인다. 하늘을 바라본다."

    열차 안에서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다 하더라도 일주일 내내 열차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여행자로서는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그는 몸도 쉬어야 했고 겨울 러시아를 두 발로 디뎌야 하기도 했다. 그가 열차를 타며 방문했던 러시아의 여러 지역 중 특별히 모스크바 근교에 위치한 파스테르나크의 무덤을 소개했다.

    "<닥터 지바고>의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무덤에 간 적이 있다. 그의 무덤은 모스크바에서 30km 떨어진 페리벨키노에 있다. 파스테르나크나 닥터 지바고나 러시아 혁명을 지지했지만 혁명 이후에는 억압을 받은 사람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들이 살았던 삶이 러시아 민중들의 삶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박해 받은 시인들이다. 그렇게 살다 죽었으니 한 번 찾아가 보는 게 도리 아닌가."

    하영식씨는 러시아를 가로지르면서 그 나라 민중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90년 전 혁명을 이루었던 러시아 사람들은 지금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러시아 개혁에 러시아 혁명 내용을 계승하면 좋을텐데…"

    "러시아 혁명 얘기만 들었으니 환상과 동경을 품은 채 96년도에 처음 러시아에 가보았다. 2월초니까 그랬겠지만, 날씨가 춥고 먹을 게 많지 않았다. 깜짝 놀랐다. 상점에 가니 선반이 많이 비어 있었다. 춥고 배고픈 기억이 많이 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으로 일을 하러 갔다.

    그 후에는 자본주의화가 많이 진행되었다. 서울 시내같이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빈부격차도 엄청나고 물가도 높다. 임금이 낮은 반면 물가는 높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까 싶다. 지금보다 나은 개혁을 위해서 그 러시아 혁명의 내용을 계승을 하면 좋은데 그걸 완전히 부정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자본주의가 상당히 진행된 러시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인생의 길이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여행길에 그들의 삶을 탐구하기란 불가하다. 그래도 하영식씨는 그들이 살아가는 단면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가 만난 러시아 사람들은 인정이 있었다. 그가 불편하고 힘들어 보이면 도와주려고 했다. 그럼에도 그들 안에서 한국 사람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경험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행 표를 사는 게 그렇게 힘들었다. 사람들이 줄을 죽 서고 있는데도 표를 파는 역무원들이 표를 팔다가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떠버린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항의를 하면 화를 내고 고함도 지른다. 좋은 역무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가 아닌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표 사는 걸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에서야 표를 살 수 있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에서도 그와 같은 일을 겪었다. 있는 사람들은 자기 차를 타면 되지만 없는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야 하니 그런 수모를 당해야 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어려운 삶에 훈련이 잘 되었는지 큰 불평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돈이 없으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인들의 시간관과 인내심

       
     

    그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열차로 사흘이나 걸리는 모스크바까지 갔다가 돌아가는 여인,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긴 여정 위에 있는 여인과의 만남에서 러시아 사람들의 시간감, 무엇보다 인내를 또 다시 발견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참을성이 강하다. 그렇게 훈련을 받은 것 같다. 표 한 장을 사려고 지하철역에서 15분씩 기다린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 우리나라에 와서 비교해 보면 러시아 사람들은 고생을 많이 한다. 삶 자체가 힘들다. 부자면 상관없겠지만. 예전에는 빵을 사기 위해 서너 시간씩 줄을 섰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다.”

    하영식씨는 변화하는 러시아에서 보고 들은 삶의 단면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라트비아에서부터 함께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여행한 교수 얘기부터 꺼냈다. 그 교수는 하영식씨를 집으로 초대했다.

    “부모들이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교수를 불러 과외를 시키고, 대학에 입학을 시켜달라며 뇌물을 주는 일들이 많다고 들었다. 예전에는 무상교육이 실시되어서 교육비가 거의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자본주의가 되어 사교육비도 많이 들고 대학갈 때 돈도 내야한다.

    교육문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에서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 교수에게도 두 자녀가 있는데 집을 팔아서라도 대학을 보내고자 했다.”

    정말 이 정도라면 팔 집도 없는 사람들은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도 못할 것이다. 라트비아까지 와인을 사러 다녀올 만큼의 여유가 있는 러시아 교수에게조차도 러시아의 변화는 가혹하게 느껴진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외면받는 러시아 지식인들

    러시아의 인텔리들은 자기 나라의 어두운 구석을 그에게 들추었다. 하영식씨는 모스크바에서 만난 러시아 과학원 사람의 말을 전했다.

    “70~80년대는 참 살기가 쉬웠다. 물가도 싸고 삶의 질도 높았다. 지금은 월급은 낮고 물가는 높기 때문에 사는 게 힘들다. 생산하는 것도 없이 돈만 쓴다며 푸틴 정부는 인텔리 층들에 대한 지원을 끊으려 한다. 인텔리 층들은 푸틴을 지지하지 않고 러시아 공산당을 여전히 지지한다.”

    또 다른 인텔리와의 만남을 이어서 들려주었다.

    “모스크바에서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가는 젊은 부부였는데,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과학연구단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과학자는 시베리아로 다 보내 버린단다. 거기서 자기들끼리 떠들어봐야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까. 농담이겠지만 숨은 의미가 있다.”

    하영식씨는 인텔리들이 러시아 정부와 같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외면 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텔리층은 다수를 차지하는 게 아니다. 소수이지만 목소리는 크다. 사회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인텔리층은 정치권력에 반대 의견을 표출하고,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국가권력 입장에서는 걸림돌이 된다.”

    러시아에서 열차를 타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는 러시아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인텔리들만 있는 게 아니다. 불확실한 고생길이 분명하지만 러시아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러시아에 일을 하러 오는 노동자들이다. 시베리아에는 건축노동자들이 부족해 주변의 많은 나라들로부터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다.

       
     

    러시아보다 더 힘든 나라 사람들의 잍터,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열차를 타고 가는데, 스무 명 정도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을 만났다. 나이가 든 사람들도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 20대 젊은 청년들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일자리가 없고, 있어도 임금이 낮다. 시베리아에서 일을 하면 100~200불씩 받는다.

    계약서 같은 게 있느냐고 했더니 이르쿠츠크에 먼저 일하러 간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스무 명이 필요하다니까 간단다. 사실은 얼마를 받게 될지도 확실하지 않단다. 그 중에는 타지키스탄에서 온 노동자도 있었다.

    러시아 경제가 좀 호전되었는지, 여전히 가난한 과거 소비에트연방 소속 나라들에서 시베리아로 일을 하러 가는 노동자들이 많다.”

    옛 소련의 나라들 노동자들만 시베리아로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니다. 적지 않은 북한 노동자들도 돈을 벌기 위해 시베리아로 간다.

    “북한 사람 세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울란우데에서 우수리스크까지 여행을 했다. 그 사람들은 울란우데에서 집짓는 일을 하던 노동자들이다. 평양출신에다가 대학출신이었다. 자기들 스스로 당성이 강하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당성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같은 동포, 한민족이라는 걸, 같이 한반도에 산다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같은 말 사용하니까 불편함 없이 말귀를 알아듣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으로써.”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러시아 여행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꽤나 운이 좋은 축이다. 그런데 같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만남임에 분명하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 지도
     

    "김정일이 나한테 쌀 한톨 준거 있소?"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받는 액수를 듣고 이들도 100~200불 받지 않을까 가정하는데 물어도 대답을 안 하더라. 오히려 한국에서는 얼마 받는지 묻더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버는 돈이 1,000불씩은 되고 어떤 사람들은 1,500불씩 받는다고 했더니 놀라워했다.

    북한 사람들은 시베리아에 와서 노가다를 해야 되고, 남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받고 일을 하고, 왜 이래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남한에서 일하면 100만 원 받을 수 있을 텐데 여기 와서 10만원 받고 15만원 받고.

    두 사람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한 사람이 그러더라. 자기는 한 4년 있었는데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고.”

    그는 시베리아의 추운 벌판에서 몸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일하는 북한 동포와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북한 사람들을 남한에 와서 일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노동허가증을 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외국 사람들보다는 같은 민족이 좋지 않겠는가. 북한 사람들을 싼 임금에 체코 공장에도 보낸다는데, 왜 임금이 높은 한국에서 일을 하게 하지 않는가.”

    저임금에 추운 날씨보다, 비교적 높은 임금에 따뜻한 남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서 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줄여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하영식씨의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암벽에 부딪혔다.

    “그들이 ‘장군님’이라고 말해 김일성을 얘기하는 줄 알았더니 김정일을 ‘장군님’ 그러더라. 내 ‘김정일’ 이러니까 굉장히 못마땅해 하더라. 나도 ‘장군님’이라고 해야 된다는 듯 강요하는 분위기가 되더라.

    기가 차서 했던 말이, ‘김정일이 나한테 쌀 한 톨을 줬소? 내가 왜 장군님이라 해야 되오?’ 그러니까 그들이 하는 얘기가 ‘그런 말 하려면 우리한테 오지 마시오. 장군님이 없으면 우린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하더라.

    이렇게 정치적인 문제로 그 자리에서 갈라졌다. 처음에는 한 민족이라고 함께 앉아서는 같은 말도 쓰고 음식도 나누다가 정치적인 문제로 들어오니까 갈려졌다. 경제적인 문제야 같이 살다보면 어떻게 되겠지만 이런 문제가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로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기본적인 토대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영식씨는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이상, 그가 생각해야 할 거리들은 늘어만 갔다. 이 여정으로 그는 마음 속의 ‘숙제’를 또 품게 되었다.

    “러시아 사람들 만났을 때는 혁명했던 러시아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하다가,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같은 민족인데 저 사람들은 왜 저기서 고생하고 살아야 되고, 이 상태가 언제까지 갈 것이고 언제 해결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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