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자 대 용역깡패, 해괴한 달리기시합
        2007년 03월 14일 06:3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노동조합이 집회신고를 내기 위해 회사가 고용한 용역경비와 달리기 시합을 벌였으나 장기투쟁으로 체력이 떨어진 해고자가 20대 젊은 용역경비를 이기지 못해 끝내 집회신고를 하지 못하는 해괴하고 희귀한 사건이 벌어졌다.

       
    ▲ 13일 0시 경북 구미경찰서 앞에서 노조와 회사 담당자가 집회신고서를 손에 쥐고 달리기시합을 하기 위해 서 있다. (사진 = 코오롱노동조합)
     

    12일 새벽 0시 경북 구미경찰서 본관 입구에 있는 상황접수실에서 코오롱 해고노동자들과 회사가 고용한 용역경비들이 집회신고를 내기 위해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노조와 회사가 낸 집회신고서를 모두 접수했다.

    한 달 뒤인 4월 12일이 코오롱 회사 창립 50주년 기념일이었고, 회사가 대대적인 창립행사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고노동자들은 이에 맞춰 집회를 할 계획이었고, 회사는 어떻게 해서든 노조 집회를 막아야 할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날 ‘전투’는 노조의 승리였다. 노조는 11일과 12일 모두 집회신고를 낼 계획이었고, 4월 11일 집회는 3월 12일 새벽 0시부터 신고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날짜를 잘못 계산해 12일 집회신고를 이날 내러 와 이같은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었다.  

    결국 본게임은 13일 새벽 0시에 벌어졌다.

    집회신고를 많이 해봤던 노조는 12일 집회신고를 마친 직후 곧바로 접수대에 대기해 다음 날 새벽 0시가 되기를 기다렸고, 절차를 잘 몰랐던 회사측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노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전날과 똑같은 폭력상황이 재현될 것을 우려한 노동자들은 회사에 집회 장소를 절반씩 나눠서 집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회를 오전과 오후로 나눠 하자고 제기했다. 그러나 회사는 노조의 집회신고를 막기 위해 무조건 거부했다.

    달리기시합 거부했으나 경찰서 밖으로 쫓겨나다

    그러자 구미경찰서는 노조와 회사 모두를 경찰서 밖으로 나가라고 했고, 새벽 0시가 되면 철문을 열 테니 먼저 달려온 사람의 집회신고서를 접수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달리기 시합으로 집회신고를 접수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경찰은 12일 저녁 6시 경 집회신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접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조 간부들을 경찰서 밖으로 강제로 쫓아냈고 달리기시합을 강요했다.

    코오롱노조 이병윤 조합원은 "달리기 시합으로 집회신고를 결정한다는 것은 민주적인 절차가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얘기했고, 민원실에 항의도 했는데 경찰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내쫓았다"며 "전날 저녁에 회사의 윤모 이사가 경찰서를 방문했는데 이 때 회사가 경찰과 짜고 이런 일을 벌인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 달리기 시합에서 회사 용역경비가 코오롱 정원철 해고자를 밀쳐 넘어지려고 하는 장면
     

    13일 새벽 0시의 달리기 시합

    13일 새벽 0시 구미경찰서 정문 앞. 회사측 관리자와 용역경비 70여명, 노동조합 해고자 4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리기 시합’이 벌어졌다. 회사는 20대 젊은 용역경비들 중에서 달리기 선수 출신을 뽑았다. 노동조합도 나름대로 날쌔다는 정원철 조합원을 출전시켰다.

    정원철 해고자의 나이는 37살이었고, 회사 용역경비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경찰서 철문이 열렸고, 상황접수실까지 30여미터의 단거리 달리기 시합이 벌어졌다. 그러나 800일이 넘는 장기투쟁으로 체력이 소진된 해고노동자는 20대 용역깡패를 이길 수 없었다.

    금속노조 현정호 구미지부장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용역경비가 출발하자마자 밀치는 반칙을 저질러 우리 해고자가 넘어질 뻔했고, 결국 집회신고를 내지 못했다"며 "코오롱 해고자들에게는 이번 50주년 행사가 중요한 고비인데 집회신고를 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코오롱노조 박우택 조합원은 "이날 집회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희한한 경기가 끝나고 회사 관리자들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붙여먹지’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더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이상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은 "회사가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집회를 막기 위해 내는 유령집회신고를 경찰이 다 받아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집시법을 개정해 집회신고를 하고도 집회를 하지 않는 유령집회신고를 금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