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은 곳에서 민중과 함께 춤추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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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15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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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 최초로 의회에 의한 사회주의정권을 탄생시켰던 칠레는 비올레따 파라, 빅토르 하라, 파블로 네루다, 페트릭쇼 분스테르… 등 혁명을 노래했던 예술가들의 유산이 넘쳐나는 곳이다. 특히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손목이 꺾인 채 총살당한 빅토르 하라의 노래는 거리 곳곳에서 끝없이 불려지고 있다.

    낮은 곳에서 민중과 함께 하는 무용수들

    우리가 산티아고에 도착한 다음 날, 마침 조안 하라의 전남편이자 무용수인 페트릭쇼 분스테르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는 빅토르 하라와 더불어 혁명적 예술운동을 펼쳤던 공산주의자로 지금까지 자신의 무용단을 이끌고 칠레의 민중들을 만나며 정치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장례식은 문화공연으로 진행되었는데, 500여 명 가량 되는 대중이 모여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무대에는 빅토르 하라와 함께 했던 시절의 동지들이자 칠레의 저명한 가수들이 올라와 그를 추모하는 노래를 불렀다. 가수들만이 아니라 친지들과 그의 주치의까지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가 페트릭쇼 분스테르를 애도하는 이야기와 노래가 계속 이어졌다.

    페트릭쇼 분스테르가 창단한 무용단의 추모공연은 피노체트 군부독재에 의한 억압과 공포, 자유와 혁명을 향한 민중의 저항을 형상화했는데 그 강렬하고 역동인 몸짓들 속에서 칠레 역사의 아픔과 희망이 보였다.

    특히, 집회 현장의 군무 비슷한, 선동적인 몸짓패들과 무용을 위한 무용에 갇혀있는 한국의 무용수들만 보이는 한국과 달리, 예술적인 역량이 뛰어난 무용수들이 집회 현장에 나와 맨발로 춤추는 것을 처음 본 나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아쉬울 만큼, 꼼짝도 않고 지켜보았다. 그들의 몸에 베인 진정어린 역사의식과 자신의 몸을 낮은 곳으로 내려놓을 줄 아는 겸허함이 나를 전율케 한 것이다.

       
    ▲ 페트릭쇼 분스테르를 추모하는 춤 공연(왼쪽)과 그의 관을 옮기는 무용수들과 칠레 대중들(오른쪽). 붉은 깃발은 칠레의 공산당 깃발이다.
     

    마지막으로 페트릭쇼 분스테르의 무용수들은 그가 누워있는 관을 들고 무덤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고 그 뒤로 그를 사랑하는 대중들이 함께 했다. 그는 이제 그의 영원한 친구이자 동지인 빅토르 하라 곁에서 살아있는 이들의 삶을 지켜볼 것이고, 그들 곁에서 보이지 않는 춤을 출 것이다.

    두 개의 ‘빅토르 하라’ 기념행사

    페트릭쇼 분스테르의 장례식이 있던 날은 우연찮게도 빅토르 하라의 생일날이기도 했다. 저녁 7시경, 우리는 빅토르 하라 생일 기념행사가 있는 대통령궁 앞으로 갔다. 잔디광장에는 공연을 위한 무대가 크게 세워지고 무대 위 대형 모니터에는 생전의 빅토르 하라 얼굴이 보였다. 공연장 뒤쪽 둘레에는 빅토르 하라 사진전도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행사장 입구에서 초대장을 제시하고 공연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가 불편했다. 행사장 바깥쪽 가장자리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고 경찰들도 배치되어 있어 200여 명의 초대장이 없는 대중들은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타를 치켜들고 “빅토르 하라!”를 외쳤고 자신들을 소외시키는 바리케이트를 없애라고 항의했다. 결국 이들의 항의가 받아들여져 바리케이트가 허물어진 상태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 ‘빅토르 하라’를 외치며 바리케이트를 뚫고 행사장에 들어온 칠레의 문화 활동가들.
     

    칠레의 국가가 울려퍼지고 빅토르 하라의 부인 조안 하라와 대통령이 나란히 걸어 들어왔다. 지금 칠레의 대통령은 영국의 토니블레어와 비슷한 노선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행하고 있으나 공산당이나 진보 세력들과도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며 국가 차원에서 기념하는 빅토르하라 생일 행사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빅토르 하라를 국가차원에서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빅토르 하라 재단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행사로 혁명을 노래하던 그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무대 위 모니터의 흑백 영상에서 빅토르 하라가 칠레 땅을 내려다본다. 30여년 전 전쟁터나 다름없던 대통령 궁 앞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대통령과 그의 부인 조안 하라, 그리고 빅토르 하라와 함께 했던 친구들과 그를 사랑하는 칠레의 민중들을…  내 마음이 그러해서인지 빅토르 하라 역시 우울해 보인다.

    기념행사는 1시간도 안되어 끝났고, 우리는 이어서 빅토르 하라가 총살당했던 스타디움 앞으로 갔다. 그 곳에서는 빅토르 하라가 살아있을 때 함께 했던 가수들과 그를 추모하는 예술인들이 조촐하게 추모공연을 하고 있었다. 별도의 무대도 없이 마이크 하나 세워놓고, 그 옆에 빅토르 하라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상영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시낭송도 했다.

    산티아고 변두리의 뒷골목, 낮고 작은 무대지만 빅토르 하라에 대한 사랑과 현실에 대한 치열한 발언들은 큰 울림이 되어 밤하늘을 흔들고 있었다.

    모든 노래와 이야기들이 끝나자 다함께 둘러서서 케잌을 자르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고 곧바로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하고 차디찬 스타디움을 걷고 있노라니 피노체트 군부에 의해 학살당한 칠레 민중의 절규와 몸부림이 느껴졌다.

       
    ▲ 군부 쿠데타 당시 ‘빅토르 하라’가 처형당했던 스타디움 안에서 당시의 정황에 대해 설명을 들 었다. 이 스타디움 안에는 끔찍했던 학살을 묘사한 벽화들이 있다.
     

    스타디움을 관리하고 청소하시는 경비 아저씨께서 피노체트 쿠데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 분도 당시, 다른 스타디움에 갇혔다가 풀려나셨으며 지금도 학살당한 이들을 위한 추모사업과 진실 규명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피노체트는 여전히 살아있고 과거의 문제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고… (우리가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피토체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늘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 ‘El Derecho De Vivir El Paz’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빅토르 하라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만든 이 노래는 칠레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버스 안에서 구걸하는 거지도 이 노래를 부르며 돈을 얻고 있다.

    노래가 끝나지 않는 땅, ‘빅토르 하라’라는 혁명 가수가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땅, 70 넘은 할머니가 인터내셔널가를 힘차게 부르는 땅… 칠레는 민중을 위해 노래 부르는 가수들이 행복할 수 있는 땅이다.

    존재들의 균형과 힘의 조화를 보여주는 칠레 청소년들

    칠레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를 초청한 산티아고의 문화예술단체 CENDES와 청년ㆍ학생들이 주관한 거리문화 행사를 보러갔다. 이 행사는 낮 2시부터 벽화그리기로 시작하여 벽화가 다 완성된 9시가 넘어서야 끝마쳤다.

    이번 벽화그리기와 거리공연은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 중인 병원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란다. 행사 시간이 긴 만큼 거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벽화가 그려지고 있는 병원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벽화를 그리던 사람이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다시 벽화를 그리는 등, 미술과 노래와 춤 공연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행사였다.

    벽화그리기를 기획하고 주도했던 청년들은 칠레 북부 광산촌의 산타마리아 집단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파라’라는 여성운동가의 정신을 계승하는 미술운동 단체이다. 그들이 벽에 칠레의 역사를 그려 넣고, 민중의 염원이 담긴 구호들을 써 놓으면 공연 참가자들은 물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색깔을 입혔다. 그들은 우리에게도 붓을 건넸다. 우리는 그들이 그리고 있는 깃발 옆에다 한글로 ‘단결투쟁’이라는 글자를 써넣었다.

       
    ▲칠레 청소년들의 반 신자유주의 운동,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는 벽화 그리기
     

    이 행사에는 공산당 소속의 청년들이 대거 참가했는데, 칠레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스스로 공산주의자라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자유롭게 밝히는 게 상식이다.

    이날, 몇몇 청년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를 둘러싸더니 ‘공산주의자냐, 사회주의자냐..’라고 묻는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가 ‘~주의자’로 고정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국가 시스템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는 관계 그 자체를 꿈꾼다, 물론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노동이 자유롭고 존중되는 세상, 민중이 권력을 통제하고 소외받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 했더니 스스로 공산주의 청년이라고 하는 어린 친구가 웃으며 답한다. 자신이 원하는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이라고…우리는 같이 웃었다.

    이날 거리 문화 집회에서 칠레의 청소년들은 아크로바티크를 선보였다. 여럿이 호흡을 맞추고 힘의 균형을 이뤄내며 만들어내는 인간 탑과 인간 피라미드 등의 형상들을 보고 있자니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의 슬로건이 떠올랐다. “강한 자는 아래로, 약한 자는 위로, 어린이는 꼭대기에!”

       
    ▲거리 집회에서 아크로바티크를 보여주는 칠레청소년들
     

    내가 만났던 칠레 청소년들은 존재들의 균형과 힘의 조화를 실현해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미술, 음악, 춤 등의 예술적 재능을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결합시킬 줄 아는 것이다.

    칠레를 떠나던 날, 우리를 초청한 문화활동그룹 ‘CENDES’는 빅토르 하라의 다큐멘터리 영상물과 칠레 누에바 깐시온 가수들의 노래가 담긴 CD 3장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한 장에 5시간 가량이나 되는 다양한 곡들이 수록된 CD들을 틀어놓고 여전히 끝나지 않는 노래들에 흠뻑 취하고 있다. 한국 땅에서 가난하고 외롭게 노래하고 있는 민중가수들에게 이 끝나지 않는 노래들을 나누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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