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한 '꼴통'들의 핵무장 의존 관계
        2007년 03월 15일 11: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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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이 핵무장을 주장하고, 조갑제가 거들고 나섰다. 우국충정에 밤잠을 잊었을 두 분은 부시와 한나라당 같이 비겁한 세력을 비난하는 데도 목청을 모았다.

       
     ▲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사진 왼쪽)과 북한 대포동 미사일(사진 오른쪽)
     

    우국지사 김대중 고문과 조갑제의 비분강개

    “2.13으로 북한의 기존 핵과 핵물질은 여전히 남아 있고 미국은 한국을 핵 위협에 방치하는 결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부시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다.

    … 미국이 한국의 목을 조르는 북핵을 그냥 남겨둔 채 (어쩌면 애써 모르는 척) 자기들의 이해만 추구하기로 한 이상 우리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이 살아 남는 길은 우리도 핵에 대응하는 길을 찾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제 북핵 앞에 알몸으로 서있는 꼴이다.

    우리 주변에 우리의 진정한 친구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어떻고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등의 허상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 김대중, 「언제까지 북핵에 끌려 다닐 것인가」, <조선일보>, 2. 25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지킬 수밖에 없게 됐다. 누구의 탓이건 오늘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살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 무엇보다 우리도 북핵에 대비한 대등한 안전장치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핵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입장과 고정된 생각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 김대중, 「‘핵의 네거리’에 남겨지는 한국」, <조선일보>, 3. 12

    “조선일보의 김대중 전 주필(현 고문)이 오늘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사실상 대응핵 개발을 주장했다. … 한나라당과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씨마저 겁을 집어먹은 듯이 대응핵 개발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이 분들은 국가생존차원의 결단마저 ‘너무 강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애국도 부끄럽게 생각한단 말이 아닌가.

    적(敵)이 핵무장을 하고 국제사회와 동맹국이 이를 저지하지 못할 때 국가가 정당방위적 차원에서 핵무장을 하는 것은 누구한테 물어보고 할 일도 아니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다.” – 조갑제, 「부시가 북핵 허용하면 우리도 국가생존을 위한 정당방위 차원에서 핵무장해야」, 3. 12

    핵무기는 인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없다

    북핵 문제에서 미국과 한국의 이해가 다를 수는 있다. 김대중 고문의 걱정처럼 부시 행정부가 뜨뜻미지근하다면 한국 독자의 힘으로라도 북한 핵무기를 폐기시켜야 한다. 하지만 북핵 위기 이후 실질적인 최초 대화인 2.13을 두고 ‘북핵 용인’이라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섣부르다.

    미국은 여전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고, 미국 측 협상 대표인 힐 차관보는 3월 6일 기자회견에서 완전한 핵폐기 이후에야 북미 간 국교 수립이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대중과 조갑제는 이런 사실들을 일부러 감추고 있다.

    2.13에 대한 자의적 해석보다 훨씬 위험스러운 것은 독자 핵무장 주장이다. 어떠한 핵무장도 옳다고 할 수 없지만, 북한의 선택과 남한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는 천양지차다. 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고립적 소국이었지만, 남은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이다.

    핵무장에 뒤이을 국제적 제재와 고립은 경제사회적 손실을 가져올텐데, 여기에서 남과 북의 손실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우리 경제와 국민은 그런 손실을 감수할 수 없다. 게다가 남한은, 북한처럼 핵무기를 교환카드로 활용할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북의 잘못된 선택이 남한과 일본에서 핵무장론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대만까지 이어지는 핵 도미노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아소 다로, 김대중, 조갑제 같은 꼴통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김대중과 조갑제의 주장처럼 핵무기는 남한 인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을까?

    북한과 빼닮은 조갑제 논리

    국제 군사적 측면에서 남한의 핵무기는 유효적절한 무기 시스템이 아니다. 잠재적 적성국인 중국, 일본과의 군비 경쟁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핵폭탄 2,000개 분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은 이미 430여 기를 실전 배치해 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핵무장은 압도적 열세의 싸움터에 뛰어드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물론 핵소국의 핵무기도 전략적 역할을 할 수는 있는데, 선제공격과 핵보복 능력을 통해서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일본, 중국 같은 핵강국의 확증 파괴 앞에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한의 핵무기가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 뿐이다.

    문제는 남한의 핵무기 보유가 비핵국가에 대한 핵 불사용 원칙에서 스스로 벗어나 핵공격 앞에 국민을 내몰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북한도 공표한 핵보유국의 비핵국가에 대한 핵 불사용 원칙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남한이 핵무기 보유국이 된다는 것은 북한에 의해 핵 선제공격을 당할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왜냐하면 재래식 억제력에서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한이 핵전력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면 북한에게 남는 군사적 선택은 핵 선제공격을 통한 남한 군사력의 선제 파괴 전략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대중, 조갑제가 입에 달고 다니는 것처럼 북한 지도부가 호전적이고 비이성적이라면, 북은 발사 버튼에 손을 대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조갑제는 “정당방위적 차원에서 핵무장을 하는 것은 누구한테 물어보고 할 일도 아니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 논리는 ‘자위적 국방력’이라 변명하는 북한 외무성의 선언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그런데 북한의 핵이든 남한의 핵이든 정당방위나 자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재하거나 구체적이거나 임박한 위험 따위와도 관련이 없다.

    남한은 북한 핵무기가 실재하지 않던 박정희 때부터 핵무기를 만들려 했고, 북한은 작전계획 5027에 대북 선제 핵공격 계획이 담기기 훨씬 전인 김일성 때부터 핵무기를 갈망했다. 요컨대, 북과 남의 핵무기는 안보 상황 악화가 아니라, 그럴듯한 핑계거리에 힘입어 만들어진다.

    평화는 무기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지켜주는 것

    2,500년 전 사람 페리클레스는 평화와 번영이, 무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의해 보장된다고 웅변한다.

    “우리를 위대하게 만든 여러 전쟁과 군사적 행동을 나는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 그 대신 나는 우리를 성공으로 이끈 생활 방식과 아테네를 위대하게 만든 정치 행태와 성격을 설명하겠습니다.

       
      ▲ 스위스의 군대는 예비군으로 구성된다.
     

    권력이 소수에게 있지 않고 시민 대다수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를 민주주의라 칭합니다. … 아무도 아테네의 복지를 위해서 공헌하는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을 보호하는 성문법과 그 침범을 수치라고 생각하는 불문법을 존중합니다.

    … 전쟁 준비에 관한 한 우리는 적보다 훨씬 우수합니다. … 우리는 단순한 군사력보다 우리의 국내 자원에 자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적은 청년기부터 용맹을 배양하기 위한 엄격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부단한 군사적 훈련 대신 다채로운 생활 방식을 원하고 관제(官制)의 용맹 대신 천부의 재능에 의지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두 배의 장점을 갖는 셈입니다.” – 페리클레스, 「전몰 용사를 추도하며, 불멸의 영광」

    스위스나 스웨덴이 프랑스, 러시아 같은 핵강국 옆에서 자주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핵우산 덕분도 아니고, 핵무기 덕분도 아니다. 대신 그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와 그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인민의 강력한 열망이 있을 뿐이다.

    방어용 무기는 없다

    북한 정권과 <조선일보>는 핵무기가 자위용이라 주장한다. 모든 무기는 방어라는 이유로 만들어지지만, 쓰여지는 모든 무기는 공격이다. 인류의 지식이 축적되어 가장 효율적으로 인체를 파괴하는 공격 수단일 뿐이다.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는 체제를 지키고 싶어 하는 지배자들의 애장품일 뿐이다. ‘적’에 대한 공포로 인민을 움츠리게 하는 지배 도구일 뿐이다.

    <조선일보>가 진정 두려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의 핵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없애는 것이다. 북핵이 사라져 남북미 간에 화해 정세가 무르익어, <조선일보>를 먹여 살리는 적대적 의존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북한 핵무기 제거 프로그램에 착수한 2.13 직후에 뜬금없이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이다. 재래식 전력의 적대적 의존 관계를 핵무장 의존 관계로 대체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일보야말로 이북 강경파의 영원한 동지다.

    “인간의 악한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 플루토늄의 성질을 바꾸는 것이 더 쉽다.” –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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