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퇴하는 기후정치와
    새로운 민주주의-하기의 절실함
    [에정칼럼] 기후 정치의 실패와 ‘기후 시민’의 발명
        2023년 03월 24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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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보고서 요약본의 발표는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에 의하여 수립해야 하는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전략’ 초안의 발표보다 하루 앞섰다.

    여기에 ‘공교롭게도’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이미 IPCC의 제6차 보고서 합의안은 현지시간으로 19일에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한국 대표단을 통해서 윤석열 정부도 대강의 방향과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문제는 하루 전날에 나온 IPCC 보고서의 결론을 거의 무시한 형태로 윤석열 정부의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전략’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제6차 평가주기(2015년~2023년) 동안 발행된 3개의 특별보고서와 3개의 워킹그룹에서 작성한 평가보고서를 종합하여 제출한 것으로 사실상 2030년까지의 행동지침에 근거되는 과학적 전망을 망라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2050년까지 지구온도를 1.5도씨 인상 범위에서 완화시킨다고 할 때 2030년 정도에 다다르는 경로의 배출량과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까지 발표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전부 달성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배출량 사이의 격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전 세계국가들이 2030년까지 감축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전부 다 지키더라도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그 결과 2040년에 1.5도씨 지구온도 상승이 있을 것이라는 암울한 결과가 제시되었다.

    이런 결과가 언론 지상에 소개되었을 때 등장한 정부의 계획은 실망감을 넘어서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에너지 전환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원전 확대 및 재생에너지와의 조화로운 활용’라는 전략은(운영허가가 완료된 원전 10기를 계속 운영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둘째 치더라도 그렇게 해서 달성하겠다는 목표치가 고작 2021년에 발표한 국가감축목표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 정부는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기조 하에서 감축목표를 수립한 것이라면 원전까지 하겠다는 정부가 내세운 목표치치곤 염치가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문제인 것은 부문별 배출목표의 조정인데, 다른 부문은 기존 목표를 유지한 채 산업 부분에서 감축목표만 줄였다. 산업 부문에서 감축 목표를 줄였다는 것은 그만큼 산업 전환을 더디게 하겠다는 뜻이 된다. 전체 부문별로 2018년 기준의 감축 비율을 따져보면, 배출량 규모가 가장 작은 폐기물 부문이 46.8% 감축하는 반면 가장 배출량 규모가 큰 산업 부문은 11.4%만 감축하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은 어쨌든 기존의 감축목표(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를 유지했으니 된 것이 아니냐 하는 건데, 이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

    또 다시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가 국가전략을 발표한 전날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2021년 온실가스 감축 이행실적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기간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실적에 대한 평가를 담았는데 기준은 2021년에 발표된 국가감축목표의 상향분이 아니라 2018년에 발표된 기존 목표로 설정되었다(보고서에서는 이를 “2030 NDC 상향안에 따른 2021년 목표는 부재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이번 윤석열 정부 발표안에 대한 주요한 비판 역시 연도별 감축목표의 부재에 있다). 2021년 기준 총배출량은 2018년에 비하면 줄었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에 비해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에 수립한 2018년 기준 계획에 따른 2021년 감축량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아마 2021년의 상향된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낙제점이었을 것이다.

    기후 정치의 실패와 ‘기후 시민’의 발명

    과연 정부가 주도하는 온실가스 대응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의기구라고 하는 국회 역시 이런 상황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누군가는 그 일을 잘 할 정부와 국회를 구성하면 된다고 말할 테지만 시야를 넓혀 보아도 전세계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렇게 보면 기후위기 대응의 무능력은 사실 선거를 통해서 구성되는 정부와 의회라는 민주주의 형식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IPCC에서 내놓은 과학적 결론을 부인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의 무능력은 그 자체로 시스템의 문제다.

    어쨌든 근대적 분업체계 내에서 전문화된 정치의 영역은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한 분석과 기획을 통해서 사전에 예방하건 사후에 처방하는 기능을 하리라 기대된다. 마치 의사에게 아픈 환자의 치료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현재의 전문화된 정치 기구는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정파의 문제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영국 의회는 기후시민의회를 구성하고 지원했다. 애초 해당 기구는 멸종반란이라는 운동단체에서 정부에 요구했던 참여기구였지만 결국 수용되지 못하고 의회가 구성하는 방식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그러면 뭔가 영국 의회는 다를까?

    ‘정치인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할까’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레베카 윌리스는 실제 기후시민의회의 전문가 패널로 참여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주요 쟁점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었고 영국 의회에 출석하여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전문가 진술을 하기도 했다. 의원, 의회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주요한 발언들을 분석한 결과를 통해서 정치인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행동의 필요성을 이해하지만 이를 주장하지 않는 것에는 세가지 이유가 관찰된다고 말한다.

    첫째는 기후위기 문제가 자신들의 핵심적인 의제가 아니라 ‘외부인’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가지 민원 중에서 핵심민원 정도로 여길 뿐 의회의 주요한 의제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둘째는 정치인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더라도 실제 유권자로부터 압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일상적 문제가 기후위기 문제가 분리되어 있다고 여긴다.

    셋째는 기후위기와 같은 대규모의 장기적 대응이라는 과제가 현재의 일반적인 정치 관행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재 정치시스템은 장기적 문제를 다루는데 무능하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하는 것이 ‘기후 시민’을 조직하는 것이다. 특히 레베카 윌리스는 소규모 사람들이 추첨방식으로 선정되어 일정 기간 논의하고 합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공론장 방식의 숙의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협소한 접근법을 경계한다. 우리가 사례로 알고 있는 것들은 대개 공론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이지만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숙의민주주의 방법은 공론장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추첨제보다 대표성이 중요할 땐 대표성의 기준을 따를 수도 있고, 일정한 제도적 권한의 배분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비공식적인 과정 역시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민주주의-하기

    IPCC의 발표와 윤석열 정부의 국가탄소중립전략의 심각한 비대칭성은 ‘항의하는 것’을 넘어 지금까지의 민주주의에서 ‘이탈하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까 시민들 스스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갖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정부나 의회가 그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시민 스스로 거대하고 장기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믿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 아닐까 싶다.

    정부나 의회를 움직이기 위한 지렛대로서 시민을 조직하는 것이 근대적인 방식의 동원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나 의회가 찾아오도록 만드는 시민들의 자기 조직화와 결정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유일하게 현실적인 민주주의라고 믿어져 왔던 대의민주주의의 무능력이야 말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발명의 동력이다. 이미 그런 시도들이 준비되고 있기도 하다. 당장 4월 14일 세종특별시에서 진행될 ‘기후정의파업’도 그렇다. 다시 민주주의를 할 시간이 왔다. [끝]

    *<에정 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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