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요금 논쟁,
    생태적 관점과 사회공공성의 긴장
    [정의 경제] 불평등과 생태위기, 두 과제의 딜레마
        2023년 03월 10일 1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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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요금을 사회공공성 관점에서 보는 것은 진전이지만

    지난 겨울 전기요금과 난방비 요금 상승 부담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 큰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뒤늦게 기후운동에까지 확산되어 기후운동에서 ‘전기/가스 요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자는 제안이 나와 또 다른 논쟁으로 번졌다. 몇 년 동안의 라니냐가 끝나고 엘리뇨 현상의 도래로 올 여름이 상당히 더워질 것이 벌써 예약되어 있는 만큼, 이 논쟁은 여름을 앞둔 전기요금 부담을 둘러싸고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가장 크게 쟁점이 되었던 것은 전기와 가스가 ‘공공재’인지, 그래서 시민들에게 최대한 부담 없이 쓸수 있도록 공공이 책임지고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 우선인지였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어떤 사람이 소비하면 다른 사람이 소비할 수 없어(경합성) 가격을 지불한 사람만 한정적으로 소비하게 만들 수 있고, 또 그렇게 가격을 지불한 사람만 소비하도록 통제(배제성)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는 모두 시장재다. 시장에서 수요-공급 논리에 따라 이윤이 얹어진 가격을 받고 거래할 수 있다면 다 시장재인 것이다. 시장에서 돈을 받고 사고 팔 수 없어 시장 공급이 안되지만 시민이 필요로 하는 국방 서비스 같은 것만을 한정적으로 공공재로 본다. 시장거래를 본위로 규정한 이런 관점에 따르면 전기, 가스, 수도도 당연히 ‘시장재’에 속한다.

    그러나 시장적 관점에서 시장거래를 할 수 없는 재화를 잔여적으로 공공재로 규정하는 것은 사회공공적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모든 시민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재화와 서비스들, 예컨대 수도,가스, 전기 등 사회인프라나 교육, 보건 등은 시장에서 공급이 가능하든 아니든 개인의 지불능력에만 의존해서 시장에서 구입하게 방치할 수 없다.

    그래서 전기나 가스 같은 에너지를 사회적 관점에서 ‘공공성’을 기준으로, 개인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국가가 직접 제공하거나 또는 공공이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모든 시민들에게 보편적인 접근권을 보장하게 하자는 ‘에너지 기본권’이다. 이는 틀림없이 시장적 관점보다 더 진전된 발상이며 현대 복지국가에 어울리는 제안이다.

    시장과 사회적 관점을 넘어 생태적 관점으로 에너지 요금을 봐야 한다

    그런데 기후위기 시대에는 여기서 그치면 안된다. 특히 에너지는 시장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을 넘어 ‘생태적 관점’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입체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생태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무얼 말하나?

    생태적 관점에서는 시장거래 가능성이나 사회적 필수재인지와 별도로, 특정 재화가 지구생태계의 수용능력 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따진다. 자연으로부터 획득한 재화가 화석연료처럼 재생불가능한지 아닌지, 목재나 물처럼 재생가능하더라도 지구의 재생능력 안에 있는지, 특히 기후의 관점에서 탄소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다르게 재화를 규정한다.

    전기에너지를 살펴보자. 시장적 관점에서 전기는 시장에서 공급할 수 있으니 시장재다. 기업들은 원료가 무엇이든 최대한 무한히 생산하여 이윤을 확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회적 관점에서는 전기에너지 없이 현대 사회구성원으로 살기 어려우니 공공성 있는 필수재이며, 역시 원료가 무엇이든 부담 없는 가격에 더 많이 공급할수록 복지가 증진된다.

    하지만 생태적 관점에서는 똑같은 전기에너지라도 무엇으로 생산되는가에 따라 성격히 완전히 달라진다. 석탄-가스 등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전기에너지는 무상으로 무한히 공급하는 것은 고사하고, 가능한 빨리 완전히 없애야 하는 재화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더라도 무한히 생산을 늘릴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전체의 70% 내외를 화석연료에서 공급받는 한국의 전기에너지는 소비를 강력히 제한해야 하는 비재생에너지임은 물론, 기후위기에 가장 책임이 큰 탄소배출 에너지다. 빠르게 줄여야 하며, 동시에 태양과 풍력 등 재생가능한 방식으로 대체해야 한다.

    더욱이 화석연료라는 재화는 한국이라는 국가 단위에서 보면 전량 수입을 해야 하는 처지여서, 외부 공급변수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무역적자와 같은 부수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경제적 위험요인까지 더해진다. 기후운동이 2023년 지금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전기와 가스를 접근하는 가장 우선적인 전제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최근 에너지 요금을 둘러싼 논쟁은 시장적 관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관점으로 볼 것인지에만 초점이 갇혀 있었다. 요금인상 불가를 주장하면서 사회공공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요금인상이 시장주의적 원가주의 발상이라거나 시장주의적으로 필수재(또는 가치재)를 공급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라고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에너지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요금인상을 동결하고 더 나아가 현재 에너지 기업들의 공공성을 더 강화시키면 기후를 포함한 생태적 이슈가 풀릴 수 있는 것처럼 잠정적으로 가정하는 듯하다.

    시장가격 활용이 시장주의라는 착각

    그러나 사회공공성이 해결된다고 생태적 문제들이 절대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회공공성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 꼭 시장적 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공공성 관점에 갇혀 에너지요금 인상요인을 공공이 막아서 전부 가려버린다면, 적어도 소비자 시민 입장에서는 에너지를 덜 쓰고 효율화 방안을 찾거나,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자고 요구하는 등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동기부여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오히려 요금동결로 과거보다 에너지 사용을 계속 확대하는 관성을 방치할 개연성이 높다.

    지금 기후운동 관점,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서 화석연료로 생산되는 전기에너지는 파격적으로 줄여야 한다. 재생에너지까지를 포함해서 전체 에너지 사용량도 다른 선진국처럼 줄여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왜인가? 기후위기 관점에서는 매년 최소 7%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니까. 전체 생태적 관점에서는 매년 4월이 되면 한 해의 생태발자국의 다 써버리는 것이 오늘의 한국의 생산과 소비 현실이니까. 현재 에너지 요금 문제는 이런 엄중한 생태적 현실을 중심에 두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 그냥 시장적 관점이냐 사회적 관점이냐에 갇혀서 논의할 주제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화석에너지와 같은 반 생태적 재화에 대해서는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공급하는 스타일의 ‘복지국가’는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사회공공성 관점에서는 교육, 보건, 주거 등이 다 똑같이 기본권을 보장해주어야 하는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일 것이다. 가급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더 많이 제공해주면 줄수록 복지가 증진될 것이다. 하지만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교육, 복지와 에너지(그것도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는 완전히 다른 재화 또는 서비스다. 화석에너지 공급은 사회적 관점에서는 많이 공급할수록 복지가 늘어날지는 몰라도 생태적 관점에서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 요금에 대한 해법은 기본적으로 생태적 관점을 전제하고 그 안에서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에너지 사용의 총규모를 통제하면서 특히 화석연료 기반 현재 기후운동이 요구하는 만큼 빠르게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방향을 기본으로, 그 안에서 에너지 기본보장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공공성을 지키고 나면 생태적 이슈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태적 한계를 먼저 긋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구매가격은 물론, 에너지 생산과 소비 행동을 바꾸는 유인이나 규제제도를 모두 동원해야 한다. 석탄화력발전 폐쇄 같은 국가적 규모의 전환은 시장 메커니즘이 아니라 사회적 결단으로 국가의 규제를 통해 풀어야 한다. 대규모 내연기관 자동차의 축소도 내연기관차 신규판매 금지같은 강제를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기제도 충분히 활용되어야 한다. 에너지가격(특히 화석에너지가격)을 비싸게 만들면 가정이나 기업에서 에너지 효율화 방안을 모색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에 단열 같은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공적 지원 유인제도가 붙으면 효과가 가속화될 수 있다. 개인이나 기업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는 이렇게 다면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가격기제가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격기제의 힘은 세다. 1970년대 석유파동, 2008년 유가 급등 등 에너지 가격 폭등의 시기에 대부분 소비는 큰 폭으로 줄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덴마크는 풍력산업 전환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석탄 의존국 영국은 1990년대와 2010년대 두 차례 석탄가격의 상대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석탄화력발전을 축소했고, 그 결과 이제 사실상 석탄화력발전 완전폐쇄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지난 겨울 전기요금과 난방비가 오르면서 가정에서의 에너지 효율화 방안을 훨씬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시장사회라는 우리 현실에서 시장을 무시한 발상은 오히려 시장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가격이 개입되었다고 해서 시장의 효율에 의존해 문제를 풀려한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배급의 형대로 자원배분을 하지 않는 이상 가격 메커니즘을 우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생태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을 동시에 풀려는 노력을 회피하지 말자

    불평등 경제학자 뤼카 샹셀(Lucas Chancel)은 그의 저서 <지속불가능한 불평등>에서, 불평등과 생태위기는 서로를 악화시키면서 함께 심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불평등이 해소되면 자동적으로 생태위기가 완화되는 것도 아니고 생태위기 완화가 자동적으로 불평등 해소를 낳지도 않는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 두 목표 중 어느 한쪽을 앞세워 다른 쪽을 희생해서는 안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환경보호는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고 그 모든 형태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중립적이지는 않다. 어떤 환경 정책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적어도 한동안은,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역으로, 빈부격차 해소 정책이 환경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생태위기와 불평등해소/복지를 동시에 푸는 과제가 공공성 강화를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일부에서는 불평등과 생태위기를 동시에 풀자면서 가정 에너지 사용과 산업용 에너지 사용을 필수재, 비필수재로 구분하여 접근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사회적으로 ‘필요’와 ‘탐욕’ 사이의 경계선이 얼마나 임의적인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은 물론, 가정용에도 필수적인 것과 사치적인 것이 섞여 있고 산업용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무시한 발상이다.

    산업용도 영세 자영업이나 농민의 에너지 소비를 비필수적이라고 해야 하나? 대기업 에너지 소비도 필수재 생산에 들어가면 뭐라고 불러야 하나? 생태적 관점에서 ‘필수/필요’와 ‘탐욕/사치’의 구분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사회적 필요도 생태적 한계에 따라 새롭게 정해져야 한다. 생태적 한계에 따라 총규모가 먼저 정해지고 그 범위 안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재분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선진국이 그렇다. 기존의 탄소집약적 라이프 스타일의 전면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사실 최근의 외부적인 에너지가격 상승 요인이 아니더라도 탄소세 신설 등의 방식으로 화석연로 기반 에너지 가격을 더 올렸어야 했다. 그래서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강제적 규제나 공적 투자와 더불어 가격면에서도 유도가 되게 하도록 해야 했다. 서민들의 에너지 기본권 보장은 어디까지를 이를 전제로 설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에너지 기본권 보장한다면서 화석에너지 요금을 동결해놓고, 생태를 고려한다면서 땜질 방식으로 대기업은 예외, 산업은 예외라는 식의 고민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어쩌면 과거에 사회적 형평성 고려 없이 생태위기만 강조했던 편향에 대한 역편향으로 사회적 형평성을 앞세우는 경향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생태적 한계를 확실히 한 뒤에 사회적 형평성을 도모할 해법들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그 해법들 가운데 굳이 가격의 해법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 <정의로운 경제>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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