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만들고 사람대접, 따뜻한 밥먹어
        2007년 03월 15일 05: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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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학교에서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노조를 결성해보니 인간이더라”고 말하는 청소미화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국회의원과 교수, 학생, 노동자, 언론 등 전국 각계각층의 지지 성명과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 3월 7일 학교측의 폭력연행 이후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울산 지역의 노동자들이 학교측의 횡포에 대비해 청소미화원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사진 울산노동신문)
     

    ‘여성의 날’ 하루 전인 3월 7일, 울산과학대 측의 처참한 폭력에 의해 여성노동자들이 본관 지하 농성장에서 끌려나온 것이 알려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전국의 관심은 더욱 집중되고 커지고 있다. 울산과학대에서도 1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지지서명을 하며 응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잠깐이었지만 당시 학교측의 선정적인 폭력만이 부각되는 것 같아 청소미화원 여성노동자들은 마음이 아팠다.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 뉴스 등에서 학교 측의 여성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앞다투어 실은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원인과 본질에 대한 접근이 아닌 옷을 벗은 채 끌려나오는 장면만이 부각되는 것 같아 이 여성노동자들은 수치심과 치욕으로 많이도 울었다.

    뒤늦게 각 사이트에 맨 몸의 사진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피해자의 심경보다 충격적인 사건의, 충격적인 기사에 무게를 실은 것이 아닌지 반성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청소노동자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이들은 학교가 생긴 직후부터 지금까지 5∼7년을 일해 오면서 정규직 청소노동자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해 매일 9시간씩 일하고, 휴일과 명절에도 무보수 당직을 섰다. 연월차 휴가, 생리휴가, 잔업수당은커녕 식사 제공도 받지 못했다.

    휴가가 없어 아파서 쉬려면 대체근무수당을 내야 했다. 청소만 하는 게 아니었다. 1층에서 5층까지 50~60대의 여성노동자들이 무거운 책상을 날라야 했고, 행사라도 있는 날이면 몇 시간이고 연장근무를 해야 했다.

       
    ▲ 학교측 남성 교직원이 수시로 농성장으로 쳐들어와 여성노동자의 발등과 팔목을 구둣발로 짓이기고,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뱉어가며 성적 수치심과 모욕을 주는 폭력을 자행하고,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고 있으면 구둣발로 그 위를 지나가기도 했다. (사진=울산노동뉴스)
     

    이렇게 일해 받은 월급은 2000년 45만원, 2003년 55만원, 2005년 65만원. 이에 반해 5명도 안 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1시간 적게 일하며, 월 250~300만원씩 받고, 보너스는 1,000%다. 3~4만원의 당직수당도 꼬박꼬박 지급됐다. 학교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었고 휴가도 있었다.

    “노조 만들고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칠 수 있어 기뻤다”

    이들의 대부분은 어려운 가정 경제 때문에 일을 시작한 여성 가장이었다. 작은 월급봉투에도 감사하며, 서러운 눈물 훔쳐가며, 멸시에 대한 울분을 목구멍 속으로 꾹꾹 눌러가며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인 줄 알았다.

    2006년 7월 울산지역연대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고 요구해 무보수 당직이 없어지고, 따뜻한 식당 밥도 먹을 수 있었다. 업체인 (주)한영과 단체협약도 체결해 올해 2월부터 70만2,000원의 임금을 받기 시작했다.

    냄새난다고 난리치는 직원들을 피해 창고에서 찌개를 데워먹던 일, 탈의실에 남자 직원들이 노크도 없이 들어와 속옷을 보여줬던 일, 툭하면 나가라고 협박당하고, 무식하다고 쓰레기 취급당한 일 등등. 청소미화원 노동자들을 자신들처럼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로 보진 않던 학교측과 이 모든 것에서 사람대접 받으며 일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그녀들은 기뻤다.

    사람으로 일할 수 있게 해준 노조를 지키기 위해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업체 계약해지를 통해 2월 23일 해고를 통보했고, 3월 7일 여성노동자들은 폭력적으로 농성장에서 끌려나왔다.

    “우린 사람이 아니었어. 쓰레기였던 거야”

       
    ▲ 울산과학대 청소미화원여성노동자들의 농성투쟁과 그 앞에 버젓이 걸려있는 현수막
     

    14일 밤 울산과학대 본관 앞에 있는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청소여성노동자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피곤한 줄도 몰랐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이었어. 남편이고 아들, 딸하고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살아왔는데 아이고, 그 날 아침은.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물 밖에 안 나오는 거여. 어떻게 사람을 닥치는 대로 끌어내고 던지는 거야. 이건 사람이 아니고 무슨 쓰레기 취급이야. 너무 놀래가지고 어떻게 사람한테 그럴 수가 있는지. 너무 비참해”

    울산연대노조 조합원이자 청소미화원노동자인 신 모 조합원은 지난 3월 7일 학교 측의 폭력침탈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여성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묵묵히 일해 왔지만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철저히 버려졌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인 정몽준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에 “밥을 달라”, “최저임금을 달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소박한 요구도 너무나 쉽게 묵살됐다.

    그녀들은 오십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일을 7년 동안 일한 정든 일터에서 겪으면서 세상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인간적인게 뭔지, 투쟁하면서 알게 됐어. 계원(친목회)도, 친구도 많고 경조사 때 부조도 잘 했지.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하니 아무도 안 오더라. 나도 그랬을 거다. 그런데 평소에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달려와 주고 지켜줬어. 이게 인간적이라는 거구나 느꼈어.” (김 모씨)

    “당신들은 7년이나 일시키고 얼굴 보고 살았는데도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쫓아냈지만 이 사람들은 한두 번 봤는데도 라면이라도 사와서 우리에게 힘을 준다. 이들은 ‘인간천사’다. 왜 내보내야 되노. 이들이 없으면 당신들이 우리를 또 밟을 텐데. 우리는 이 사람들이 있어야 돼.” ‘민주노총을 내보내라’는 학교측의 요구에 박 모 조합원은 이렇게 반박했다.

    이야기꽃이 만발하는 농성장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농성장에서는 그녀들의 이야기꽃으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한 여성노동자는 처음엔 열흘만 싸워보겠다고 하더니, 탈의실에서 끌려나온 다음날 남편과 아들에게 찐빵을 얻고 나선 석 달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남편의 한 마디. “이왕 시작한 거 이길 때 까지 해야지”

    또 한 여성노동자는 매우 조용하고 평생 욕 한번 하지 않은, 동료들 말로는 ‘순디 그 자체’인데 투쟁하면서 악질 관리자에게 처음으로 한 욕이 ‘배째라’였단다. 3월 7일 아수라장이던 시간이 지나고 잠시 소강상태에서 갑자기 그 여성노동자가 ‘변태야’ 하며 소리 지르더니 자기도 놀랐는지 얼른 몸을 돌려 고개를 가렸던 이야기에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본관 지하 농성장에서도, 꽃샘추위 속으로 내동댕이쳐져 차가운 아스팔트 위 농성장에서 자신들의 무용담을 나누고 울고, 웃으며 여성노동자들은 그들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00이 전화했더라고. 뭣하러 계속 농성장에 나가느냐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얼마나 속상하던지. 그래서 말했제, 여기서(과학대) 밥벌어 먹어야 하는 사람들 어떻게 하냐. 여기서 내쫓기면 먹고 살기 힘들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 지키기 위해서 내라도 나가야 한다고. 그렇게 막 소릴 질렀지. 사실 아침에 현관문을 나설 때도 열 번 더 생각한다카이. 갈까 말까.(웃음) 그래도 여기 오면, 또 ‘그래 와야지’ 하제. 하하”

    멋쟁이 김 모씨의 말을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윤 모 조합원이 한마디 한다. “함께 하는데 빠지면 안되제. 다른 사람들 위해서 힘들더라도 계속 해야 한다고”

    “정든 만큼 받은 상처, 반드시 승리하겠다”

       
      ▲ 농성 중인 노동자들.(사진=울산노동뉴스)
     

    지난 14일 울산과학대 정문 앞에서 두 번째 울산과학대 규탄집회를 진행했다. 이 날 집회에는 분노한 노동자들이 서울과 부산에서 연대를 위해 울산까지 달려왔다.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부산일반노조, 울산의 노동자들과 민주노동당, 사회당 그리고 장애인 부모회에서도 참여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하부영 본부장은 “고통받는 노동자의 투쟁에 민주노총의 간판을 걸고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거듭 결의를 밝혔다. 연대의 발언이 이어졌고, 3월 7일의 폭력만행 영상물이 상영됐다. 농성중인 청소미화원노동자들은 “그 동안 정든 만큼 받은 상처가 너무 커 물러설 수 없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고 결의를 밝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녀들의 농성투쟁에는 울산의 노동자, 시민들이 수시로 결합해 지원하고 있다. 농성에 들어가기 전부터 함께 연대했던 한 노동자는 이 투쟁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그게 우리들에게 무엇을 엮어가게 하는지, 그리고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배우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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