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동북아 '새질서'에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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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3월 15일 09: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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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경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2.13 합의(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를 이끌어 낸 후 각급대표들이 악수을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13 합의’ 이후,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한반도가 ‘데땅트’를 맞이하고 있다. ‘2.13 합의’ 이행의 장애물로 여겨졌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에 대해서도 북미 대화가 진전될 가능성을 보이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미 직접대화와 북한과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관계 회복도 원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직접대화, 조명록 차수(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방미, 북미 공동 코뮤니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박차를 가하던 6년 전의 ‘데자뷰’를 느끼는 것은 현 국면에 대한 과대평가는 아닐 것이다. 15일, 16일, 17일 본격적으로 가동될 워킹그룹들의 회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뿐만아니라, 동북아 새로운 질서의 도래 가능성을 가늠할 바로미터라고 할 것이다.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필요성

    냉정하게 볼 때, 현재의 국면은 북미가 주도하고 있다. 특히, 2.13 합의를 전후한 미국의 대북정책 변경이 가장 큰 동력이 되고 있다. ‘미국발 요인’이 현재의 국면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역으로 ‘미국발 악재’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의 국면 전개도 가능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2.13합의’ 과정과 그 이후의 전개 양상은 지금과 같은 데땅트 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첫째, 대화구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현 구도는 실질적으로 북미 양자대화가 추동하고 있다. 2.13합의를 일궈낸 초석이 된 것은 지난 1월 베를린 북미접촉이었고, 2.13합의 이후의 대화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것도 북미 양자대화이다. 이는 그동안 북미 직접대화를 거부해왔던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의 중요한 징표이다.

    둘째, 내용적 측면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화가 오고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2.13 합의’의 초기이행조치 합의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다는 것에 기인하며, 동시에 북미 양국이 신뢰조성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한반도문제’라는 틀로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엿보인다. BDA, 테러지원국 지정, 적성국 교역법 문제 등 적대관계 청산에 전향적으로 나서면서, 북미관계 정상화 협의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과 같은 특징은 ‘기회와 도전’의 이중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북미대화에 장애가 생기면 현재의 프로세스는 언제든지 삐걱거리게 되고, 중단될 수 있다. 이는 ‘2.13합의’ 이전 국면의 반복이며, 그때는 더 험악한 국면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BDA, 테러지원국 지정, 적성국 교역법 문제 중 어느 하나가 문제가 생겨도 ‘2.13합의’ 이행은 차질을 빚게 된다.

    또한 미국이 ‘현상유지’ 혹은 ‘현상관리’를 선택했을 때의 문제이다. 이것은 핵을 가진 북한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공포에 의한 균형’의 길이다. 즉, 한미일 대북 강경파들의 방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과제 뿐만 아니라, ‘2.13 합의’ 이후 조성된 정세를 ‘되돌릴 수 없는 국면’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 의제’가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한반도 평화협정(평화체제)’ 논의이다. 이미 북미 적대관계의 청산과 관계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협상이 시작되고 있다. 또한, ‘9.19공동성명’에서도, ‘2.13 합의’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포럼 구성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평화협정 체결’이 북한 핵의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현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국면’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나 6자회담의 진전을 보아가면서 평화체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한반도 비핵화와 상호 보완적 역할로 관계 설정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군축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해야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대한 남북한의 주도적 역할은,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종전선언이나 북미관계 정상화, 혹은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등에 국한되지 않는 훨씬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반도 평화 과정 속에서 ‘민족적 공동이익’의 내용을 새롭게 구성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6.15 선언 1주년 기념으로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을 환영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민족적 공동이익’은 북미 양국의 외교관계 수립과 당사국들 간의 협정 체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종착점은, 정치군사적 갈등의 상존, 군비경쟁으로 인한 불필요한 자원 낭비와 자원 배분 구조의 왜곡, 강대국들의 이전투구에 좌우되는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지속가능하며,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축은 필수적 조건이라고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무엇인가’,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는 ‘어떤 평화를 원하는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

    정전체제 하에서 남북한은 정치군사적 적대관계에 있으면서도, 전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부분적인 무력충돌이 있었지만 전면전으로 비화된 적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힘에 기반 한 평화’라는 논리 하에서 군비경쟁은 계속되고, 자원 배분 구조의 왜곡이 낳은 부정적 결과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이런 결과로부터 남북한 어느 쪽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반도의 운명이 특정 강대국들의 정치적 거래와 이전투구에 의해 좌우되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적 과제는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대립의 해소와 군축을 통한 평화 정착이 되어야만 한다.

    또한, 남북한 상호군축은 현실적으로 판단해보더라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핵심적 과제이다. 북한이 핵을 비롯한 비대칭 전력을 개발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남북한 간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북한이 열세에 놓이게 된 데에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을 비롯한 ‘비대칭 전력’의 폐기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 간의 군축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다. 한반도의 군축은 평화체제 구축 뿐만아니라, ‘비핵화’를 촉진하는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한다면, 한반도 평화협정(체제)과 관련한 논의를 주도적으로 제기한다는 것은 현재의 데땅트 국면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비전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난 2월말 재개된 남북장관급회담은 큰 의미를 갖는 것과 동시에 한계도 노정하고 있다.

    특히, 쌀과 비료를 비롯한 대북 인도적 지원과 경협사업의 재개 여부를 결정할 남북경협추진위를 영변핵시설 폐쇄 시한 이후인 4월18일 개최하기로 한 것은 여전히 남북 축이 6자회담의 ‘종속변수’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와 핵실험과 연계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중단해,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남북관계를 6자회담에 종속시켜 버린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 정부는 지금의 ‘데땅트’ 국면이 4월의 경추위 개최로 이어지고 남북관계 복원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 국면이 남북한의 군비통제와 상호군축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민족적 의제’를 남북이 공동으로 만들어 가야 할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의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들을 뒤로 한 채,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6자회담의 장에 맡겨버린 과오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동북아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야

    뿐만아니라, 북한 핵문제를 ‘북한 핵’이라는 시야에 멈추지 않고 동북아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한미, 미일동맹 재편이 상당한 궤도에 올라서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본의 역할 증대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가 그 핵심적 내용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미국이 대북정책을 변경할 수 있었던 이유가 ‘북한위협론’의 활용가치가 떨어졌다는 것, 즉 한미일 동맹재편을 통해 향후에도 동북아 지역에서의 자국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발판을 상당한 정도 마련해 두었다는 점에 기인했다는 분석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미국 주도의 동맹재편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을, 그리고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자극하고 있다는 부분은 앞으로 도래할 동북아 질서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유리한 환경만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설사,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포럼이 구성되더라도 강대국들이 그 논의를 주도한다면 ‘한반도 평화포럼’은 강대국들의 이해의 각축장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

    또한 평화협정 논의가 진전을 보여 북미관계 정상화-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지더라도 그것이 곧,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남북한이 구심력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남북한은 강대국들 틈바구니-미중, 중일, 미러-사이에서 끊임없이 원심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체제 관련 논의와 구축 과정에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반도평화체제와 동북아평화안보공동체의 ‘선순환구조’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동북아 차원의 평화안보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갖는 것 또한 필요하다. 즉,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문제를 동북아 차원의 새로운 평화와 공존의 질서 구축으로 연결 짓는 ‘선순환의 구조’로 만들어 가기 위한 비전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리 조명 받고 있지 못하지만, 2.13 합의에 따라 구성될 워킹그룹에는 동북아평화안보공동체 워킹그룹이 있다. 현실적으로도 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강대국들의 논의에 뒤따라 갈 수밖에 없다. 6자회담을 동북아 다자간안보협의체로 발전시켜간다는 구상은 이미 제기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대안과 비전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일본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차원의 비핵지대 구상으로 확장시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한미일 동맹 재편이 야기하는 긴장요소를 순치시킬 수 있다. 또한, 중일 양국의 군비경쟁 명분을 약화시키고 한반도 비핵화로 인해 야기될 지도 모를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우려를 잠재울 수도 있다. 이와같은 동북아 차원의 군비통제와 군축을 위한 다자기구의 구성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동안 우리가 갇혀 있었던 북핵 문제에 대한 ‘좁은 시각’에서 탈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동북아시아 차원의 평화공동체 실현이 병행 추진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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